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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May 03. 2017

멀고먼 나라에 대한 관심이 내게 남긴 것

알제리에서의 열흘 17

우연찮게 가게 된 나라, 열흘간의 짧은 만남이후 꽤 긴 시간동안 자주 그곳을 생각했다. 우연찮게 가게 된 나라가 처음도 아니고, 열흘 일정의 반은 출장이었던 불완전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알제리에서 느낀 강렬한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대관절 알제리가 나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이 여행기를 쓰게 되었다. 그 인상의 정체를 확인하고자하는 시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만큼을 목표로 해서.    

 

몇 달간 주변 사람들이 ‘기 승 전 알제리’ 라고 놀릴 정도로 알제리에 빠져 지냈고, 여행을 하는 동안 느꼈던 어지러움은 여행기를 쓰는 동안 수습되었다. 미완의 여정은 ‘두 번째 알제리’에서 채울 것을 기약하며, 내가 알게 된 그 진한 인상의 정체, 멀고먼 알제리에 꽂힌 이유를 정리하는 것으로 첫 번째 여정을 마무리하려 한다.

    

강렬함의 정체    


알제리는 일부러 여기에 없는 것만을 모아 나라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와 다른 나라였다. 아랍계 백인, 유럽의 식민지배, 이슬람, 산유국, 사회주의, 내전과 고립...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우리와는 정반대의 역사를 지나온 나라. 무지는 두려움을 낳고, 그 두려움이 발길을 막은 결과, 우리에게 그곳은 세상 저편의 미궁으로 남아있다.    

 

그곳이 마냥 다르기만 한 나라였다면 이토록 인상이 깊을 리가 없을 것이다. 알제리에 다녀 온 이후 항상 그 정서적 고리가 궁금했고, 여행기 1부를 마칠 무렵이 되어서야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알제리나 우리나 대륙의 주변부에서 안간힘을 다해 자존심과 고유문화를 지켜가고 있는 나라라는 것’, 그리고 ‘문화의 교차로에서 새로운 혼종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나는 무엇보다 그들이 아직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슷한 역사와 자연환경을 가진 주변국 모로코나 튀니지보다 알제리에 마음이 더 간다. 제3세계 국가의 대표주자를 자처하면서도 주변국의 분쟁에 개입을 삼간다는 면에서 여타의 중동국가나 리비아, 터키와도 다르다. 이러한 그들의 외교노선을 ‘비타협, 비동맹 노선’이라 부른다. 내전으로 인한 장기간의 고립은 뼈아프지만, 그로인해 그들이 더 순수한 영혼을 간직하게 된 것도 호감요인이다.   

  

알제리에 있는 많은 외국인들은 그 자존심으로 인해 알제리가 고립을 자초하고 있고, 그래서 발전이 더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식민지를 기반으로 견고한 민주주의 제도를 완성할 수 있었던 선진국을 기준으로 제3세계 국가의 정치현실, 경제현실을 비판하는 것은 부질없다. 제3세계 국가들이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제3세계 국가가 보편적 가치를 오래된 관습과 조율하고 제도화하는 것은 선진국에 비해 몇 배는 어려운 과제이다. 식민지 덕에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선진국도 민주화를 위해서 수차례 왕정복고와 내전을 거치지 않았던가. 우리는 약소국들이 강대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휘둘리는 와중에 현실과 이상의 접점을 찾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랍의 봄’으로 당장 민주화 될 것 같았던 이슬람 국가들이 여전히 혼란스럽고, 심지어 독재로 회귀하는 현실은 서구의 일방적인 발전논리가 그대로 제3세계에 적용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오늘의 현실이 제3세계 국가에 훨씬 가깝고,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더 현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단시간에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허황된 야망, 이슬람에 대한 오해,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의식을 버리는 순간,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는 획기적으로 확장될 수 있고, 그것이 세계시민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더 유용할 수 있음을 나는 알제리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절감했다.     


알제리에는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절반의 세계가 있고, 우리가 가본 적 없는 역사가 있다. 서구열강이 일본보다 훨씬 신사적이지도 않다는 것, 우리가 자력으로 독립했다 해도 혼란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 신의 모습은 자연의 모습을 닮을 수밖에 없다는 것, 석유가 있었어도 행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 멀고먼 알제리에 대한 관심은 다른 문명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깊이 있는 인문학적 상상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나는 알제리를 더 알아보기로 했다. 순수하고 친절한 그들과 더불어 세상을 바라보기위해 기회가 닿는 대로 두 번째 알제리를 떠나기로 했다.      



두 번째 알제리를 꿈꾸며    


여행자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미궁이라 부른다. 알제리는 나에게 첫 번째 미궁이었다.  출발 전부터 첫 번째 미궁을 잘 빠져나와야 또 다른 미궁에 도전할 자격이 생길 것 같은 약간의 강박을 느꼈다. 그리고 다행히 난 그 미궁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 같다. 두 번째 알제리, 또 다른 미궁을 찾아 나설 준비가 된 것이다. 계획에서 벗어나는 순간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고는 하지만, 일단은 보고 싶은 것과 그 이유가 명확해야 떠날 수 있다. 두 번째 알제리에서 우선적으로 가야할 곳, 보아야 것이 정해진 것에 여행기를 쓴 보람을 느끼고 있다. 


알제 카스바에서 하룻밤, 

라이의 탄생지 국제도시 오랑, 

타만라세트 사하라사막 투어, 

일 때문에 자세히 둘러보지 못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도시 콘스탄틴, 

알제에서 지중해를 건너 프랑스 마르세이유로 가는 페리선, 

또 다른 명소들과 자존심 강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상들... 

이것이 그곳에 산다는 괴물들을 피해 보고 와야 할 두 번째 여정의 보물지도이다.   

   

운 좋게도 알제리로 다시 떠나기 전 우선 할 일이 생겼다. 한국에 온 알제리 여인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나는 그녀에 대해 우연히 듣고 용기를 내어 두 다리 건너 만남을 청했다. 알제리에 대한 나의 생각과 지식을 확인하고, 부족한 정보로는 알 수 없었던 여러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싶었기 때문. 고맙게도 그녀가 시간을 내주기로 했다. 첫 번째 알제리의 결말이자 두 번째 알제리의 시작으로 이보다 좋은 만남이 있을까.


나의 알제리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여행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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