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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Apr 07. 2017

사하라사막 오리엔테이션

알제리에서의 열흘 16

 

히말라야 라운딩 트레킹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은 ‘쏘롱라 계곡’(약 해발5400m)이다. 약 40일이 걸리는 여정의 딱 중간지점이고, 트레킹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자들은 이곳을 넘기 전 산간마을 ‘마낭’에서 고산등반에 관한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여러 준비물과 고산병 대처요령 등을 알려주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조난영화 <Into Thin Air>(희박한 공기 속으로. 1997)를 틀어준다. 고산병도 고산병이지만, 이 영화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이후 하산 길에 발생한 조난사고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쏘롱라를 넘었다고 해도 끝까지 긴장을 풀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요즘은 새로 더 실감나게 리메이크한 <에베레스트>(2015)를 틀어주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사하라가 히말라야보다 덜 위험하지는 않다. 다만 일반적인 사막투어는 여행사의 안내를 받아 짧은 기간 다녀오기 때문에 마음이 덜 무거울 뿐이다. 나는 첫 번째 알제리에서 사하라사막에 가지 못했고, 사하라는 그곳에 다시 가야할 이유로 남아있다. 두 번째 알제리를 위해 사하라사막으로 가는 방법을 미리 알아보고, 조난에 대비한 자발적인 오리엔테이션을 할 필요가 있겠다. ‘알제리에서 사하라 가기’와 ‘사막 조난 시 대처요령’이다.  

  

<알제리에서 사하라 가기 >   


사하라사막의 넓이는 남한의 86배, 여러 나라에 걸쳐있다. 알제리의 경우 아틀라스 산맥 이남, 국토의 80%가 사막이다. 사막이 이렇게 넓지만 알제리에서 사하라사막으로 가는 길은 간단치 않았다. 안전상의 문제와 일정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출발 전 조사해본 결과 알제리의 사하라사막은 세 군데가 있었다. 모로코 쪽의 서사하라(티미문), 튀니지 쪽의 동사하라(비스크라), 북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의 경계를 이루는 광막한 남쪽의 사하라(타만라세트 혹은 자넷). 거리상으로는 알제를 기준으로 비스크라가 420km, 티미문이 1200km, 타만라세트가 2000km였다. 우리는 길지 않은 여정을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가까운 티미문으로 가기로 하고,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항공권과 호텔을 미리 예매, 예약한 후 기세등등하게 알제리로 출발했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계획이 아니었다.     


나중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사실은 거리가 가까운 곳일수록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었다. 알제리의 과격이슬람단체 ‘알 카에다 마그레브 지부’(AQIM)는 주로 동부산간이나 사막오지에 은신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부의 ‘비스크라’는 그들의 주 활동무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 사건일지를 종합해 볼 때 그들의 주요 타깃이 서양인과 외국기업이었다는 사실이다. 돈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테러를 감행하는 것이다. 알제리에서 동양인은 대부분 중국인인데, 그렇다보니 그들은 모든 동양인을 일단 중국인으로 본다. 중국과 알제리는 오랜 우방이고, 중국인은 대부분 건설노동자이므로 명분으로 보나 돈으로 보나 영양가가 없다. 알제리에서 동양인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이유이다. 중국인 취급한다고 무조건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닌 것이다. 어쨌거나 특종을 건져야 하는 특파원도 아닌데 우리가 일부러 위험한 소굴로 찾아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다음 후보지 서사하라 ‘티미문’은 비스크라보다는 덜 위험하지만 그야말로 작은 시골동네로 치안이 확실치 않았다. 사막지역은 주변국과의 국경이 되고 있는데, 국경지대는 밀수가 성행하는 관계로 사건사고가 많다. 그러므로 어느 방향이든 너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더구나 티미문은 비행기가 자주 다니지 않았다. 국내항공사 ‘에어 타만라세트’는 일주일에 알제와 타만라세트를 2회 운행하며, 이중 한 번만 티미문을 경유한다.    


그리하여 짧은 일정에 맞춰 피나는 구글링으로 우리가 어렵게 찾아낸 4박5일의 계획은 이랬다. 일단 직항을 이용해 티미문으로 간다. 현지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1박2일의 사막투어를 한다. 돌아올 때는 티미문에 항공편이 없으므로, 근처 200km 떨어진 주도 ‘아드라르’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알제로 돌아온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을 들은 대사관 직원들은 아연실색했다. 지방도시에서 그런 먼 길을 외국인이 이동하는 것은 테러단체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경찰과 군인들의 검문에 걸려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고, 현지동행인 없이 아랍어, 프랑스어 둘 다 안 되는 동양인끼리는 더욱더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도 세 곳 중 가장 안전한 곳이 관광객이 가장 많은 타만라세트라는 것이다.    

 

타만라세트는 사하라 사막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깊숙한 곳으로, 너무 멀고 광막해 가장 가보고 싶지만 지레 포기했던 곳이었다. 마을 이름을 따 ‘자넷’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주변에 선사시대 암각화가 널려 있으며, 육중한 ‘아호가르’ 산맥이 있어 화성보다 더 화성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하는 곳... 손쉽게 사막을 볼 수 있는 모로코나 튀니지의 사막과는 차원이 다른 사막이 타만라세트였다. 거기다 비행기로 가면 티미문이 한 시간 반, 타만라세트는 두 시간 반이므로 이동시간상 별 차이도 없다. 가장 멋진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니 반가운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얘기였고, 그들은 우리가 그 어느 곳도 가지 않기를 바랐다. 적어도 믿을만한 현지동행인이나 여행사라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일정이었다. 사하라사막 투어는 최소 8박9일을 잡아야 했다. 출발일, 도착일 말고도 사막투어 전 하루는 준비물구입 및 기후적응을 해야 하고, 3박4일의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하루정도는 삶은 감자처럼 뜨거워진 몸을 식혀야하므로 앞뒤로 이틀씩 일정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우리는 사하라로 떠나지 못했고, 프랑스에 본사를 둔 여행사에 미리 결재한 티미문행 항공료 40만원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고민 끝에 신들이 내려와 산다는 티파자 해변으로 떠나, 그곳에서 매달 한 번씩 트럭으로 40시간을 달려 자넷을 오간다는 사나이 ‘샥페이’를 만났다. 그가 끓여주는 사하라 티는 흥분과 아쉬움이 섞여 씁쓸하기만 했고...

  

그런데, 알제리사하라로 가는 더 확실한 방법을 발견한 것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알제공항에서 도착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현지여행사들의 공항부스를 발견한 것이다. 여행사들은 타만라세트 뿐 아니라 티미문, 최대로마유적 팀가드... 등의 사진을 걸어놓고 손님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로써 알제리사하라로 가는 마지막 퍼즐은 마지막 날에서야 완성되었다. 

‘공항여행사에서 8박9일 타만라세트 투어를 예약할 것!’ 

지금까지 알아본 바로는 이것이 최선이다. 물론 트럭운전석에 앉아 빙글빙글 웃는 샥페이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지만.

      

<사막 조난 시 대처요령>    


공식일정 동안 통역을 해주던 분이 사하라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사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뭐냐고. 통역사는 곧장 “절대고요“라고 대답했다. 아무런 소리가 없는 적막...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다. 그뿐인가. 밤을 비추는 것은 달과 별 뿐이고, 하늘과 나 사이엔 모래와 바람뿐이며, 지평선에는 하루 두 번 가장 크고 뜨거운 태양이 뜨고 지는 곳. 여행자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번 사막을 꿈꾼다.   

   

하지만 얄궂게도 아름다운 곳일수록 위험한 경우가 많다. 위험하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여행사를 통한 사막투어라고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래폭풍에 순식간에 도로가 사라질 수도 있고, 차가 고장이 날수도 있으며, 볼일을 보는 사이 일행이 떠나버릴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난데없이 테러 단체가 나타날 수도 있다. 알제리정부가 여러모로 각별히 관광객의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한다. 사막에 가기 전 최소한의 조난상식은 필수다.      


사막에서 물 없이 인간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정답은 반나절, 길어야 하루이다. 그늘에서 쉴 경우 하루에 7.6리터, 걸어갈 경우 15.2리터의 땀을 흘리기 때문에 인간은 반나절이면 치명적인 탈수상태에 빠진다. 그늘조차 섭씨 3,40도를 오가는 열기에 체온이 상승하면 두통과 오한, 경련이 일어나고, 정오가 넘어갈 때쯤이면 심한 탈수증상에 빠져 오아시스에서 어린왕자가 걸어 나오는 환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마치 스위치를 끈 듯 갑자기 밤이 찾아오고, 이내 온몸을 찌르는 듯 한 추위가 시작된다. 하늘이 도와 밤새 추위를 견뎌낸다 해도... 다음날 공포의 태양은 다시 뜨겁게 떠오른다.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내 물은 내가 지고 가야한다. 그리고 각종 비상식량과 1인용 침낭, 랜턴 등도 챙겨야 한다. 알제리를 배경으로 영화 <신의 이름으로>에서 주인공은 치약모양의 연유를 들고 다니며 영양보충을 한다. 좋은 아이템이다.    


모든 안전교육에 빠져서 안 되는 것이 사고사례이다. 쏘롱라가 에베레스트가 아님에도 <희박한 공기 속으로>를 보여주는 이유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만일의 경우 생존에 참고하라는 의미이다. 사하라 오리엔테이션에서도 최악의 사고사례가 빠질 수는 없겠다. 기자 ‘윌리엄 랑게비쉐’가 쓴 <사하라 사막 횡단기>에서 벨기에 여성의 실화를 보았다. 잘 참고해서 만일의 경우에도 꼭 살아 돌아올 것을 다짐하며... 요약해 옮겨본다.    


그녀와 남편과 어린 아들은 자가용으로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타만라세트에서 니제르 국경으로 가던 그들은 갑자기 길이 없는 평지를 만났다. 한참을 달려도 길이 나타나지 않자 그들은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려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도중에 그들을 태운 푸조가 고장으로 멈춰서고 만다. 그 다음의 진행상황은 다음과 같다.    


1. 방수포를 쳐 그늘을 만들고, 물을 최대한 아껴 마시며 일주일을 버틴다.

2. 일주일 내내 지평선을 쳐다보아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3. 죽음을 떠올리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4. 물이 떨어지면 차의 라디에이터에서 냉각수를 빼내 마신다.

5. 갈증에 못 이겨 가솔린을 들이킨다. 

  (배터리 윤활유는 유해성분이 많으므로 가급적 먹지 않아야 한다)

6. 오줌을 마신다. 수분부족으로 소변은 이미 시커멓다.  

7. 누군가 연기를 보고 발견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동차를 불태운다.

8. 아이가 뭔가를 삼키지도 못하는 지경 속에서 고통스러워한다.

   더 이상 보다 못한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아이의 목숨을 끊는다.

9. 남편이 자신의 살을 칼로 베어 흘러나오는 피를 아내에게 마시게 한다.

10. 회복불능인 남편의 요구에 따라 아내는 남편을 죽여 고통을 멈추게 한다.

11. 홀로 남은 그녀가 자포자기상태로 정신을 잃어갈 무렵에야 누군가 나타난다.

12. 구조된 그녀는 알제로 돌아와 재판을 받는다. 


재판의 증거품이었던 그녀의 일기는 뒤쪽으로 갈수록 해독하기 힘들만큼 괴발새발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홀로 남았을 때 쓴 일기의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사하라는 멋진 곳이며 이곳에 와서 기쁘다. 

 다시 여행을 하라면 할 것이다.“    


한 순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곳이자, 죽음의 순간에도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 없는 곳. 그곳이 사하라사막이다. 깊숙한 사막으로 들어가 그곳의 주인 '투아그레족'을 만나는 순간을 꿈꾼다. 그들이 뿌연 물한잔을 내밀며 이렇게 말하는 순간을.

"자, 물 맛 좀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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