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의 끝

제주올레걷기 6 - 21코스. 세화-하도-종달

by WonChu


제주올레를 걸으며 '해야할 여행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느꼈다.

관광지가 아닌 탐험지로서의 제주는 하나의 세계였고,

걸음 걸음으로 하나의 세계에 대한 감각을 채워가는 보람이 있었다.

올레를 걸어봐야 제주도를 알 수 있다는 말을 매일매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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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코스에서 시작한 탓에 올레의 마지막 21코스를 미리 맛보았다.

어디서 시작해도 원을 그리는 길이라 시작과 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나

21코스를 걷고나서 이곳 사람들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이 세계의 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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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에서 바라 본 지미봉 / 숙소에서 지미봉 가는 길


21코스의 끝 지점 지미봉(地尾峰)과 종달리(終達里).

땅의 꼬리, 끝 마을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지는 않았을 테지...

직접 보기 전엔 알 수 없는 끝이라는 감각을 궁금해하며 오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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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166m 밖에 되지 않지만, 가파른 오르막에 다리가 후들후들.

정상에 서니 일출봉과 우도, 내륙의 오름들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1코스부터 걸었으면 완주의 대미를 장식했을,

일출을 보았다면 너무나 좋았을 멋진 전망.

오늘보지 못한 풍경, 느끼지 못한 감흥을

나중 1-1코스 우도를 걸으러 왔을 때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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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들은 왜 여기를 끝이라 여겼던 것일까?

꼬리가 있으면 머리도 있고, 끝이 있으면 시작도 있는 법.


여기가 꼬리라면 서쪽 끝이 머리가 된다.

사람들은 제주도를 거북이 모양으로 보고

동쪽 끝을 지미봉, 서쪽 끝을 두모리라 불렀으리라.


또는 여기가 끝이라면 바로 다음, 즉 일출봉이 제주의 시작이 된다.

신비롭고 거대한 일출봉을 제주의 시작이자 상징으로 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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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모든 관념의 밑바닥이 된 끝의 감각은 그 풍경 속에 있었다.

끝없는 미지의 태평양과 마주한 마지막 봉우리.

저쪽으로 가면 중국, 유구국(오키나와), 비율빈(필리핀)이 있지만

이쪽은 왜구의 섬 너머 가도가도 끝없는 바다 뿐인 세상의 끝.

바다로 내달리던 대지의 마지막 안간힘을 간직한 일출봉이

매일 아침 미지의 세계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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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제주의 끝이자 시작이라는 강한 암시라도 하듯

갑자기 구름을 뚫고 한 줄기 빛이 일출봉 앞바다에 내려왔다.

신성한 바위와 막막한 수평선에 쉬지 않는 하늘의 조화가 드리우자

세상 끝 풍경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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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봉 / 일출봉 / 21코스 종점



원을 다 그리고 우도로 가기 위해 이곳에 다시 오게 될까?

그래서 지미봉의 일출을 보고 종달리에서 한나절을 즐길 수 있을까?


오지 않은 내일을 그리워 할 때가 아니었다.

한줄기 빛과 함께 걸어야 할 때였다.

잠시 고개 돌리면 사라질 그 빛을 따라 올레의 끝으로 가야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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