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에서의 열흘 11
이슬람의 의미는 ‘신께 복종’이다. 모스크에서 보았듯 그들은 인간에게 복종하지도, 다른 인간의 복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단지 예의를 지키길 바랄 뿐이다. 이슬람의 폭력성은 종교의 산물이 아니라 석유를 둘러싼 전쟁 때문에 증폭된 측면이 크다. 여기에 이스라엘과의 종교적 갈등이 계속 불을 지르는 형국. 최근 국제전으로 번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이 보여주듯 석유와 종교를 연료로 타오르는 전쟁의 불길은 사그라들기는 커녕 더욱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러므로 그 전쟁의 원인에 대한 지식, 오해 없는 이슬람의 이해는 이제 인류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여행기임에도 불구 이슬람에 대한 보고서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슬람원리주의
‘이슬람원리주의’는 이슬람의 교리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배타적인 세력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이슬람 단체를 지칭할 때 사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서구에서 만들어낸 말로 이슬람권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다. 이슬람원리주의라는 말은 은연중에 이슬람의 원래 교리가 폭력적이고 배타적이며 성차별적임을 암시한다. 비유컨대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을 기독교 원리주의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하자면 한국의 극우보수기독교도 기독교 원리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금욕적인 기독교를 청교도적이라고 두루뭉수리하게 표현하면서도 이슬람은 굳이 원리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악의적이라는 생각이다.
이스라엘
알제리 사람들의 프랑스와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은 매우 크다. 프랑스에 대한 반감의 이유는 카스바에서 충분히 알아보았으므로, 이제 이스라엘 차례이다. 이스라엘 문제의 원죄는 엉뚱하게도 영국에게 있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싸웠다. 자력으로 독일을 이길 수 없었던 영국은 아랍인에게 함께 싸워주면 팔레스티나 땅의 권리를 인정해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아랍인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때 영국에서 파견된 장교의 이야기가 그 유명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영국은 팔레스티나에 거주하던 유대인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다. 그리고 더 황당하게도 프랑스와 나중에 이곳을 양분하자는 밀약까지 맺는다. 영국은 독일과 싸우는 조건으로 같은 땅을 두고 3중의 조약을 맺은 것이다.
결국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러자 당연히 아랍인과 유대인은 예루살렘이 있는 팔레스티나의 권리를 서로 주장하게 되었고, 입장이 곤란해진 영국은 이중, 삼중 조약으로 분란만 일으켜놓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영국과 프랑스가 무책임하게 떠난 자리에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끝없는 전쟁만 남겨 졌고, 그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지키려는 이슬람과 2천년 만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혈투, 그리고 그 와중에 오갈 데 없이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의 비극, 미국의 개입으로 탄생한 과격단체들의 테러와 만행...의 시작은 식민지에서 벌인 영국의 원칙없는 약속들이었던 것이다.
석유
그런데 이 무슨 신의 장난인지, 아랍인들의 땅에서 엄청난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된다. 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종교적, 정치적 애증에 말 그대로 기름이 뿌려졌다. 이 석유때문에 냉전시대에는 아랍세계에 친미정권, 친소정권을 세우려는 경쟁이 벌어졌고, 눈앞의 엄청난 자원이 걸린 이 싸움에서 이슬람은 분열되었다.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은 이슬람의 반미정서를 의식해 막후에서 은밀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인 정권을 붕괴시키고자 반정부 이슬람 단체들에게 은밀하게 무기를 지원하는 방식. 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단체도 이슬람은 이슬람이었으므로, 그들은 정치지형이 빠뀔 때마다 쉽게 미국을 적대시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탈레반이고, 탈레반이 낳은 사생아가 IS이다.
미국은 그렇게 자신들이 제공한 무기를 든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배후기지는 이스라엘이고, 최전선에 CIA가 있다. 자기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아니니 전쟁 자체는 걱정이 아닌데 돈이 걱정. 석유와 전쟁의 손익분기가 분명하게 역전될 때까지 아마도 미국은 이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현재 주변국의 전쟁에 참견하기를 좋아했던 리비아의 군국주의자 카다피는 제거되었고, 러시아와 터키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랍에 지배력을 높여가는 중이다. 시리아야 불에 타건 말건...
영국이 불을 붙인 종교전쟁에 온 세계를 뛰어들게 만든 것은 석유이다. 돌려 생각해보면 이슬람은 폭력의 근원이 아니라 악다구니 속에서도 평화를 상기시켜주는 유일한 정신적 버팀목일 수도 있다. 이슬람을 비난하기 전에 한 가지 상상을 해보자. 만일 우리나라에서 대량의 석유가 발견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원부국의 현명한 복지국가가 될 확률이 높을까? 아니면 힘없이 휘둘리는 극동아시아의 화약고가 될 확률이 높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대재앙이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사람 말고는 이렇다 할 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지지 않으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