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보는 것보다 더 큰 교훈은 없다

알제리에서의 열흘 1

by WonChu

어른이 되면 거기에 가리라.

사막을 건너는 낙타 대상과 함께.

먼지로 뒤덮인 식당의

어둠에 불을 밝히고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리라.

영웅들, 전투장면들, 축제들.

한 구석에서 옛 이집트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찾으리라.

-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의 <여행> 중


열흘 동안 알제리에 다녀왔다. 그곳을 다 다녀본 것도 아니고, 가장 큰 기대를 품었던 사하라 사막에도 끝내 못 갔지만, 그곳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생업에 바쁜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소란스러운 시장과 카페, 숨어 있는 영웅들, 축제들, 큰 눈망울의 아이들... 기록하고 나누지 않으면 여행은 끝나지 않는 것. 이제 미지의 나라 알제리에서 내가 본 것을 정리할 시간이다.


출발 - 보는 것보다 더 큰 교훈은 없다


알제리에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친구 덕분이다. 고등학교 동창인 그는 유머가 풍부하고, 호방하여 주변사람에게 활력을 주는 그런 사람이다. 오랜 시간 나 같이 팍팍하고 까칠한 인간을 견뎌내고 있다는 사실이 친구의 인덕을 증명한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알제리에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한 달 뒤, 알제리에서 문화행사를 연출하게 되었는데 공연스탭으로 가서 공연을 같이 진행하고, 일이 끝난 후 며칠 동안 여행을 하자고 했다.

“갈텨?” “좋지!”

아, 아프리카가 이런 식으로 나를 찾아오다니... 머리와 가슴이 후끈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나는 여행의 성패가 열망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믿는 편이다. 오래도록 가고 싶었던 곳일수록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고, 혹시나 실망을 한다 해도 크게 실망할수록 유익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작정 떠나 빈손으로 돌아오는 여행보다 더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이 또 있을까? 그래서 가기로 맘먹자마자 한 달 동안 미지의 나라 알제리에 대한 열망을 급하게 채워 넣었다. 북아프리카지중해, 알제리 전투와 까뮈, 사회주의와 이슬람, 낯선 이름의 도시들과 사하라 사막...


고백컨대 알제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목한 적이 없는 나라였다. 그곳을 다녀온 여행자는 극히 드물었고, 정보들은 부스러기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미루어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아랍어를 쓰는지 프랑스어를 쓰는지, 백인이 많은지 아랍인이나 흑인이 많은지, 살만한지 가난한지, 모기가 많은지 파리가 많은지, 이슬람은 엄격한지 널널한지, 그리고 무엇보다 왜 전국토가 여행자제 내지는 여행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지,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사하라사막을 보고 올 수 있을지... 정말이지 단 한 가지도 확실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열망에 타오르던 나는 깊은 절망을 느꼈다. 알제리는 낯선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나라, 알려고 한다 해도 여기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나라였다.


그렇게 짙은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새벽 1시 알제리 행 비행기에 올랐다. 시험 직전까지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처럼 김화영의 여행기 <알제리 기행>을 펼쳐들었다. 알제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프랑스 작가 까뮈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행기. 저자는 까뮈의 모든 작품은 물론 국내에서 프랑스 작품을 가장 많이 번역한 김화영 교수님. 까뮈의 주옥같은 문장들이 인용되어 있고, 저자의 감회에 찬 문장들도 그 못지않게 아름다운 여행기였다.


그런데 여행기를 읽고 있자니 묘한 반감이 일었다. 까뮈가 아무리 알제리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이렇게 프랑스 작가의 시선으로 알제리를 들여다봐야만 하는 걸까? 이것은 일본의 유명한 작가를 따라 식민지 시절의 조선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경우가 아닌가? 지금의 알제리가 과연 그렇게 낭만적이기만 한 곳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삐딱한 시선으로 책장을 넘기던 중 카뮈의 문장 하나가 나의 멱살을 잡았다.


“신 따위는 나중에도 자유스럽게 생각할 시간이 있다.

본다는 것. 이 땅 위에서 본다는 것. 이 교훈을 어찌 잊겠는가?“


나는 즉시 카뮈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보고 느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은 머리를 비우고 겸손해져야 할 때였던 것이다.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보는 것보다 더 큰 교훈은 없다.’ 고 계속 주문을 외자 잠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비행기는 쉼 없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일직선을 그으며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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