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박당하는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Bound) >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를 그린 작품입니다. 그리스비극 중 프로메테우스를 소재로 한 유일한 작품으로, 아이스킬로스가 3부작을 즐겨 썼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3부작 중의 한 편이었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대개 1부는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2부는 <결박당하는 프로메테우스>, 3부는 <사슬에서 풀려나는 프로메테우스> 로 추측합니다.
이 작품은 전위적인 무대디자인으로 유명합니다. 주인공인 프로메테우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스케메) 중앙에 묶여있고, 다른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기계장치를 타고 등퇴장을 합니다. 그리스비극 중 가장 실험적이고 규모가 큰 작품입니다. 상징적 배치, 대규모 물량, 정치적 주제로 미루어 볼 때 아이스킬로스가말년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고, 훗날 선지자를 흠모한 18세기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걸작으로 재발견되기도 했습니다.
<Prometheus Bound> 공연사진. Cambridge Greek Play 2013
이야기의 핵심
대본 형태의 텍스트를 읽는 요령은 이야기의 단락, 즉 시퀀스을 파악해가며 읽는 것인데요, 이 작품은 시퀀스를 파악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마치 도장 깨기를 하듯 각 인물이 등장하여 프로메테우스와 설전을 벌이고 퇴장하는 단순한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 요소를 심어놓는 것이 이야기꾼의 기본. 이 작품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예지력을 가진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최후를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우스가 그를 곧바로 타르타로스(지옥)으로 보내지 않고 지난한 고문형에 처한 이유는 그를 죽이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프로메테우스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비밀정보를 끝까지 손에 쥐고 제우스에 맞섭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등장인물의 선택입니다. 아이스킬로스는 프로메테우스와 의미적으로 대응관계에 있는 인물들을 신중하게 골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권력에 굴종해 부지불식 간에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군상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그들과 다른 프로메테우스의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시킵니다.
요컨대 ‘제우스의 죽음에 관한 비밀’과 ‘등장인물의 정치적 처지와 선택’만 알면 엄청난 긴장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결박당하는 프로메테우스> 입니다.
1막. 헤파이스토스 - 영혼 없는 엔지니어의 비애
막이 오르면... 무대의 배경은 ‘스키티아’ 지방 황무지에 솟은 ‘카우카소스’ 산맥의 뜨거운 바위산입니다. 스키티아는 그리스인들이 세상 끝이라 여겼던 중앙아시아, 카우카소스는 지금의 코카서스 산맥, 바위산은 조지아(그루지아)의 카즈벡 산으로 추정됩니다.
극은 제우스의 두 사령(집행관)인 비아(폭력)와 크라소스(폭력)가 프로메테우스를 끌고 바위산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훗날 둘이 합체하여 ‘비아그라’라는 이름의 발기부전치료제가 되는 비아와 크라소스는 권력을 등에 업고 하루하루 욕망을 채우며 살아가는 천박한 하수인들입니다. 그들은 과거에는 쳐다보지도 못했던 거물 프로메테우스를 조롱하고 능욕하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바위산에 도착한 그들은 함께 데리고 온 헤파이스토스(대장장이의 신, 로마식 이름 '불카누스')에게 사슬로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산에 단단하게 못박으라 재촉합니다.
헤파이스토스는 못 만드는 것이 없는 대장장이의 신입니다. 천하의 프로메테우스를 단단히 묶을 자는 그 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 대목에서 사뭇 흥미로운 것은 헤파이스토스의 태도입니다. 우유부단할 정도로 순한 성격의 그는 아버지 제우스 때문에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갓 태어난 그를 본 제우스가 너무 못생겼다고 집어던졌다고 하죠.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그는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으나마나 한 존재인 인간을 보살핀 것이 그렇게 큰 죄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 일에 무관심 한 헤파이스토스는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원치 않는 정치적 사건에 동원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길 뿐입니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마지못해 사슬을 바위 위에 단단히 박죠.
헤파이스토스는 남다른 능력을 가진 자의 비애를 느낀다는 점에서는 프로메테우스와 같지만, 무심하고 무력하게 권력의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는 프로메테우스와 대조를 이룹니다. 뛰어난 기술이나 능력도 영혼이 없으면 세상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교훈. 이것이 헤파이스토스라는 엔지니어가 온 몸으로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헤파이스토스 : 이 따위 재주는 왜 배웠던가. 이젠 그것이 한스럽군.
힘 : 손재줄 탓하면 뭘 합니까? 그것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건 아니지 않습니까?
헤파이스토스 : 그렇지만 내가 아닌 다른 놈이 이런 기술을 가졌더라면 좋았으련만.
Prometheus chained by Vulcan (1623) Dirck van Baburen. museum Amsterdam. 비극의 내용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한 작품.
2막. 물의 요정들 - 프로메테우스의 또 다른 선물 '맹목적 희망'
헤파이스토스가 사슬을 바위에 박고 퇴장하면, 이어서 물의 요정들이 날개달린 달구지를 타고 등장합니다. 그들은 프로메테우스의 처제들로 공연 내내 무대의 뒤에 서서 합창을 하는 코로스 역할을 합니다. 아이스킬로스가 그들을 코로스로 선택한 이유는 프로메테우스가 속마음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프로메테우스를 위로하려는 듯, 새로 올림포스를 다스리게 된 제우스가 과거의 위대한 율법은 아랑곳없이 새 율법을 만들어 겁 없이 다스린다고 한탄합니다. 그러자 그 불평을 이어받아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운명을 자신이 알고 있음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자신만이 장차 제우스의 왕위와 권력을 위협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해야 그것을 피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제우스가 자신을 풀어주어야만 할 것이고, 이 고역의 대가를 보상해 주어야 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프로메테우스에게 히든카드가 있음을 관객에게 미리 알려 극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 넣으려는 아이스킬로스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코로스와의 대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내용은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프로메테우스의 예언이 끝나자 코로스는 그에게 왜 이런 벌을 받게 되었는지 자세히 들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저 티탄들과의 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가 제우스와의 오랜 애증관계를 읊습니다. 지난 배경신화 편에서 살펴 본 그 내용입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는 그 이야기가 끝날 무렵 자기가 인간에게 불과 함께 한 가지를 더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맹목적 희망’. 자신의 모든 능력을 인간에게 전수해 주었지만, 단 하나 예지력을 빼고 그 대신 맹목적인 희망을 전해 주었다는 것이죠. 돌이켜보면 그의 이 선택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가장 큰 배려라 할 수 있습니다. 내일의 불행을 미리 안다면 그 누구도 오늘의 행복을 누릴 수 없을 테니까요.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있긴 합니다만, 그것이 고문이든 맹목적이든 희망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존재이기도 합니다.인간에게는맹목적인 희망도 불만큼이나 소중하다는 프로메테우스의 지혜는 그가 몸소 겪은 선지자의 비애로 부터 나온 것이었죠.
코로스장 : 불행을 내다본다는 건 좋지 못한 병이죠. 그래 어떻게 그 병을 고치셨나요?
프로메테우스 : 그들에게 맹목적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지.
Die Okeaniden. Gustave Doré, 1860
3막. 오케아노스 - 타인의 불행
코로스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더 듣기 위해 달구지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녀들의 아버지 오케아노스가 네 발 달린 새를 타고 등장합니다. 코로스는 그가 보지 못하는 곳으로 물러나고, 오케아노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반갑게 인사합니다. 그의 밝은 모습에 심사가 꼬인 프로메테우스는 고생하는 것을 구경하러 온 것이냐며 쏘아 붙이며 인사를 받습니다.
오케아노스는 티탄 신들과의 전쟁에서 프로메테우스와 함께 제우스 편에 붙은 몇 되지 않는 티탄 일족입니다. 대개 ‘모든 강물의 신’이라 불리지만, 영어 바다(Ocean)의 어원인 것에 드러나는 바와 같이 티탄의 시대에는 바다의 신이었습니다. 실권을 포기하고 명예직을 받아들이면서 살아남은 것이죠. 족보상으로 프로메테우스의 할아버지인 동시에 아내 헤시오네의 아버지, 즉 장인어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헤시오네는 프로메테우스의 아내도 되고, 이모도 되고... 아무튼 오케아노스는 프로메테우스와 가장 가까운 인척지간이자 정치적 동지인 것입니다.
바다를 순순히 내준 행보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살아남기 위해 쉽게 자존심을 버리는 인물입니다. 신념이 아닌 실리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을 상징하죠. 그래서 그는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제우스의 횡포에 화를 내기는커녕 무조건 제우스에게 굴복하라고 조언합니다. 프로메테우스라는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두려운 마음도 있고, 프로메테우스의 아내인 딸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겠죠.
그는 프로메테우스가 순전히 자존심 때문에 버티고 있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가 동의만하면 자기가 제우스에게 가서 얘기를 잘해보겠다고 제안합니다. 언뜻 프로메테우스의 체면을 지켜주면서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이지만, 위기를 기회삼아 제우스와의 관계를 다져보려는 교활한 계산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이쯤되면 제우스의 압박이나 사주를 받고 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죠. 결국 더 얘기해봐야 얻어낼 것이 없음을 안 엣 동지 오케아노스는 비정하고 얄미운 대사를 남기고 무대를 떠납니다.
오케아노스 : 프로메테우스, 당신의 불행을 교훈으로 삼겠소.
Oceanus attending the Wedding of Peleus and Thetis on an Athenian, 590 BC (British Museum)
4막. 물의 요정들 - 희망에 신념이 깃들 때
오케아노스가 퇴장하자 코로스가 앞으로 나와 프로메테우스의 처지를 슬퍼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대답으로 자신과 인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길게 읊죠.
비극에서 코로스는 매우 유용하게 쓰입니다. 배경신화를 설명하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기도 하고, 상황에 대한 논평을 하기도 하죠. 대사가 길고 스토리 진행과는 무관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뜯어보면 명대사가 가장 많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도 주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결정적 대사가 여기에서 나옵니다.
코로스 : 희망이 있을 때, 희망에 신념이 깃들 때, 비로소 기나긴 인생도 즐거운 것이 되리니...
5막. 이오 - 절대 권력의 또 다른 희생자
코러스의 합창이 끝나면, 난데없이 이오가 머리에 소뿔을 달고 쇠파리 떼에 시달리며 등장합니다. 이오는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권력자가 된 제우스가 첫번째로 정욕을 품은 여인이었습니다. 둘 다 새로운 권력의 최대 희생자였던 것이죠.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슬프고 비통하기 그지 없는 장면. 이오는 등장하자마자 자신의 사연을 길게 토로합니다.
제우스는 강가의 이오를 보자마자 욕정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 헤라의 눈을 피해 이오의 꿈속으로 찾아가 매일 밤 구애를 하죠. 이오가 아버지 이나코스에게 꿈 이야기를 털어놓자 그는 크게 당황합니다. 구애를 거부하면 제우스의 불벼락이, 구애를 받아들인다면 질투의 화신인 헤라의 저주가 내려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나코스는 딸을 살리기 위해 그녀를 소로 변하게 해 집 안에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질투의 화신 헤라는 이오에게 이중 삼중의 벌을 내립니다. 소로 둔갑한 이오를 제우스로부터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무지개를 띄워 그것을 따라가게 하는 한편, 천 개의 눈을 가졌다는 공작새의 조상 아르고스, 즉 감시의 신들을 쇠파리로 변신시켜 따라다니게 하죠. 이오는 그렇게 무지개를 따라 점점 더 오지로 가다 세상의 끝에 이르렀고, 거기서 제우스의 벌을 받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와 만나게 된 것입니다.
프로메테우스를 만난 이오는 자신의 앞날을 묻습니다. 너무나 불행한 상황이다보니 자신의 미래가 너무나 궁금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녀의 미래는 길고 어두운 불행으로 가득차 있었기에 프로메테우스는 한사코 말을 아낍니다. 그러나 이오의 간절하고 끈질긴 애원이 계속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예언을 쏟아냅니다. 그런데 이 예언, 즉 이오의 미래는 뜻밖에도 ‘제우스의 최후’와 연결됩니다. 이오가 이 작품에 갑자기 등장하는 이유는 동병상련의 피해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앞날에 제우스의 최후에 대한 결정적 단서가 숨어있기 때문이었던 것이죠. 중요한 내용이므로 또 다시 긴 사연을 요약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오가 길고 긴 수난 끝에 나일 강 근처까지 가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제우스를 만나 사랑을 나누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 검은 아이를 낳게 될 것이며, 장차 그의 후손들인 오십 명의 딸들이 그리스의 아르고스로 돌아와 아르고스의 왕족을 낳게 되는데, 결국 그가 제우스를 파멸시키고 프로메테우스를 석방시켜 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르고스의 왕족은 이오의 13대 후손이니, 참으로 긴 세월 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만 들어서는 ‘제우스의 최후’가 뭔지 자세히 알 수가 없으므로 불가피 신화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핵심은 그리스로 돌아오는 이오의 후손, 즉 오십 명의 딸들 중 하나가 ‘테티스’ 여신었다는데 있습니다. 테티스는 한 번 보기만 하면 그 누구라도 반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정욕의 화신 제우스는 보자마자 그녀를 탐하게 되고, 여기에 포세이돈까지 그녀를 원하게 되면서 두 형제가 한 여인들 두고 싸우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프로메테우스가 품고 있는 비밀이 바로 ‘테티스의 아들이 그의 아버지를 능가한다.’ 라는 것. 즉, ‘테티스와의 결혼’이 '제우스의 최후'를 불러올 예정이었던 것이죠.
예정대로라면 제우스가 테티스를 차지해 아이를 낳고, 제우스는 그 자식에 의해 쫓겨나게 되는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제우스와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 사이에 벌어졌던 사태가 또 한 번 반복될 예정이었던 것인데, 물론 이런 일을 현실화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가 이 비밀을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에게 알려주었고, 결국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테티스에 대한 끓어오르는 욕정을 가까스로 억누르게 되니까요. 그들은 예언을 새겨 테티스를 평범한 남자인간인 펠레우스 왕과 결혼을 시키고, 그들 사이에서 아킬레우스가 태어나게 됩니다.
<Juno Discovering Jupiter with Io> Pieter Lastman. 1618. National Gallery London
6막. 헤르메스 - 권력에 취한 제우스의 전령
자신의 불행한 미래를 알게 된 이오가 파리를 몰고 슬피 울며 퇴장을 하면, 최후의 설득을 위해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가 와이어를 타고 등장합니다. 헤르메스는 모자와 신발에 날개가 있어 저승과 이승까지도 간단하게 넘나드는 천사입니다. 프로메테우스가 티탄족의 전령출신이므로 둘 사이는 같은 업종종사자라는 공통점이 있는 반면, 현재 헤르메스는 새로운 권력의 정보부장이자 비서실장인지라 프로메테우스와는 그 기세와 처지가 너무나 다르죠. 헤르메스는 일반적으로 냉정하고 현명하고 젊고 잘 생긴 신으로 여겨지지만 이 작품에서만은 권력에 취한 애송이로 나옵니다. 헤르메스마저 교만하고 밉살 맞은 캐릭터로 묘사한 것에서 권력의 속성을 고발하려 한 아이스킬로스의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헤르메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예언을 알아내라는 제우스의 명을 받고 먼 길을 왔습니다. 헤르메스는 새 권력의 실세답게 ‘살고 싶으면 비밀을 불어라’라는 식의 어조로 프로메테우스를 협박합니다.
헤르메스 : 아버님의 명령이셔. 도대체 왕위를 빼앗고야 만다고 네가 뽐내며 지껄이고 있는 그 혼인이란
과연 무엇인지 아뢰라는 분부시다. 말을 하되 수수께끼같이 얼버무리지 말고 조목조목
명백히 여쭈어야 한다.
프로메테우스, 제우스 신께서 애매하고, 모호한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프로메테우스 : 잘난 체 하는 그 말투, 뽐내는 꼴, 과연 신의 심부름꾼답구나.
폭정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지라
네가 살고 있는 궁전에는 영영 슬픔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는군...
아이스킬로스는 극의 종결부를 제우스의 대변인 헤르메스와 프로메테우스의 설전으로 마무리 합니다. 이오와의 만남으로 관객을 슬픔의 심연으로 끌어 내렸다가 밉살스러운 헤르메스를 등장시켜 저항의지를 치솟아 오르게 만들고 있는 것이죠. 새 권력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헤르메스의 모습 위로 너무도 많은 사람의 얼굴이 겹쳐지지 않나요? 2500년 전의 작품이 오늘날에도 계속 무대에 올려 지는 이유입니다.
이제 막 중책에 임명된 헤르메스가 베테랑 프로메테우스를 설득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대선배의 기세에 눌려 이리저리 휘둘리다 도망가듯 제우스에게로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자 곧바로 바위산에 제우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천둥과 번개,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결박과 회유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형벌이 시작되는 것이죠. 이에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내려다보고 있을 하늘을 향해 최후의 절규를 합니다.
프로메테우스 : 말은 끝나버리고 이제는 행동이구나...
오, 나의 거룩한 어머니 대지시여
오, 대기여, 태양이여
나를 보라.
억울하도다!
이렇게 공연은 끝이 납니다. 이야기가 끝나도 관객의 흥분된 마음은 가라앉지 않습니다. 진짜 비극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대 뒤, 혹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제우스의 신조 독수리가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기 시작하고 있을 테니까요.
백전노장의 마지막 교훈
인간의 창조자이자 수호신 프로메테우스는 절대 권력을 상대로 외롭게 싸웠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보는 내내 받기만하고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인간으로써 무한한 미안함과 동정심을 느끼는 한편, 당당하게 고난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담대한 전의를 전해받습니다.
이번에 작품을 다시 읽으며 새삼 깨달은 것은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권력을 잃는 것’이라는 것과 예지력 때문에 벌을 받게 된 프로메테우스가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힘 또한 예지력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온갖 위기를 겪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무기를 찾아 헤매다 지쳐버리곤 하죠. 하지만 위기의 원인은 알고 보면 매우 단순하고, 우리는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본성과 능력으로 위기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어야 함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배웁니다.
‘적국과의 전쟁에서, 민주주주를 위한 투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기가 아니라 용기와 신념이다!’
이것이 페르시아 전쟁의 백전노장 아이스킬로스가 혼란기의 아테네 시민과 오늘의 우리에게 남기는 마지막 교훈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