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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 Dec 11. 2020

바이 바이 마이 스위트 홈

좁고 오래된 내 첫 자취방을 보내며


대학교 1학년 1학기, 서울살이가 어쩜 그리 외롭던지, 나는 자주 숨죽여 울었다.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 복도에 친구들이 바글바글 와글와글했는데, 대학교 기숙사 복도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심지어 방문도 차갑고 무거운 철문이야. 재미진 일들이 일어나면 벌컥벌컥 열어젖혀 내 사소한 잡담을 나누던 고등학교 기숙사 방문의 가벼움과 대비되어, 저 철문이 나를 조그만 방에 가두어 세상과 단절시키는 것 같단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방문 열쇠 없으면 못 들어가. 물건 잘 잃어버리는 나는 매번 열쇠를 잃어버릴까 심장이 쿵쿵댔다. 거기다 하필 기숙사 앞은 어둡고 넓은 차도라, 책상 의자에 앉아 가만히 바깥을 보고 있다 보면 이 방을 나가도 계속 나는 혼자일 것 같았다.


이렇게 기숙사에 있다간 내가 정말 많이 아파지겠다 해서 울며불며 엄마를 졸라 학교 근처 자취방을 얻어냈다.




기숙사비를 달로 환산하면 40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이니, 매번 밥을 사 먹어야 하는 기숙사를 살 바에 차라리 그 돈으로 자취방을 구하자, 밥을 해 먹으면 실질적으로 자취가 더 쌀 거다라고 부모님께 떵떵거렸는데, 서울 집값은 내 생각보다 아득히 비쌌다. 월세 40만 원 아래의 집을 보여달라 했더니 현관부터 뽀얗게 먼지가 쌓인, 여기서 살다 보면 괴한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을 설칠 것 같은, 그런 집들. 노란 장판이 이리저리 뜯어지고 후미진 골목 안 쪽 위치한 집들. 외로움 대신 불안에 잠 못 들 것 같단 생각에 한숨이 폭 쉬어졌다.


이상 속 예쁘고 넓은 자취방은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60, 관리비는 따로. 아무리 내가 양심이 없어도 우리 집 사정 뻔히 알면서 이런 호사는 누릴 수 없어 쳐다도 보지 않고 그냥 왔다. 그러다가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 적당히 정이 가고 얼추 기숙사와 가격이 비슷한 요 집, 옆에 집주인 아주머니가 살고 골목이 깊지 않은, 단층에 약간 컨테이너 박스 같은 작은 집에 살게 되었다.




1학년 농활 끝나고 이사 와서 일주일 내내 집들이를 하며 이제 나는 외롭지 않아! 를 맘껏 외쳤다. 엄마한테는 비밀인데 자취방 덕분에 꽤나 자유롭게 술을 마셨고, 친구들도 많이 데려왔다. 외로움에 지쳐 선택한 자취였기에 친구들의 방문에 많이 후했다. '괜찮아, 다원스 게스트하우스가 있잖아!' 막차가 끊기면 내 집에서 자면 될 것이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인데 장소가 여의치 않으면 내 집에서 떠들면 될 것이고, 돈은 없지만 술은 잔뜩 마시고 싶다면 내 집에서 마시면 될 것이고. 주사=술 더 먹기인 서다원의 계략에 빠져 난생처음으로 네발로 길 때까지 술 먹은 친구들이 더러 있을 거다. ‘깔깔 걱정 마! 내가 재워줄게!’ 이 좁은 방은 그렇게 나에게 여유와 방탕함을 선물해줬다. 그렇게  곳은 많은 친구들의 유쾌함과 몇몇 친구들의 진한 추억들이 남은 공간이 되었다.


유독 반수와 재수가 많았던 내 친구들은 우리 학교 논술시험날 다 같이 우리집에 모이기도 했다. 수능이 끝나고 그동안 외로움에 사무친 서러움을 풀기라도 하듯, 고등학교 친구들을 떼거지로 모아 열심히도 놀았다. 다시 고등학교 기숙사처럼 밤새 수다를 떨고 싶은 내 마음이었다.


 이곳은 나와  애인의 역사였다. 이 곳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소리 지르며 싸웠고, 삐진 서로를 달래주었고, 폭 안으며 서로의 체온을 즐기다 수마에 빠져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다. 한 번은 해리포터를 보고 있었는데 벽에 커다란 바퀴벌레가 떡 하니 나타나서 나 혼자 애인을 두고 집 밖으로 대피한 적도 있었다. 빼꼼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방 안을 쳐다보니 애인은 빗자루를 들고 바퀴벌레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전투를 목격한 나는 다시 황급히 문을 닫고 '파이팅!'을 외쳤다.


룸메이트와 이런저런 얘기하며 킬킬 대다 가끔 울컥하다가 자고, 혜화동의 온갖 마카롱 잔뜩 사서 냉동실에 넣어 두고두고 먹고, 중급회계 시험 전날 쳐들어온 과 친구들과 맥주 2리터씩 먹고 중간고사 말아먹고, 처음으로 요리라는 걸 해보고 하나 둘 양념도 사모아 보고 그릇 욕심도 내보고, 애인이 군대 가고 혼자서 쓸쓸해져 처음으로 블루투스 스피커와 캔들의 묘미를 깨달은 곳.


썩 완벽한 집은 아니지만 4년 동안 내 동선, 내 생활에 맞춰 하나씩 사모으고 조금씩 바꿔온 마이 스위트홈.


미숙함과 불안함에 눈물 콧물 흘리던 스물, 어른이 되었단 착각에 들떠 방방 뛰던 스물 하나, 학회와 공부에 치이고 지쳐 쓰러져 잠들던 스물둘, 진로 고민에 둘러싸여 방황하던 스물셋, 그저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게 서러워 자꾸만 뒤처지고 뒤돌아보던 스물넷.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기에 이 공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조그만 원룸 떠나는데도 이리 싱숭생숭하는 걸 보니 나중에 좀 좋은 집 떠날 땐 대성통곡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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