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에서의 열흘 2
이륙 7시간 후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카타르 도하에 내렸다.
알제리로 가는 항공편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알제리로 가는 직항은 없다. 외국항공기를 이용해 각 항공사의 거점공항을 경유해 가야한다. 카타르항공은 도하를, 에어프랑스는 파리를, 아랍에미레이트항공은 두바이를, 루프트한자는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한다. 유럽을 경유하면 유럽인의 시선을 따라, 중동을 경유하면 이슬람의 시선을 따라 알제리로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도하공항에는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이 있었고, 서양인과 아랍인, 흑인과 동양인 뒤섞여 있었으며, 안내방송은 영어보다 먼저 아랍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친구가 각종 외계인이 나오는 스타워즈의 술집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한잔에 8천원이나 하는 싱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다양한 지구인들을 구경했다. 4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만일 알제리에 다시 가게 되더라도 유럽을 거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총 17시간의 비행 끝에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 도착했다. 불어로 된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느라 진땀을 빼야했고, 꽤 오랫동안 기다린 후에야 수화물이 나왔다. 시차는 8시간. 공항 밖으로 나오자 시차만큼이나 낯선 풍경 위로 정오의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해 창문을 연다. 호텔 앞 저택 너머로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어딜 가나 휴양지 분위기가 나는 유럽의 지중해와는 달리 알제의 지중해는 일상적인 항구의 모습이었다. 한 나라의 수도임에도 불구 현대식 고층건물 하나 없고, 적막감이 들 정도로 조용하다. 그것이 가난하기 때문인지, 완고하기 때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항구에서 이어진 완만한 산등성이를 높지 않은 회백색 콘크리트 건물들이 덮고 있고, 도시 중간 중간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장식물처럼 이슬람 사원들이 놓여있다, 위성안테나와 빨래가 빼곡하게 걸려 있는 아파트들, 언덕 위 커다란 호텔과 저택들, 언덕 꼭대기의 충혼탑... 모두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북쪽으로 열린 바다가 낯설었다. 창문이 북쪽으로 나 있어서 한낮인데도 방안은 어둑했다. 바다와 햇빛을 모두 가질 수 없는 창문. 나는 밝은 풍경과 서늘한 공기의 만남을 있는 그대로 누리지 못했다. 바다와 햇빛을 모두 가질 수 없듯, 풍요와 자존이 함께 할 수 없었던 그들의 역사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로마시대로부터 프랑스식민지 시절을 거쳐 오늘날까지 지중해로는 언제나 반갑지 않은 정복자들이 들어왔다. 저 수평선을 넘어 해변에 도착한 낯선 배에게 그들은 언제나 “당신들은 누구요? 당신들은 어디서 왔소?” 하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고, 이방인들은 대개 그들보다 강했다. 하지만 바다가 아니면 그들이 살 곳은 산골짜기 거나 산 너머 사막뿐. 알제 해안에서 느껴지는 스산함은 그 오래된 긴장감의 산물이다. 그래서 그럴까? 알제는 엎드린 채 고개만 돌려 애증의 유럽대륙을 노려보고 있는 암사자와 같이 보였다. 이것이 알제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여러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모스크 첨탑의 확성기에서 아잔(코란 읽는 소리)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오후 기도시간. 잠시 후 또 다른 모스크에서 동시다발로 아잔이 시작된다. 가늘고 고운 음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거칠고 낮은 음성도 들려온다. 멀리 있는 모스크의 아잔은 아련하게, 가까운 모스크의 아잔은 귀에 대고 확성기를 튼 것처럼 고압적으로 울려 퍼진다. 마치 여러 가지 바람이 한꺼번에 어지럽게 불어오듯 다양한 음성이 각자의 물결대로 출렁이며 대기를 채운다.
주문의 효과는 컸다. 아잔소리에 대기가 크게 출렁이자 도시전체가 깨어나 기지개를 켜며 유럽을 향해 당당하게 돌아앉는 것 같았다. 소리가 풍경을 뒤바꾸는 기묘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시작한 아잔은 5분 남짓 온 도시를 물들이고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 낮은 소음의 적막이 찾아왔지만 도시에는 이미 어지러울 정도로 진한 종교적 향취가 베어 들었다. 돌아앉은 암사자 같던 순결한 첫인상은 짧은 순간 완전히 사라졌고, 이슬람의 향취는 서서히 휘발되기는커녕 점점 더 진해져만 갔다. 뜨거운 해가 지고 서늘한 초승달이 떴다.
북아프리카 이슬람의 풍경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