브랜딩 입문학 Chapter 2.
태아의 발생 과정에서 가장 먼저 형성되는 신체 기관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물리적으로 가장 먼저 형성되는 것은 다름 아닌 ‘항문'이다. 들어갈 곳에 앞서 나갈 곳이 먼저 생겨야 한다는 자연의 법칙이 놀랍고 흥미롭다. 그렇다면 항문을 제외하고 한 인간의 발생 과정에서 가장 먼저 형성되는 기관은 무엇일까? 그렇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기관, ‘뇌’다. 엄마가 임신 3주차가 되면 뇌와 척수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사람의 시작이 ‘뇌'라면, 브랜딩의 첫 단추는 무엇일까? 바로 그 브랜드만의 고유한 정의인 ‘컨셉’이다. 브랜딩이라고 하면 보통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어떤 이미지를 가질 것인가에 앞서 결정해야 할 것이 그 브랜드만이 가지는 의미와 컨셉이다. 컨셉을 구상할 때에는 주관적인 상상력을 담당하는 우뇌보다는 시장의 판을 조감하며 우리의 비즈니스를 어떤 언어로 정의할 것인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좌뇌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브랜드의 좌뇌, 컨셉이란 무엇일까?
컨셉concept의 어원을 보면, “con (함께) + cept (잡다)”라는 의미가 결합된 것으로, 고유한 생각의 틀을 의미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흩어져 있는 우리 브랜드만의 장점을 시대의 요구와 새로운 가치로 함께 엮어 만드는 하나의 빛나는 목걸이가 컨셉이다. 오늘날 컨셉이라는 말은 브랜드나 제품, 기업에만 쓰이지 않고 다양하게 사용된다. 패션 컨셉, 파티 컨셉, 심지어 오늘 저녁에 먹을 메뉴의 컨셉까지. ‘생각의 가두리'인 컨셉은 주체가 하고싶은 이야기의 욕망이 담겨 있고, 그것에 동의한 객체는 시간과 돈, 관심을 지불하면서 컨셉을 자신의 경험으로 체화한다. 선명한 컨셉은 선명한 브랜딩의 시작이다.
인간이 발명한 종교나 지배 사상 역시 하나의 컨셉이다. 다양한 신을 섬겼던 로마에 반기를 들고 ‘평등과 유일신’이라는 새로운 컨셉을 설파한 기독교의 탄생부터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사상으로 수백년을 지배한 유교라는 컨셉까지 인류는 늘 새로운 믿음체계를 받아들이고 발전해 왔다. 진부한 컨셉은 외면당했고, 진보한 컨셉은 박수를 받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렇다면 경쟁자에 전복당하지 않고 시대와 고객에게 환대 받는 컨셉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 번째 생각해볼 수 있는 조건은 ‘새로움'이다. 당연히 새로워야 한다. 그런데 새로움이 다일까? 차원이 다른 새로움이란 ‘더 나은 대안'이 아니라 ‘기존의 상식을 파괴하는 대안'이다. ‘숙박'이라는 카테고리를 생각해 보자. 최고급 호텔보다 더 고급스러운 호텔, 더 아름답고 친절한 호텔을 만들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more(더)’ 와 ‘better(더 나은)’는 그 자체로 언젠가 따라잡힐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반면, 에어비앤비는 자신들을 더 나은 숙박의 카테고리가 아닌 ‘여행’이라는 더 큰 카테고리에서 한 차원 다른 새로운 컨셉을 제시했다. 숙박시설 하나 짓지 않고도 앱 하나로 전 세계의 모든 집이 숙박 장소가 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라는 새로운 컨셉을 정의한 것이다.. 진정한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 옆 경쟁자만 볼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업 전체를 관통하는 새로움이 무엇일까라는 ‘빅 퀘스천big question’이 필요하다. 에어비앤비처럼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전에 없던 혁신인 경우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브랜드가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비즈니스는 컨셉이 새로울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한 때 힙한 장소에서 지금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기에 이른 스타벅스의 컨셉은 ‘제 3의 장소, the 3rd place’다. 창립 당시 창립자 하워드 슐츠는 이태리에서 경험했던 에스프레소 바의 분위기와 감정을 미국에 심고 싶었다. 커피라는 것을 소비자 관점에서 더 크게 정의하지 않고 ‘최고급 이탈리안 커피 경험' 이라고 컨셉을 정했다면 어땠을까? 당시 미국에는 생경했던 이태리 에스프레소 바의 경험을 미국 전역에 심는다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것은 ‘이태리'라는 오리진을 옮겨온 새로움에 지나지 않는다. 이태리 에스프레소 바의 경험이 궁극적으로 고객에게 주는 더 큰 가치가 바로 ‘제 3의 장소’이다. 커피가 더 맛있다는 기능적 가치를 넘어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이유와 맥락에 대한 접근이다. 소비자의 삶이라는 안경으로 브랜드의 의미를 바라본 것이다. 집이라는 “제 1의 장소 - 편안하지만 너무도 익숙한 곳”, “직장이나 학교와 같은 제 2의 장소 - 공식적이면서 나의 체면을 잘 차리고 있어야 하는 장소”가 아닌 “제 3의 장소 - 나라는 개인이 오롯이 ‘나'로써 쉬고 관계맺고 또 창조의 힘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의 맥락을 점유한 것이다. 스타벅스는 제 3의 장소에 걸맞게 세분화된 커피 취향 (사이즈, 맛, 토핑)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줌으로써 ‘개인의 탄생'을 현실화했다.
컨셉은 스타트업이나 뉴 비즈니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반 기업의 신제품에 있어서도 컨셉은 매우 중요하다. 외부 경쟁에 대응하면서도 내부 제품들과 간섭cannibalization 없이 ‘사야 할 이유'를 명확히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관점에서 볼 때, 동서식품 ‘카누'의 컨셉은 매우 전략적으로 적절했다. 스타벅스와 같은 원두커피 시장의 급격한 성장에 대응해 솔루블(물에 녹는) 원두커피를 내놓은 동서식품은 이 신제품의 컨셉을 ‘집에서 간편하게 먹는 원두커피'라는 1차적 베네핏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라고 정의했다. 자칫 믹스커피 카테고리 내의 일부분으로 인식되었을 수 있는 한계를 방지하고 ‘카페라는 좋은 경험을 언제나 내 손에 휴대할 수 있는 자유’로 자신을 정의한 것이다.
세상에 없던 비즈니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든 전통적인 산업의 진화이든 브랜드의 컨셉을 만드는 일의 공통점은 더 나은, 더 좋은 비교급이 아닌 그 브랜드만이 정의할 수 있는 고유한 언어다. 더불어 그 고유한 언어는 기업 관점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제품의 1차적 효익이 아닌 소비자의 삶을 어떻게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더 큰 의미부여다. 단 한 명의 소비자라도 그 사람을 팬으로 만들 수 있는 뾰족함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컨셉이라고 부른다.
*Chapter 3에서 계속됩니다.
< 브랜딩 입문학 >목차
Chapter 1. 브랜드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다
Chapter 2. 브랜드 좌뇌 만들기 : 컨셉 정의
Chapter 3. 브랜드 우뇌 만들기 : 페르소나
Chapter 4. 브랜드 심장 만들기 : 꿈과 비전
Chapter 5. 관계맺고 성장하기 : 장수 브랜드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