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여행 - L.A / 토론토 편
좋은 것만 보러 다니기도 바쁜 게 여행이건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L.A 월셔 그랜드센터’와 ‘토론토 노스욕의 공터’.
애초 알려진 대로였다면 한국인의 자랑이 될 수도 있었던 그곳.
어쩌다보니 지금은 한국인이 얼굴 들고 지나다니기 부끄러운 곳이 되어버렸다.
1. L.A 월셔 그랜드센터
L.A의 스카이라인에서 고층빌딩 숲(마천루)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그 가운데 작년에 완공된 월셔 그랜드센터는 빌딩 꼭대기에 태극문양을 달아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빌딩은 대한항공이 노후한 힐튼호텔을 구입하여 1조원을 들여 지었다고 한다.
기사에 의하면 이것은 조양호 회장의 결단이 빛을 발한 결과물이며,
조현아 전 부사장이 건축디자인을 제안했다고 한다.
L.A 스카이라인 중심에 한국기업 소유의 빌딩이 있다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워야 할 일이겠으나...
이제 이 건물과 대한항공 항공기를 보며 자부심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빌딩, 비행기가 무슨 죄일까.
나쁜 건 회사가 아니라 경영진의 행태이고,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탐욕과 인성이고,
법 자체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판결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빌딩을 보며 서있자니 누가 한국인이냐 물어볼까 두렵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업적이 될 수도 있었던 그곳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아니 우리가 알고 나서도 꾸준히 행해진 갑질로 인해
탐욕의 산물이자 부끄러운 유적이 되어버렸다.
2. 캐나다 토론토 노스욕 (North York)
토론토에 사는 지인의 아파트 창문 너머로 문제의 땅이 바로 내려다보였다.
한인들의 생활공간 한 가운데에 아직도 공터인 채로 남아 있는 또 하나의 탐욕의 폐허.
노스욕 분양사기는 한국인 사업자가 저 땅에 초고층 콘도를 짓겠다며 분양을 한 후
계약금을 받은 개발업체 사장이 증발해버린 사건으로,
캐나다에서도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분양사기라고 한다.
영화 <저수지 게임>은 이 사건의 배후로 의심되는 농협과 이명박 간의 커넥션을 추적한다.
사건현장을 직접 보니 더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L.A에서보다 더 참혹한 기분이었다.
타향에서 살아가는 한인주거지역 한 가운데에 부끄러운 유적을 남겨 놓았다는 사실,
그럼에도 끝내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여부조차 불투명하다는 사실,
그런데 분노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었다.
여행 중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화가 났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남부끄러워 문 밖에 나가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사진을 올린다.
그들의 죄를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할 필요가 있으니까.
정유라가 숨어있었던 독일의 호텔도 목격하게 될까...?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치욕의 순례지는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있을 터.
모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그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을 때까지
주목하고 분노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들이 끝내 법망을 피해 돈방석을 계속 깔고 앉아있게 된다 해도
그 자리 역시 탐욕의 폐허일 뿐임을 그들 스스로 하루 속히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진실을 은폐하는데 쏟고 있는 머리와 돈의 만분의 일만큼이라도
정상적인 인간의 일원으로 돌아오는데 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