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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Feb 15. 2017

이발소의 오후, 올리브 나무 아래의 밤

알제리에서의 열흘 14

해변 마을로 유명한 시누아. 비수기라서 그런지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할 것, 볼 것을 찾아 발 닿는대로 동네를 걸었다. 해변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성업 중인 작은 이발소를 만났다. 머리를 깎을까하다가 수염이 많은 친구가 면도만 하기로 했다. 남자들만의 공간에서 어색하게 앉아 기다렸다. 한 청년이 축구선수처럼 반삭으로 머리를 깎고 있었고, 옆에는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알제리 남자들은 머리와 수염에 꽤 많은 공을 들인다. 낯선 사람들을 보고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웃으며 얘기하다가도, 머리가 맘에 차지 않는지 머리를 가리키며 이발사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이발사는 남부 프랑스계 느낌이 나는 키가 작고 말이 많은 사내였는데, 이발을 하는 동안만은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남는 날에는 이발도 좋은 구경거리이자 소일거리였다. 면도를 한 친구는 10년은 젊어보였다. 면도 중에 들어온 중학생은 옆자리에 앉아 한참을 구경하다가, 면도를 마친 친구를 보더니 영어로 논평을 했다. “유 아 소 뷰티풀.” 면도값은 우리 돈으로 700원이었다. 다음날, 알제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다 지친 우리는 결국 이발소로 가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는 택시가 아니라 승용차를 불렀고, 운전수는 휴일을 맞은 현직 경찰이었다.    

 

이발소 밖은 모래바람이 불고 있었다. 모래먼지를 겉옷으로 가리며 사막의 모래바람을 상상했다. 그렇게 모래를 뚫고 반대편 끝에 있는 모스크로 갔다. 황토색의 소박한 모습, 기도 시간이 아니라서 모스크마저 텅 비어 있었다. 한 청년이 청소기로 기도실의 카펫을 청소하고 있었다. 미흐랍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안을 좀 둘러봐도 되겠느냐고 묻자 맘대로 둘러보라고 한다. 이층으로 올라가 보았는데 아마도 여성 기도실일 그곳도 텅 비어 있었다. 청소기 소리를 들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밖으로 나오니 바람은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없었다.  

  

바닷가 카페에서 커피와 탄산주스, 그리고 벌꿀 케잌을 먹었다. 알제리 완소 먹거리를 앞에 두고 쓸쓸한 파도, 젊은 남녀들과 나이든 할배들의 수다를 구경하는 사이, 꿀벌이 날아와 케잌에 스며있는 꿀을 빨고 있었다. 알제리의 모든 벌꿀케잌은 천연벌꿀로 만든다더니.    


잠시 쉬기 위해 호텔로 향하는 도중 공터에서 스무 명 남짓한 어른들이 쇠구슬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간이 남아돌기는 현지인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게임은 길이 8미터 정도의 직사각형 안에서 벌어지는데, 작은 은행열매만한 헝겊공을 아무데나 던져 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세 명 씩 양편으로 나눠 주먹 만 한 쇠구슬을 던져 마지막에 가장 가까이 남는 편이 승리한다. 마치 동계올림픽의 컬링을 땅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데, 묵직한 쇠구슬을 던져 상대편 구슬을 쳐내는 맛, 스핀을 먹여 상대 구슬을 피하는 기술 등이 백미였고, 팀원 각자의 장기가 따로 있었다. 열 두 번을 던지면 끝나는 이 게임은 우리나라 고스톱 판처럼 끝도 없이 계속되었고, 동네 노인들은 긴 나무 의자에 앉아 선수들과 한마음으로 관전을 이어갔다. 노인들은 끈질기게 구경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앉으라며 빈자리를 내주었다. 한참 구경을 하다 보니 옆에는 새로 오신 노인이 서 계셨다. 자리를 양보했더니 서 잇던 노인은 물론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쇠구슬 놀이를 볼만큼 보고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올리브 나무 아래의 미망인이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었다.    



길고 긴 낮이 지나고, 밤이 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 친구는 어김없이 술을 찾았다. 이런 시골에서 아저씨 둘이 할 게 술 마는 것 말고 뭐가 있을까. 호텔 직원에게 술파는 곳을 묻자 직원은 바로 “티파자”라고 대답했다. 어제 우리가 술을 샀던 그 창고가 ‘티파자 주’에서 유일하게 술을 파는 곳이었던 것. 긴긴 낮에 이어 술도 없는 긴 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방으로 올라 온 우리는 할 일이 없어 남은 돈을 계산해 보았다. 내일 알제로 가려면 현금이 좀 부족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호텔 직원에게 환전할 곳을 물었다. 이발사보다 더 키가 작고, 더 말이 많고, 더 어린 호텔직원 ‘네시프’는 환전을 하는 곳은 없지만 자기가 알아볼테니 기다리라고 하더니 여기저기 분주하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30여분 뒤, 호텔로비로 누군가 돈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호텔 주방에서 일하는 청년으로, 몇 달 뒤 캐나다 몬트리올의 식당으로 일을 하러 떠날 예정이어서 미리 달러를 챙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곳의 환율은 은행에서 환전할 경우 1달러에 110디나르 정도이고, 거리의 암달러 상에게 환전할 경우 160디나르로 환율 차이가 많다. 이런 환전은 양측 모두 이익이 되는 거래였다. 흐뭇한 거래를 성사시킨 네시프는 사진을 찍자고 했고, 우리는 마치 국가 간 협약이라도 맺은 사람들처럼 악수를 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밤 산책을 나갔다. 미망인이 하루를 보낸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세 명이 사내들이 모여 앉아 모닥불을 피우고 차를 끓이고 있었다. 밤바다를 둘러보고 호텔로 들어오다 퇴근하는 네시프와 마주쳤다. 네시프는 불을 피워놓고 앉아 있는 사내들이 자기 친구라며 같이 가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그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자리를 내주었다. 모닥불에 끓인 차를 권하고, ‘씨샤’(물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물담배는 일반담배보다 길고 깊게 들이마셔야 제대로 연기가 났고, 여러 명이 돌려가면서 피웠다. 부드러운 연기에서 과일향이 났다. 시샤를 피우는 동안은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기만 해도 되는 것이 좋았고, 연기를 다 즐긴 다음 옆 사람에게 시샤를 건네는 재미도 독특했다.     



20대 후반의 ‘아이작’, ‘샥페이’, ‘압데르힘’은 이곳에 살지는 않지만 가끔씩 씨샤를 하러 이곳에 온다고 했다. 아이작은 말끔한 외모의 회사원으로 영어를 매우 잘했고, 얼마 전 뉴욕에 갔다 왔다며 맨하탄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압데르힘은 전형적인 아랍계로 말이 없었다. 셋 중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샥페이였다. 삭발을 한 건장하고 눈매가 부리부리한 사내로 모닥불 조명을 얼굴은 이집트의 람세스와 흡사했다. 굵은 팔뚝으로 느긋하게 차를 끓이고 부으며 낮게 한마디씩 툭툭 말을 던지고는 빙글빙글 웃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가 끓여주는 진하게 우려낸 차가 ‘사하라 티’이고, 한 달에 한번 트럭을 몰고 40시간을 달려 사하라 사막으로 일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사하라로 가는 40시간의 질주라니...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후끈해졌다.      


가장 깊숙한 사하라 사막인 ‘자넷’으로 가는 안내자를 여행이 거의 끝나갈 때 만나게 되다니... 우리는 늦은 밤까지 흥분과 아쉬움으로 물담배를 돌려 피웠다. 사막포스 작렬하는 샥페이가 전직 탁구선수였다는 말에 피식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고, 네시프의 수다는 잠시의 적막도 허용하지 않았다. 올리브 나무 아래 보름달 때문에 별도 보이지 않았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자리를 파할 무렵, 아이작과 샥페이는 내일 그들의 차로 근처의 명소를 보여주겠다고 자청했다. 우리는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내일 아침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베란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철지난 해변마을에서 보낸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친구와 오늘하루 만난 사람들을 한명한명 되돌아보는 동안, 아무 볼 것 없는 마을에서 산책으로만 하루를 보내는 것도 색다른 추억을 만드는 괜찮은 여행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친구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평온했던 마음이 뒤집혔다.    


“걔들 고맙긴 한데 좀 이상하지 않어? 뉴욕이니 사하라 사막이니...”    


이 한마디에 소심한 여행자의 머릿속에 한 가닥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뉴욕, 사하라, 말없는 사나이... 그들에게서는 우리가 만나왔던 보통 청년들과는 뭔가 확실히 다른 기운이 느껴졌고, 많은 이야기를 했음에도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들은 바가 없었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들이 혹시 과격이슬람의 조직원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연기처럼 퍼져갔다. 의심이 커져갈수록 이슬람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호의를 베푼 친구들을 의심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같이 커졌고, 나조차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절감했다. 위층 베란다에서 새 신부의 달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쨌거나 이제 자야할 시간이었다.   

  

밤새 각자 꿈속에서 여러 장면을 상상한 우리는 아쉽지만 그들의 호의를 거절하기로 했다. 아침을 먹으며 네시프에게 부탁해 아이작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아이작과 샥페이는 호텔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친구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우리는 알제로 돌아간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아이작은 샥페이에게 전화를 건넸고, 샥페이는 다음번에는 꼭 사하라 사막을 같이 가자고 했다.     


이것으로 시누아에서의 여정은 끝났다. 우리의 천사 네시프에게 컵라면과 즉석떡국을 한 아름 안겨주고 호텔을 나섰다. 여기서 서쪽으로 더 가면 다음은 ‘셰르셀’이다. 누미디아 왕국의 수도였고, 리비아의 카다피를 배출한 군사학교가 있다는 제법 큰 도시, 거기서 계속 서쪽으로 가면 소설 ‘페스트’의 배경인 알제리 제2의 도시 ‘오랑’에 닿을 것이다. 스페인, 모로코, 프랑스의 영향이 혼재된 국제도시.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가지 않기로 했다. 핑계로 한 말이지만 그대로 지키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았다. 이발사에게 부탁해 휴일을 맞은 경찰이 모는 나라시 택시를 타고 알제로 향했다. 알제로 가는 길에 거대한 크기의 돌무덤, 클레오파트라의 묘를 둘러보았고, 경찰 기사는 우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차 위에 스마트 폰을 두고 출발하는 바람에 한참동안 온 길을 되짚어 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우리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알제에 도착해 미리 얘기한 택시비에 500디나르를 얹어 주었다.     


뭔가 미안한 마음이 많이 남는 곳에는 다시 가게 될 확률이 높은데... 

내가 시누아를 다시 가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알라만이 알고 계실 것이다.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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