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이야기의 탄생
이야기의 탄생
고대그리스문화는 언제나 인문학과 예술론의 맨 앞에 등장합니다. 이것은 고대그리스문화가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집트나 페르시아, 중국과 같이 세상에는 더 오래되고 방대한 고대문화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왜 고대그리스를 인류문명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일까요? 그것은 고대그리스가 이전의 여러 고대문화를 ‘체계적’으로 완성했고, 고대로마를 거쳐 근현대 서양문화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면 그리스신화를 포함한 세계 각지의 수많은 신화들이 있습니다. 신화는 특별한 형식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원형서사’입니다. 영원한 문화의 보고이자 상상력의 원천이죠. 이에 반해 그리스비극은 신화를 소재로 작가들이 쓴 연극의 대본입니다. 신화의 한 장면을 재구성하여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목표였죠. 작가의 명확한 의도에 따라 치밀하게 창작된 그리스비극은 대중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서사기법’을 완성했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이야기의 탄생’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비극을 위한 안내자
그리스비극은 2500년 전에 최초로 만들어진 이야기임에도 읽을 때마다 큰 재미와 감동을 줍니다. 비극작가들이 어떻게 그 한 시기에 이야기 기법과 구조를 완전히 터득할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입니다. 또 그 비극을 분석해 작가들의 영원한 교과서 <시학>을 남긴 아리스토텔레스의 업적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비극은 작가들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세네카, 라신느, 셰익스피어, 괴테, 그리고 현대의 수많은 작가들이 그리스비극을 반복해 읽고 나서 또 다른 고전을 써냈습니다. 그리스비극을 알면 자연히 그들이 쓴 고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뿐인가요? 수많은 화가들이 그리스신화나 비극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유명한 박물관에 걸린 그림의 절반 이상이 그리스신화와 비극, 그리고 성서를 소재로 하고 있기에, 그리스비극을 알면 여행길에 만나는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왜 그리스비극은 그리스신화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일반 대중이 읽기 어려운 연극대본의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대그리스에서 르네상스시대까지 이야기는 서사시나 극문학의 형태였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도 모두 연극대본으로 남아있죠. 소설이라는 장르는 근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몇 권의 고전 속에 이야기의 비밀과 교양의 원천이 있는데 연극대본이라는 낯선 형식이 그 길을 가로막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스비극을 명화와 함께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안내자가 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안내자들이 그랬듯이 또 한 명의 실패한 안내자가 되어 저 파르나소스 산기슭에서 홀로 장렬한 최후를 맞는 제 모습이 벌써부터 눈 앞에 어른거립니다. 하지만 그리스비극이야말로 문학과 예술, 행복한 인문학의 바다로 향하는 가장 좋은 시작이자 지름길이라 믿기에... 없는 용기를 닥닥 긁어모아 그리스비극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