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걷기 4 - 19코스. 조천 ~ 김녕 올레
여행에 관한 책을 내고 국제도서전 초청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위대한 작가들의 인생과 여행이라는 책 내용을 토대로
'안톤 체홉의 사할린 여행'을 소개하고
여행과 창작의 선순환에 대해 발표를 했다.
그리고 이어진 청중과의 대화.
가장 많았던 질문은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여행을 잘 할 수 있는가?'
여행을 잘 하려면...? 이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먼저 목적을 고민해 보시라 권한다.
구체적이고 단순한 하나의 목적을 정하고 나면
계획과 준비에 많은 고민을 줄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이 나왔으니 여정을 짤 때 유용한 구체적인 팁 하나를 소개하자면
가장 가보고 싶은 곳 한 곳을 찍은 후 무조건 그곳으로 먼저 향하는 방법이 있다.
보고 싶은 곳을 고르면서 목적과 취향이 정리되고,
자연스럽게 나만의 여정과 방식이 만들어지니 한 번쯤 시도해보시길.
목적불문 밑고 끝도 떠나고 싶을 때는 어디로 가야할까?
그럴 땐 가까운 누리길이나 올레를 걸어보시라 권한다.
여정에 대한 고민없이 내 두 발로 낯선 풍경 속을 걸으며
새로운 영감을 떠올리고, 완주라는 작은 성취감을 맛 볼 수 있다.
일단 길에 몸을 올려놓고 화살표를 따라 모퉁이 돌고, 언덕 넘고, 강을 건너가며
예측불가능한 풍경의 전개를 즐기는 재미.
그 재미를 위해 일부러 사전정보 없이 떠난다.
사전정보 없이 떠날 때 피할 수 없는 고난과 함정도 많다.
화살표를 지나쳐 길을 잃고 헤매는 것, 먹을 곳이 없어 밥을 굶는 것,
완주를 하지 못한 채 밤을 맞는 것...
그중 가장 치명적은 미리 알았으면 절대 놓치지 않았을 풍경을
돌아오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좋았던 여운은 사라지고 종일 걸은 것이 헛고생만 같아 낭패감만 남는다.
궁여지책으로 안내판을 꼼꼼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
종류 모양 불문하고 표지판을 만나면 일단 그 앞에 서서
휴식을 겸해 꼼꼼히 읽고, 시간을 들여 풍경 속에 이야기를 그려본다.
자주 길을 잃고, 자주 멈추는 통에 남들 반나절이면 완주하는
4시간 코스를 6시간, 7시간 걷는 날이 다반사지만,
새로운 자극과 정신적 환기가 궁극적 목적이므로
완주를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안내판 읽기에 시간을 아끼지 않는 것이
나만의 도보여행법이 되었다.
제주올레 19코스는 도보여행의 재미를 만끽하기 가장 좋은 올레 코스 중 하나다.
신흥-함덕-김녕으로 이어지는 여러 모양의 해안길과 여러 빛깔의 바다,
점점이 박힌 역사유적들, 예쁜 마을들...
쉴틈 없이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과 사연을 알리는 안내판들.
멈춰섰다 걷기를 자주 반복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육지에서 담아 온 무거운 생각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곳에 다녀온 지 반 년이 지난 오늘도
떠나던 그날처럼 마음이 무겁다.
19코스에서 나를 멈춰 세웠던 안내문들을 꺼내보며
잠시 그날로 돌아가 본다.
"바다만도 아니고 숲만도 아니다. 바다, 오름, 곶자왈, 마을, 밭...
제주의 모든 것이 이 길안에 있다.
밭에서 물빛 고운 바다로, 바다에서 솔향 가득한 숲으로,
숲에서 정겨운 마을로 이어지는 길의 전환, 지루할 틈이 없다."
- 제주올레 패스포드 19코스 해설
" 1919년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조천지역에서 1차는 미밋동산(만세동산), 2-4차는 군중을 동원할 수 있는 조천장터를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 제주인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워 이후 제주에서 벌어지는 항일운동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 조천만세동산 입구 표지판
" 이곳은 제주에서 해남 땅끝마을과 가장 가까운(83km) 곶이라고 한다. 조천관 시대에 '조천포구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곶'이란 뜻으로 관곶이라 불리우고 있으며, '제주울둘목'이라 할 만큼 지나가던 배가 뒤집어질 정도로 파도가 거센 곳이기도 하다."
- 관곶 표지판
"환해장성은 제주전체 해안을 300리 둘러친 장성이다. 고려시대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까지 계속 축성하였으며 바다로부터 오는 적의 침범을 막기 위한 시설이었다. 이 성은 삼별초의 진도거점기에 개경정부가 보낸 관군이 삼별초 진압을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한 것으로 자연석을 적당한 크기로 분류해 쌓아 놓았다. 높이는 대략 2m 안팎으로 다양한 형태가 있다."
- 환해장성 안내문
불턱은 돌담을 이용하여 타원형의 접담으로 높이는 어깨를 가릴 정도이고 출입구는 해녀가 출입할 수 있는 사이를 두고 양쪽에 안전보호 외벽을 별도로 쌓았으며, 내벽은 잠수도구를 놓을 수 있도록 했고, 바닥은 평평하게 하였으며, 중앙에는 모닥불을 지필 수 있도록 돌담을 가지런히 놓아 원형 불턱을 만들었다. 이 바을 해녀들이 밭농사를 하다가 썰물에 맞춰 불턱에 모여 물질요령, 정보교환, 기술전수하여 잠수하기 전에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가서 해산물(전복,소라,미역 등)을 채취하고 나면 춥고 허기진 몸을 녹이는 유일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채취한 수산물은 소득원으로 가난한 시절에 자녀교육, 가정살림에 산실인 소중한 생활터전이었으며, 지금은 해안 마을마다 현대식 해녀탈의장을 갖춰 해녀들이 이용하고 있다.
- 해녀 불턱 안내판
" 북촌리 주민 학살 사건 때 어른들의 시신은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다른 곳에 안장 되었으나, 어린 아이들의 시신은 임시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현재 20여기의 애기무덤이 모여 있는데, 적어도 8기 이상은 북촌대학살 때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
- 너븐숭이 4.3 유적지 안내문
"서기 1948년 음력 12월 19일 새벽 마을 어귀 고갯길에서 무장대가 군 차량을 기습하여 군인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군인들이 들이닥쳐 온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학교 마당에 집결시켜 학살을 자행하다가 인근 밭으로 4,50명씩 몰고가 무차별 사격으로 350여 며으이 목숨을 앗아갔다. 이곳 너븐숭이는 학살의 현장이다.
그 이튿날 (12월 20일) 살아남은 사람들은 함덕리로 소개되어 갔으나 또 거기에서 수십 명이 희생되었다. 이보다 앞서 음력 11월 16일에는 무장대의 습격에 대비하여 밤낮으로 보초서던 민보당원 23명이 마을 동쪽 낸시빌레에서 학살 당하였다.
군경의 탄압을 피하여 가까운 야산 숲속과 동굴에 숨어 있던 상당수의 주민들은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기도 하고, 귀순하면 살려준다는 전단을 보고 손들고 내려왔다가 잔혹한 고문으로 죄가 씌워져 정뜨르비행장에서 집단 처형당하거나 바다에 던져져 수장되고 혹은 육군 형무소로 노내져 행방불명 되었다..."
- 서기 2007년 음력 12월 19일 북촌리 4.3희생자 유족회
"제주 폭낭은 '뽕나무'의 제주 사투리예요. 제주의 마을 곳곳에는 이 나무가 위치해 있거든요.
마을 주민들의 쉼터이기도 하면서,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해요.
김녕마을을 돌아다니시면서 많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나뭇잎은 여기를 찾아주신 여러분들의 손도장으로 채워나가고 있답니다!!!
하나씩 남기면서 여러분들의 추억을 남겨보셔도 좋답니다!"
- 숙소 벽화 안내문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서자마자 '폭낭'을 만났다.
폭낭... 이름을 알고나니 한없이 친근한 느낌.
그렇게 하나씩 알아가며, 느껴가며 또 하루를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