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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Feb 15. 2017

티파자에서 시누아로

알제리에서의 열흘 13


티파자에서 아침.

새로운 곳에 가면 새벽산책을 하는 버릇이 있다. 새벽산책은 짧은 시간을 머물러도 그곳에서 꽤 오래 지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고, 오늘의 여행을 계획하기에도 좋다. 하지만 티파자에서는 새벽산책을 하지 못했다. 어제 점심을 먹으며 식당에서 일하는 청년들인 ‘아유브’, ‘네심’과 밤에 만나기로 했고, 어렵사리 술을 구해 항구와 축구장 구석을 전전하며 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이었다.     


25살 네심은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고, 여자친구도 없다고 했다. 28살 아유브는 술 담배를 끊었지만 특별한 날이니 같이 했고, 마찬가지로 여자친구는 없었다. 아이폰으로 ‘셀린 디옹’을 틀어놓고, 이슬람과 알제리에 대해 열광하다가도, 엄격한 비자심사 때문에 유럽이나 외국으로 나갈 수가 없다고 말하며 시무룩해졌다. 긴 시간 서툰 영어로 대화를 하면서 알제리 젊은이들의 현실에 대해 많은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모습 자체가 알제리의 국가적 현실이었다.  

   

아침을 먹은 식당은 ‘레알 마드리드 피자’. 패스트푸드점에는 알제리계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의 전성기 시절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여기서는 호나우도, 라울, 카시아스...는 모두 조연이다.     

 


티파자에도 박물관이 있다. 작은 정원과 방 한 칸에 비교적 썽썽하게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덩치가 큰 경비원은 아주 근엄하게 사진촬영은 안된다고 말하고서 전시장 밖으로 나가버리는 센스를 발휘했고, 우리는 여한 없이 사진을 찍었다.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타일 벽화의 보존상태는 완벽했다. 부모와 어린 아들로 된 일가족의 모습 둘레로 이곳 총독들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인물들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타일들을 잘게 쪼개 명암까지 살린 모자이크 기법이 보기 좋았고, 벌거벗은 남자를 비롯하여 죄수처럼 묘사된 일가족의 사연이 궁금했지만 안내책자가 불어라서 아직도 그 사연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안내책자에는 박물관은 물론 티파자 일대의 로마유적과 유물에 관한 사진과 해설이 자세히 실려 있었다. 유적지를 가보기 전에 박물관 들러 이 책자를 먼저 본다면 더 많은 돌맹이를 유심히 보게 될 것이다.    


박물관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서쪽으로 30분 거리의 작은 해변마을 ‘시누아’로 향했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왠지 그 뜻이 해변일 것 같은 이름, 시누아... 친구는 지난밤, 여기까지 왔는데 지중해 바다에 몸을 담가봐야 되지 않겠냐며 아유브에게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을 물었고, 아유브는 시누아 해변을 알려주며 이틀 뒤면 휴일이니 자기가 안내하겠고 했지만, 시간이 없는 우리는 그의 호의를 정중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알제리 어딜 가나 이런 호의가 넘친다.    


시누아의 호텔은 티파자의 호텔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이 인근에서 유일한 5성급 호텔로 카운터에는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시설은 물론 바다를 향한 넓은 테라스의 전망도 훌륭했다. 호텔 앞 바다가 잘 보이는 공터에는 바닷바람을 맞아 한쪽으로 누워 자란 올리브 나무 아래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혼여행지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숙소에 지친 아저씨 둘이 짐을 풀고, 수영을 해볼까 하고 해변으로 나갔다. 철지난 해변에는 조개껍질을 주우러 나온 일가족과 나이든 낚시꾼, 그리고 쓰레기들만 즐비했다. 세찬 바람에 섞인 모래들이 따갑게 얼굴을 때렸다. 우리는 뒹구는 쓰레기들과 함께 해변을 걸었다. 누군가 쌓아놓은 모래성이 사막의 바위처럼 본래의 모습을 잃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해변을 한 번 쭉 걷고 나자 아무것도 할 게 없었고,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다. 크지 않은 마을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무작정 걸었다. 한 여름 피서객들이 쓸고 지나간 해변의 시설들은 쓸쓸하게 방치되어 있었고, 피서객을 상대하는 주민들도 먼 곳의 집으로 돌아간 듯 한적했다. 적막을 깬 것은 한 무리의 악단을 실은 트럭이었다. 그들은 북과 피리를 불며 도로를 달렸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그들을 따라 뛰어갔다. 결혼축하 퍼레이드였다. 악단은 작은 종이상자에 담긴 예쁜 설탕 케잌을 나누어 주었다. 우리도 한 상자를 받아 먹어보았다. 색소를 넣은 설탕반죽으로 오색찬란한 과자는 골이 띵할 정도로 달았다.   

    

알제리의 결혼식은 악단이 하루 종일 동네를 돌며 연주하고, 피로연에서는 밤새도록 춤을 춘다. 나중에 알제로 돌아와 호텔에서 결혼피로연을 보았는데, 알제리 여인들은 그 동안 숨어 지낸 한을 모두 풀려는 듯, 동화책에서나 본 화려한 반짝이로 장식된 드레스를 차려입고, 새벽까지 지치지도 않고 춤을 추고, 또 추었다. 드레스를 차려 입은 아이들도 질리지도 않는지 뱅글뱅글 돌며 치마를 펼쳐본다. 남자들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지루하게 기다렸다. 알제리의 결혼식은 여자들의 축제였다. 시누아의 신혼부부는 우리와 같은 호텔에 묵었고, 다음날 아침 튀니지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모로코보다 튀니지가 물가가 싸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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