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비극으로의 초대 - 전체내용 편
고대 그리스에는 수많은 비극작가들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기억되고 있는 작가는 세 명에 불과합니다. 그들을 일컬어 ‘그리스비극 3대작가’라 부르죠. 비극의 아버지 ‘아이스킬로스’, 비극의 완성자 ‘소포클레스’, 비극의 이단아 ‘에우리피데스’가 그들입니다. 각 작가는 평생 100여 편 내외의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요, 그중 완전하게 전해지는 작품은 아이스킬로스 7편, 소포클레스 7편, 에우리피데스 18편, 총 32편 입니다.
대가들의 작품이 일부만 전해지는 이유는 훌륭한 작품만 고전으로 남게 되는 예술세계의 생리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고대그리스인들이 유난히 ‘탁월함’을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비극은 고대그리스와 고대로마, 그리고 르네상스 귀족교육의 가장 중요한 교재였기에 범작이나 졸작은 과감하게 폐기되고 교과서로 여겨진 작품만 후세에 전해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32편이 모두 걸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공을 초월해 자주 인용되고 재공연 되고 있는 작품은 10여 편 가량 입니다. 대략 한 작가 당 5편 정도. 비극 한편이 5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니 한 작가에 책 한 권이죠. 단 세 권의 책에 신화와 비극, 역사와 예술이 탄생하는 장면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비극의 아버지 ‘아이스킬로스’
가장 먼저 만나 볼 작가는 ‘아이스킬로스'입니다. 독창자와 코로스(합창단)로 하여금 서로 대화를 주고받게 했고, 독창자를 두 명, 세 명 늘려가며 합창을 연극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입니다. 흔히들 3대작가의 작품을 두고 누가 가장 뛰어난 작가인가를 논하지만, 아이스킬로스에게는 비극을 탄생시킨 지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품을 비교평가하기에 앞서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창조하고 대중화시킬 수 있었던 그의 사회적 위상과 재능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존경할만한 시민이자 전사였습니다. 작은 폴리스였던 아테네는 페르시아전쟁을 통해 지중해의 최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스킬로스는 페르시아전쟁의 양차대전이라 할 ‘마라톤전투’와 ‘살라미스해전’에 모두 참전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독립운동도 하고, 한국전쟁에도 참전한 국가유공자인 셈입니다. 당연히 강한 자부심과 발언권이 있었겠죠. 참고로 소포클레스는 그보다 27살 아래로 살라미스해전 승전 환영퍼레이드에서 소년합창단의 대표로 지휘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는 소포클레스보다도 13살 아래로 살라미스 해전을 벌이고 있을 때 그곳에서 태어났다고들 합니다. 세 작가의 연배와 시대를 쉽고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일화로, ‘참전, 환영, 출생’으로 갈린 세 작가의 운명은 그대로 이어져 ‘아테네의 부흥, 영광, 혼란’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됩니다.
예술적인 측면에서 아이스킬로스는 합창단 조련에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여러 국가적 공연에 꼭 필요한 실력 있는 연출자였던 것이죠. 그의 새로운 실험이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합창단의 연주력이 공연 전체를 받쳐주었기 때문입니다. 또 작가적으로는 전쟁의 현장을 몸소 겪은 것이 커다란 자산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모두에게 크나큰 상처와 슬픔을 남기지만, 작가들에게는 인간의 본능과 한계를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생사를 건 전투현장을 목격한 대가로 차원이 다른 주제의식과 장면묘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스킬로스의 작품 전반에는 전쟁의 경험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신들은 야박할 정도로 엄하고 현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합리합니다. 인간은 그 사이에 끼어 고통 받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죠. 그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직설적이고 극단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시민들의 담대한 전투욕과 윤리적 각성을 촉구하고자 했습니다. 연출력이 뛰어나 대본보다 실제 공연이 더 장엄했을 그의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결박당하는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구원한 죄로 제우스로부터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입니다.
<아가멤논>은 아가멤논 일가의 돌고 도는 복수를 다룬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1편입니다. 트로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온 아가멤논을 살해하는 그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이야기입니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은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2편으로, 아가멤논의 아들과 딸인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가 친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입니다.
<자비로운 여신들>은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3편으로, 친어머니를 죽인 죄로 분노의 여신들에게 쫓기던 오레스테스가 신들의 재판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장수>는 오이디푸스가 자진하야를 하고 국외로 망명을 하자 테바이의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그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가 내전을 벌이는 이야기 입니다.
비극의 완성자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는 그야말로 엄친아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무기상이었습니다. 전쟁의 시대에 무기상이었으니 매우 부유했겠죠. 소년 소포클레스가 승전환영식 소년합창단의 지휘자로 뽑혔다는 것은 음악적 재능은 물론 외모도 출중했음을 짐작케 합니다. 커가며 극작에 전념한 그는 20대에 연극경연에서 아이스킬로스를 누르고 1등을 차지, 그 후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비극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50년간의 작가적 전성기를 아테네의 황금시대와 함께 보냈습니다. 일 년에 한번 열리는 연극경연에서 30회 이상 입상하면서도 2등상 아래로는 받은 적이 없었을 정도였죠. 평생 부와 명예, 존경과 사랑을 누린 그는 자기관리도 잘해서 의학의 신 ‘아스클레오피스’를 모시는 제사장이 되어 90살 넘게 장수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년에는 다소 불행한 일화도 전해집니다. 그는 일흔 살 무렵부터 죽는 날까지 20년 동안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펠로폰네소스전쟁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역시 운이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아테네가 전쟁에 패배하기 직전 운명하여 진짜 험한 꼴은 보지 않을 수 있었죠. 한편 그에게 진짜 험한 꼴을 선사한 것은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가 너무 오래살고 있으니 유산을 미리 물려받게 해달라고 소송을 걸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미리 유산을 물려달라고 조른 것은 일차적으로 그의 무능과 무경우를 탓할 일이겠지만, 전쟁으로 인한 불황과 새엄마와 그 자녀들과의 알력 등 아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정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재판정에서 아들은 아버지가 너무 늙어 제정신이 아니니 재산관리권을 자신에게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화가 난 소포클레스는 새로 쓰고 있던 작품을 재판정에서 직접 낭독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오기와 총기가 살아있었던 것이죠. 그 작품은 바로 그의 유작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였는데요,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 작품에는 못난 아들에 대한 그의 증오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소포클레스의 빛나는 작가적 감각은 재능과 지성을 조화시키는 능력에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운명이 비극적일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면서도 그에 대처하는 일말의 지혜와 정의감을 작품 속에 어떻게든 녹여냈습니다. 비극적인 상황 자체보다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 집중했고, 그에 따라 이야기는 더 치밀해졌고, 긴장감은 강해졌습니다. 소포클레스가 그리스비극을 완성한 비결입니다. 역사상 가장 럭키하고, 천재적이었으며, 모범적인 작가 소포클레스의 대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은 선대왕(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을 추적하던 오이디푸스 왕이 결국 자신이 그 범인임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비극의 최고걸작으로 꼽은 작품입니다.
<안티고네>는 몰락한 왕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가 새로운 권력자의 부당한 처사에 홀로 맞서는 내용입니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테세우스의 호의 속에 장엄한 최후를 맞는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입니다.
<엘렉트라>는 아가멤논 일가의 이야기를 엘렉트라의 관점으로 개작한 작품입니다.
<아이아스>는 트로이전쟁에서 아킬레우스가 죽고 오디세우스가 새로운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자 2인자였던 ‘아이아스’가 자신도 모르게 분노와 질투에 휩싸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이야기입니다.
비극의 이단아 ‘에우리피데스’
‘에우리피데스’가 비극의 이단아라 불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는 출신부터 다릅니다. 두 선배작가들이 아테네 인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것과 달리 그는 살라미스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변방의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어렵게 중앙무대에 데뷔했고,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치르고 있던 시기에 주로 활동했습니다. 아테네의 황금시기에 별로 덕 본 것 없이 자란 반면, 타락과 혼란 속에 인생의 대부분을 살았던 것이죠. 그가 시종일관 아테네에 대해 비판적이고 회의적이었던 이유입니다. 성격마저 비사교적이어서 일부 소피스트 철학자들과 개인적으로 교류하며 작품 집필에만 몰두했습니다. 또 두 번의 결혼실패 후 고향 살라미스의 해안 동굴에서 자연인으로 말년을 보내다 마케도니아에서 객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운명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는 불행한 세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오직 충격적일 정도로 비극적인 소재를 골라 주인공의 억울함, 슬픔, 분노를 표출하는데 전력질주 합니다. 그는 선배작가들이 얼마 전에야 겨우 완성해 놓은 비극의 틀에도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에 억지로 교훈이나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도, 극적인 짜임새나 완성도에 집착하지도 않았습니다. 여주인공의 절규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서너 페이지에 걸쳐 계속되기도 하고, 중심사건을 수습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내버리기도 하죠.
이야기의 전개방식 또한 달랐습니다. 이야기를 극적으로 재구성하기 보다는 사실적인 정황논리에 따릅니다. 주인공의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비극적 감정의 온도를 높여가며 몰입시킨 후 한계상황 너머로 관객을 밀어 떨어뜨리는 것이 그의 스타일입니다. 특히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많이 썼는데, 여성에 대한 그의 이중적 태도는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여성의 심리와 감정묘사에 그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곳곳에서 여성혐오적인 대사를 불쑥불쑥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운한 시대와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분열적인 여성관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에우리피데스는 연극경연대회에서 5번 우승을 했다고 합니다. 선배작가들에 비하면 현저하게 적은 수상기록이지만, 척박한 환경과 비타협적인 자세, 파격적인 작법을 감안하면 그 횟수를 떠나 우승 자체가 대단한 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 담긴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당시 그리스 사람들의 울분과 절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비극적인 작가’라 칭했고, 자유로운 형식과 강렬한 감정표현으로 현대작가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은 에우리피데스의 대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메데이아>는 사랑하는 남편 이아손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여인 메데이아가 남편에게 배신을 당하고 엽기적인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입니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전쟁에서 패해 적국 전사들의 노예로 끌려가게 된 트로이 왕가 여인들의 비참한 운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히폴리투스>는 젊은 새엄마 파에드라의 사랑을 단호히 거절한 왕자 히폴리투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는 트로이전쟁 출정을 위해 제물로 바쳐진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의 이야기입니다.
<엘렉트라>는 또 다른 시각에서 재구성한 엘렉트라의 복수 이야기입니다.
<바코스의 여신도들>은 고향에 돌아와 홀대를 받은 바코스가 왕비와 공주들을 신도로 만들어 펠리아스 왕을 징벌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비극 3대 작가의 이야기 어떠셨는지요. 작가에 대해 알면 작품을 이해하기가 훨씬 용이해 지리라는 생각에 사적인 일화들을 소개하다 보니 내용이 많아졌군요. 모쪼록 작가들을 친근하게 느끼게 되셨기를 바라며...
이제 그 작품들을 하나 하나 만나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