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이렇게 밥을 잘 챙겨먹을 줄 알았을까?
엄마는 내가 요리할 거라곤 바라지도 않는다. 적당히 냉장고에 있는 음식 꺼내먹고, 가스레인지 불 켜서 김치찌개 끓여 먹고, 밥솥에서 밥 퍼서 조리해 먹으면 그걸로 감지덕지다. 그런데 나는 혼자 차려먹기가 얼마나 귀찮았는지, 내 눈앞에 음식들을 차려주지 않으면 하루 내내 굶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가족들과 떨어져서 생활을 많이 해서 주변 사람들은 내가 생활력이 대단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은 삼시 세 끼가 급식으로 잘 나오니 스스로 끼니를 해결할 필요가 없다.
그 후로 지금, 대학생이 되었다.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로 왔고, 아무도 나에게 숟가락을 잡고 떠먹여주지 않는다. 이제는 실전이다.
처음엔 아침밥은 편의점에서 급하게 산 시리얼로 해결하고 점심, 저녁은 학식당에서 가성비 있는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기숙사와 학식당 간에 은근 거리가 있어서 밥 먹는 게 여간 귀찮아졌다. 결국 혼자 밥 차려먹어야만 했다.
편의점에서 햇반 2개를 사면 하나를 증정하는 행사를 하길래, 그걸 많이 사서 냉장고 한 칸을 모두 차지할 정도로 쟁여놓았다. 그리고 반찬은 처음엔 동네 반찬집을 이용했다. 그곳 아주머니가 마켓컬리에서도 살 수 있다고 해서 어플을 설치했는데 아아… 사장님이 나에게 그 말을 한 것은 실수다. 온라인 쇼핑은 가성비 게임이다. 결국 그 후로는 마켓컬리에서 더 가성비 있는 반찬집에서 주문하고있다.
원래 나는 찌개나 국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밀키트를 조리할 마땅한 기구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하지만 덕분에 일일 나트륨 섭취량을 반강제로 줄일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좋다.
간식도 잘 챙겨 먹는다. 처음엔 반숙란만 주문해 먹다가 이제는 식빵에 잼 발라먹기도 한다. 오늘 수업 끝나고는 구운 계란도 먹었다.
이렇게 잘 챙겨먹는 음식 사진을 우리 가족 단체카톡방에 찍어 보낸다. 처음에는 친척들 방에 올렸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해먹고 사는지 누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궁금해하겠나. 나의 혈연 중에서도 가장 최측근들인 우리 가족에게만 보내고 있다.
그럼 너도나도 오빠가 룸메이트와 함께 먹은 갈비탕, 엄마가 앞집에서 사먹은 토스트 등등 따끈한 식단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는 맛있게 잘 챙겨 먹는다고 서로 칭찬한다.
“같이 저녁 먹을까?” 친해지고 싶은 친구를 사귀면 꼭 하는 말이다. “오늘 뭐 먹었어?” 남자친구와 하루의 끝에 연락하면서 꼭 묻는 질문이다. “점심 드셨어요?” 바쁘게 일하는 부모님이 몸 챙기는지 궁금할 때 하는, 걱정과 사랑이 담긴 말이다. 밥 먹으면서 정든다는 표현 있듯이, 먹는 것으로 친해진다. 또 안부를 물으며 관계를 이어나가고 사랑과 관심을 표현한다.
바쁜 하루 중에 타인의 밥 먹는 여부와 음식과 같이 나주 사소한 부분을 묻는다는 건, 관심 없는 사람에게 매일 해야하는 안부라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거다. 그래서 밥의 안부는 소중한 관계를 더 소중하게 만든다. 잘 먹으니 새내기의 바쁜 일정을 사는 와중에도 행복하다. 이 행복감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나누고싶다.
내일은 아침엔 식빵에 잼 발라 먹고, 점심엔 최근에 산 소시지, 메추리알, 볶음김치, 진미채 반찬에 햇반을 먹을 거다. 또 저녁엔 기숙사 룸메이트랑 떡볶이를 시켜 먹기로 했는데, 내일이 어서 오면 좋겠다.
내일 먹을 음식들이 기대돼서, 빨리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