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열린 로마유적, 티파자

알제리에서의 열흘 12

by WonChu

알제리에서의 닷새째 날. 공식행사 일정이 끝나고 일행들은 모두 한국으로 돌아갔다. 친구와 둘만 알제에 남았다. 잔뜩 기대했던 사하라투어가 여러 이유로 좌절된 상황. 여러 곳을 알아보다 알제 서쪽의 가까운 로마유적지 ‘티파자’로 가기로 했다. 그곳을 찍은 가장 큰 이유는 ‘티파자의 봄에는 신들이 내려와 산다.’고 했던 카뮈의 예찬에 힘입은 바 크고, 바다로 열린 로마유적의 사진이 너무도 매혹적이었기 때문.


대도시를 벗어날 때는 여행사를 끼고 가야 안전하다는 권고에 따라 여행사를 찾아 센트로로 나갔다. 하지만 때는 금요일, 이슬람은 금요일이 휴일이라 여행사의 문들은 닫혀 있었다. 알제에서 티파자는 70km. 서울로 치면 인천과 비슷한 위치이다. 시간이 많다면야 재미로라도 대중교통을 탔겠지만, 그러기엔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바로 택시를 잡기로 했다. 달려오는 택시의 앞 유리 너머로 인상 좋은 기사를 골라 택시를 세웠다. 건장한 체구에 유순해 보이는 인상, 눈웃음이 매력적인 사나이였다.


“티파자, 하우 머치?“하고 묻자, 맛난 먹잇감을 발견한 택시기사는 재빨리 내려 트렁크에 짐부터 싣기 시작했다. 가방을 부여잡고 가격흥정에 돌입. 기사는 불어로 뭐라뭐라 하소연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가면 빈 차로 와야 하기 때문에 추가요금을 받아야 한다는 만국 택시기사 공통의 핑계를 대고 있는 듯 했다. 결국 2000디나르(약 2만5천원)에 합의를 보고 기분 좋게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기사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잠시 흥정을 잘못한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이미 결정을 본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 도로는 한산했고,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간간히 보이는 중에 라디오에서 샹송이 흘러나왔다. 낭만이 구름처럼 퍼지는 후렴을 따라 택시가 날아오를 듯 질주했다. 역시 좋은 음악은 풍경을 가리지 않는 법. 지나간 역사는 잠시 잊고 제목도 모르는 샹송에 실려 티파자로 날아갔다.


티피자는 작은 항구도시이다. 어감이 너무나도 좋은 ‘티파자’라는 말은 고대 로마어로 ‘기항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보석 브랜드 ‘티파니’의 어원이 ‘신의 현시’라는 그리스어라고 하니 ‘티파자’도 의미상 신들과 무관하치 않을 듯하다. 티파자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로마의 궁전유적이 있다. 알제리 최대 규모의 로마유적 ‘팀가드’에 비하면야 아담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해안선을 따라 원형경기장, 바다로 향하는 회랑, 교회당, 신전, 원형극장, 그리고 그 끝에 카뮈 기념비 등 갖출 것은 다 갖춘 유적지이다. 무엇보다 유적지 전체가 짙푸른 바다를 안고 있어 규모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 할 수 있다.


3000원 남짓 하는 입장권을 끊고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에 갖가지 모양의 온전치 않은 돌기둥들을 어렵사리 세워놓았다. 2천 년의 시간을 떠올리며 기둥 하나하나를 살펴보다보니 어느새 둥그런 원형경기장. 이 북아프리카 변방의 작은 경기장에서도 수많은 검투사들은 인생을 건 승부를 벌였을 것이고, 바닥은 흥건한 피로 젖었을 터. 비록 경기장은 이미 오래 전 무너졌지만 이곳에서 결투를 해야 했던 자와 결투를 구경했던 자들의 간절함은 지금 우리의 간절함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 수많은 죽음들을 떠올려보기도 전에 작은 원형경기장의 끝에 다다른다. 그리고 원형경기장에서 벗어나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순간 바다로 향한 돌기둥들이 나타난다. 고작 2천 년 만에 돌덩어리로 남아버린 문명의 흔적 너머 변함없는 바다가 놓여 있는 풍경. 갯바위 위부터 유적지 안쪽으로 언덕을 이루며 늘어선 석주들 사이를 걸으며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는 느낌’을 실감한다. 마음대로 떠올린 지붕과 회랑 사이, 배를 타고 온 손님을 맞으러 옛날의 그들처럼 걷다보면 하늘과 바다도 서서히 그 옛날의 하늘과 바다가 된다. 배가 들어왔을 갯바위의 끝에서 뒤돌아 손님의 눈으로 궁전을 보면 돌기둥은 어느새 환영의 행렬로 바뀐다. 회랑은 긴 항해의 피로를 풀 달콤한 휴식으로 향하는 입구가 되고, 궁전은 해변 언덕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이 궁전의 주인은 ‘누미디아’ 왕국의 ‘유바 2세’와 ‘클레오파트라 세레네(8세)’였다. 두 사람 모두 특별한 부모를 둔 죄로 로마에서 볼모로 잡혀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레네는 우리가 다 아는 클레오파트라(7세)와 안토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이다. 그녀의 부모는 옥타비누스(훗날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패배한 뒤 자살(기원전30년) 했고, 그녀의 세 오빠도 그 와중에 모두 죽었다. 홀로 남은 세레네는 안토니우스의 공식적인 아내였던 옥타비아(옥타비아누스의 누나)에게 맡겨졌고, 어른이 되자 누미디아 유바 2세의 아내로 보내졌다. 그리고 유바 2세는 그녀를 위해 이 바다로 열린 궁전을 지었다고 한다.


유바 2세도 세레네 못지않게 애잔한 성장기를 거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유바 1세는 누미디아 왕국을 건설하고자 로마에 대항하다 패배했다. 이것이 독립왕조를 위한 누미디아의 마지막 시도였다. 유바 2세도 세레네처럼 로마로 끌려가 그곳에서 귀족교육을 받아 로마인이 된 후 다시 누미디아로 보내졌다. 티파자는 아버지의 야망을 외면해야 했던 유바 2세와 세기의 영웅 사이에서 태어나 너무도 빨리 모든 것을 잃어버린 클레오파트라 8세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부모를 닮아 남달리 총명했던 두 사람은 서로 합심하여 비록 로마의 속령일지언정 누미디아를 잘 다스려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 사람들은 건축물을 하나의 책으로 여겼다고 한다. 티파자의 로마궁전을 한권의 책이라고 한다면 같은 아픔, 같은 한계를 속으로 삭이며 겉으로는 평온한 삶을 꾸려가는 부부에 관한 잔잔한 멜로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전, 그들이 매일 거닐었을 언덕을 오른다. 해변의 주요 건물들은 그런대로 복원되어 있지만, 뒤쪽의 잔해들은 숲 속 여기저기에 자연스레 방치 되어있다. 연인과 가족들이 오래 된 돌무덤과 궁전 위에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폐허의 구석구석에서 남녀가 다정하게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속삭이는 모습들도 자주 눈에 띈다. 과도한 애정행각은 고사하고 맞잡은 손마저 조심스럽지만 그들을 둘러싼 사랑의 열기는 그래서 더 뜨겁게 느껴진다. 그 아름다움에 비해 어이없을 정도로 통제되지 않은 이곳을 두고 세계문화유산에 걸 맞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로마유적을 이렇게 편안하게 즐기는 것이야 말로 알제리에서만 즐길 수 있는 호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모든 공간에 들어갈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기댈 수 있다. 사진촬영도 공식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라면 사진으로는 이곳의 풍경을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


그 편안함의 절정은 언덕 위 교회당이다. 모자이크 타일이 깔린 바닥을 걸어 들어가, 일렬로 놓여 진 코린트 양식의 기둥머리 위에 서서, 한 쪽만 남아 있는 벽면 가운데 뚫린 아치들 너머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파도소리 덕분에 사람들이 소리를 쳐도 소란스럽지 않고, 바닥이 타일이라 아이들이 뛰어다녀도 심란하지 않다. 하늘이 뚫려 있어 따사로운 햇빛을 즐길 수 있고, 바닷가 언덕 위라서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 시간은 여기서 멈춘다. 몇 시간이고 앉아 있고 싶고, 매일이라도 오고 싶은 이곳에서.


유적지의 끝에 다다르면 이곳을 놀이터처럼 들락거리며 수영도 하고, 연애도 하고, 글도 썼던 카뮈의 기념비가 서 있다.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침없이 사랑할 권리이다.“


기념비에 새겨진 카뮈의 이름은 알제리에 대한 그의 빗나간 사랑 덕에 누군가에 의해 지워졌지만, 그가 남긴 글귀는 이곳에 대한 감동적인 결말을 제공한다. 변방의 검투사도, 유바 2세도, 클레오파트라 8세도, 그리고 나도, 살아 있는 한 영광을 누릴 권리가 있다. 거침없는 사랑의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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