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갭이어 프로젝트

배우는 즐거움을 찾아서, 『나는 [ ] 배웁니다』

by 원더풀

15년 동안 워킹맘으로 1분 1초가 아깝게 살아왔다. 이메일, 전화, 슬랙, 카카오톡 등 수시로 울리는 알람과 빡빡하게 움직이던 스케줄이 퇴사 후 한순간에 꺼졌다. 아침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낯설고 고요한 낮의 시간이 찾아왔다.


강제적으로 맞닥뜨리게 된 백지 같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볼 것인지,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해 보는 것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워킹맘 시절 간절히 원했던 나만의 시간을 제대로 써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학업이나 직장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여행, 교육, 창업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재설정하는 것을 갭이어(Gap year)라고 한다. 보통 갭이어 프로젝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모색하기 위해 20대 청년기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대학교 4학년을 앞두고 휴학 후 1년간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적 있다. 호주에 아는 사람도 없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다녀와서 취업이 잘 안 되면 어떻게 하나, 졸업을 앞두고 너무 무모한 도전은 아닌 걸까 주저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비행기표를 끊고, 어설픈 영어로 살 집을 찾고 일을 구했다. 낯선 환경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하나 둘 생겼고,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색적인 도전과 재미를 만끽했다. 후회 없는 시간이었다.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이가 좀 들었다는 것.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는 것. 모아둔 돈이 더 많다는 것.


마흔 살이 넘어 갭이어가 맞는 걸까 싶으면서도, 인생이라는 여정의 쉼표와 느낌표를 찾기 위한 목적은 나이와는 상관없는 거니까. <마흔 살 갭이어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자. 지금 삶의 영역에서 도달할 수 있는 만큼 멀리, 넓게, 깊이!





배우는 즐거움을 찾아서, 『나는 [ ] 배웁니다』


누군가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한 장씩 펼쳐진다. 늘 포크만 쓰다가 난생처음 젓가락질을 배우고, 정원에 씨앗을 심고 꽃을 피우는 법을 배운다.


아직은 킥판이 필요하지만 선생님이 가르쳐준 숨쉬기를 연습하며 수영을 배우고,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지만 침착하게 다시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탄다. ‘조금 더 연습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다짐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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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장면을 펼치다 보면 누군가 강요하거나 시키는 사람이 없다. 주인공은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하고 싶은 일에 조금씩 도전하며 작은 성취감과 행복을 느낀다.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도 없고, 그저 배우는 즐거움과 만족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간다.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 엄청난 반전이 등장한다. 나는 이 배움의 과정에 있는 주인공이 당연히 어린아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주인공이 사실은 일흔네 살의 할머니였음이 밝혀진다.


“일흔네 살은 전혀 늙은 게 아니야”라고 끝맺음을 하는 할머니의 말에서 배움에는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작가는 늘 우리가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말.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안돼”, “그런 건 젊을 때나 하는 거지”라는 사고방식과 편견을 깰 수 있다는 메시지를 경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나이라는 허들은 걷어치우고,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조금씩 시도해 보자. 절대 배우기에 늦은 때는 없으니.




1cm 마음 성장 | 마흔 살 갭이어 프로젝트


직장생활을 하며 맛보던 크고 작은 성취감들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었다. 일을 하면서 힘든 장애물을 어떻게든 넘어가며 결과물을 내기 위해 썼던 시간과 에너지를, 이제는 회사가 아니라 나를 위해 쓰는 거다.


조직에서 주어진 과업, 목표, 데드라인, 약속들이 나를 움직인 것처럼,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일정을 정하고, 시간 블록을 세팅했다. 초조해하지는 안 돼, 약간의 텐션과 긴장은 필요했다. 나의 에너지 퀄리티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퇴사 후, 3개월 안에 도전할 목표는 크게 3가지였다.


#1. 그림책 테라피스트 자격 수료하기


취미로 보던 그림책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기로 했다. 그림책 테라피 측면에서 사람들과 질문하고 대화하는 방식, 여러 대상과 주제에 따라 프로그램 설계하는 법, 그림책에 대한 관점과 깊이를 넓히는 법을 배웠다. ‘경력보유여성’을 대상으로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시연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그림책 테라피스트의 기본을 다질 수 있었다.


#2.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지원하기


늘 글쓰기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해외에서 NGO 활동을 할 때, 조직 내 마인드 콘텐츠 개발자로 일을 할 때의 특별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기록하지 않으니 휘발되어 사라져 버렸다. 20~30대의 찬란하고 치열했던 삶의 순간들이 그저 기억 저편으로 흘러간 게 아깝기도 했다.


40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숙성되며 깊은 맛을 내는 생각과 감정들을 이번엔 제대로 정리해 보기로 했다. 때마침,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가 열렸다. 글쓰기 근력도 떨어지고, 에피소드도 겨우 끌어와야 하는 초보 작가지만 어떠하리. 마치 달리기 대회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듯이, 나름대로 목표를 세우고 15개의 원고를 써 내려갔다.


#3. 수영 도전하기


할까 말까 참 많이 고민했던 수영. 40년을 품어온 물 공포증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도 않았고, 왠지 중간에 포기하고 강습비를 환불하며 좌절하는 내 모습만 상상이 되었더랬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는 어영부영 시간만 흐르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시작하자!’ 다짐을 실현시키기 위해 강제성이라는 장치가 필요했다. 수영 강습비 결제 완료! 이제는 화요일 12시가 되면 무조건 수영장을 가야 한다. 선생님과 약속한 호흡 연습을 하고 가이드에 따라 어떻게든 몸을 움직인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것처럼 이리 뒤뚱 저리 뒤뚱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감을 잡는다. 이제는 물에 대한 ‘무서움’이 아니라 물에서 ‘당황’하는 것으로 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놀라운 변화다.


앞으로 <마흔 살 갭이어 프로젝트>를 어떻게 채워나가게 될지, 어떻게 끝맺음하게 될지 전혀 모르겠다. 마치, 망망대해 바다 위를 표류하는 듯 하다. 늘 안전지대에 머무르다 새로운 삶의 전환기를 지나가고 있는 지금, 반짝이는 호기심과 용기, 배우려는 마음만 있다면 또 다른 대륙을 만나게 될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