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킬로스의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 배경신화 편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Προμηθεύς)는 ‘미리 아는 자’, 혹은 ‘먼저 깨닫는 자’라는 뜻입니다. ‘미리 안는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초능력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과 직감과 지적능력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선지자적 혜안’이 그것이죠. 똑같은 미래를 보더라도 논리적인 추론의 유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진 신입니다. 신들 사이에서는 주로 예언자로 활약했고, 인간들에게는 생각하는 능력과 각종 기술문명을 전수해준 은인으로 활약했기 때문입니다. <결박당하는 프로메테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두 가지 역할이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우스가 인간을 멸족시키려 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인간에게 생존에 꼭 필요한 ‘불’을 훔쳐 전해 준 죄로 벌을 받는 이야기이니까요.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 간 애증의 산물, 인간
프로메테우스가 이런 곤경에 빠지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화에서 그는 원래 티탄 일족의 전령이었습니다. 티탄은 제우스 이전 우주를 다스리던 거인 족들로,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티탄의 왕이었죠. 크로노스는 ‘네 자식이 너를 파멸시킬 것이다’라는 신탁을 듣고 자식을 낳는 족족 먹어치웠고, 어머니의 잔꾀에 의해 목숨을 건진 여섯 번째 자식인 제우스가 크로노스와 그 일족을 몰아내고 새로운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때 프로메테우스는 전쟁이 제우스의 승리로 끝날 것을 미리 내다보고, 제우스의 편으로 넘어가 전략가로 활약했죠. 티탄의 전령이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적국의 정보부에서 넘어 온 이중스파이와 같은 캐릭터인 셈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전쟁이 끝난 후 발생합니다. 제우스의 친형제들이 하늘과 땅, 바다와 지옥 등 자기구역을 차지하고 왕노릇을 하는 동안, 제우스와 사촌지간인 프로메테우스에게는 아무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순혈이 아닌 관계로 권력의 인너서클에서 밀려난 것이죠. 그러자 머리가 좋은 그는 스스로 자기구역을 만들어냅니다. 자식 없는 부모가 애완동물을 입양하듯 인간을 창조한 것이죠. 그는 자신의 피조물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인간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신들만 아는 지식을 전수해준 것입니다. 극중 프로메테우스의 대사에 의하면 생각하는 능력, 이해력, 집 짓는 법, 시간 파악 능력, 셈하기와 문자, 농사기술, 마차, 배, 병을 치료하는 법, 점성술, 사랑하고 미워하는 다정한 모임을 갖는 법, 광물자원... 등등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이 제우스에게 교활하고 버릇없는 것들로 낙인찍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인간은 매년 제우스에게 양을 잡아 제물을 바치고 있었는데,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으로 하여금 고깃덩어리와 내장은 가죽으로, 뼈는 보기 좋은 기름으로 둘러싸게 해서 제우스가 하나를 선택하게 하라고 시켰습니다. 제우스는 당연히 맛나 보이는 기름(사실을 뼈 묶음)을 선택했죠. 제우스의 무리한 제물 요구로부터 인간을 굶어 죽지 않게 하기위한 프로메테우스의 계책이었던 것입니다. 이후로 인간들은 종종 잔꾀를 부리며 제우스를 능멸했고, 화가 난 제우스는 인간 족속을 멸종시키고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프로메테우스가 결국 마지막 남은 문명의 핵심기술, 즉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게 된 것이죠.
결국 프로메테우스의 범죄행각은 제우스에게 발각되었고, 그러자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뜨거운 바위산에 묶인 채 제우스의 신조인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는 형벌을 내립니다. 밤이 되면 간은 다시 재생되어 다음날 또 다시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무한반복의 고통이었죠. 여기까지가 <결박당하는 프로메테우스>의 배경이 되는 신화입니다. 요약하자면 프로메테우스의 인간 창조와 인간에 대한 애정은 제우스에 대한 서운한 감정으로부터 촉발되었고, 그 애정이 과도해지면서 제우스의 눈 밖에 나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Carrying Fire)> Jan Cossierss, 1637. Prado National Museum.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제우스의 상징인 번개에서 훔쳤다는 설과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용광로에서 훔쳤다는 설이 있습니다. 전자는 첨단기술을, 후자는 청동기문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얀 코시에르는 지금의 벨기에 지역 출신 화가로 이 그림은 루벤스의 조수시절 그린 벽화의 일부라고 합니다.
프로메테우스의 상징적 의미와 위상
프로메테우스 신화에는 여러 상징과 이야기 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은 신화 상에 드러난 고대그리스 인들의 세계관이 흥미롭습니다. 고대그리스인들은 인간존재가 전지전능하고 강력한 신이 아니라 머리 좋은 비주류 신의 후손이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한 신이 정성껏 만들었다고 보기엔 자연은 너무나 적대적이고, 인간은 너무도 결점이 많았던 것이죠. 보이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의 자연과 인간을 상징화한 그리스신화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인간을 아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기는 그들의 세계관은 이후 신화와 비극에서 ‘자제와 겸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됩니다. 자기존재를 한없이 낮춤으로써 모진 자연과 잦은 분쟁으로 인해 파괴된 영혼을 치유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예언가의 비애’를 다룬 서사의 원형입니다. 미래를 알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대개 예언가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들이 모르는 뭔가를 알게 되는 그 순간부터 운명이 꼬이기 시작하죠. 이야기의 세계에서 프로메테우스는 미래를 보는 자가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남모를 고난과 분투를 겪는 공상과학 싸이파이의 시조가 됩니다. 넓게 보면 중요한 정보를 쥐고 양편을 오가며 살 길을 찾는 첩보물이나 스파이물의 뿌리이기도 하고요.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이 그 아류작에 속합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시대를 앞서 간 지식인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은 1899년 일간지를 폐간당한 마르크스를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한 풍자화입니다. 출처 - Berlin, März Zeitung (삼월 신문)
신화적 관점에서 예측해 본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 완결판
가장 직접적인 예로 최근 리들리 스코트 감독에 의해 리부트 된 영화 <프로메테우스>(2012)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는 인류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외계행성으로 떠난 우주선 ‘프로메테우스 호’의 모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은 DNA를 통해 그곳이 인류의 창조주들이 살았던 행성임을 알아내지만, 그들은 이미 모두 세균감염으로 변종 외계괴물인 에이리언이 되어버린 상태. 제작진은 프로메테우스와 인간 사이에 에이리언의 기원을 삽입하여 <에이리언>시리즈의 프리퀄을 완성합니다. 에이리언을 전통적인 신화 속 괴물의 일종으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여기에 인간의 피조물인 A.I라는 존재를 더해 창조자와 피조물의 복잡 미묘한 관계까지 이야기를 확장한 것이죠.
이 영화의 대표적인 대사는 “지금 막지 못하면 돌아갈 지구는 없어.”입니다. 에이리언이 숙주를 찾아 지구로 가려 하기 때문인데요, 이쯤에서 프로메테우스의 기운을 받아 나름대로의 에이리언 완결판 줄거리를 예측해 볼까 합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대홍수 속에 살아남은 유일한 인간 ‘데우칼리온’과 ‘퓌라’가 인간의 새로운 조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들이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아들과 딸이었으니... 이런 신화의 결말에 맞춰 영화의 결말을 짜보면 되지 싶습니다.
완결편은 우주선에 숨은 에이리언이 끝내 지구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에이리언이 인간들을 숙주로 삼아 무차별적으로 번져나가자, 다급해진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 행성으로 떠나, 혹은 죽기 직전의 에일리언을 치유하여 멸종한 창조주를 어렵게 되살려내게 됩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극적인 대면이 이루어지고, 이후 거대한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무리, 인간과 A.1 간의 대전쟁이 벌어지는 것이죠. 결국 이 전쟁으로 대부분의 인류가 사라지고, 살아남은 서너 명의 인간이 프로메테우스가 남기고 간 무언가를 가지고 맨땅에서부터 새로운 인류와 문명을 만들어나간다는... 그런 줄거리를 내 맘대로 예상해봅니다.
지금까지 긴 세월 수많은 상징과 작품을 낳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살펴보았습니다. 첨단무선통신 회선이 불에 탄 사건이 벌어진 직후라 불과 기술이 하나였다는 것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도 하네요. 첨단기술의 노예가 된 현실이 씁쓸하면서도, 인명피해로 이어진 대재난은 아니었으니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듯 합니다.
이상으로 그리스비극 속의 프로메테우스를 만날 준비를 마칩니다. 다음 회에는 2500년 전 최초로 만들어진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 그가 잔혹한 형벌을 받고 있는 비극적인 현장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