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라는 터널을 지날 때

회사를 떠난 자를 응원하는,『라마씨, 퇴사하고 뭐 하게?』

by 원더풀

나의 첫 번째 퇴사는 스물아홉 때였다. 당시에 나는 NGO 기관에서 국제협력활동가로 4년째 일하고 있었다. 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 등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발굴하고, 다양한 교육봉사와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현지 아이들과 한국 청소년들의 마음을 연결해 주는 일은 나에게 천직으로 느껴질 정도로 신나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사업이 커지고, 활동 지역이 늘어나면서 팀원도 늘어났다. 내가 팀장을 맡았고 3명의 팀원과 2명의 인턴까지 6명이 함께 일했다. “쟤네는 왜 이렇게 시끄러워?” 핀잔을 들을 정도로 아이디어 회의 중에는 웃음과 박수가 터졌고, 각자 일을 할 때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몰입했다. 서로를 의지하고, 미친 듯이 집중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사랑했다.


위기는 회사 내부에서 터졌다. 정부 지원으로 사회적 기업이 되면서 급하게 조직이 커지기 시작했는데 아직 내부에 프로세스나 관리 시스템이 부재한 상태에서 신규 인원이 대거 채용되고, 우왕좌왕 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기존 사업들도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은 많아졌는데, 성과가 나질 않았다. 무리하게 조직을 키운 결과였다.


일과 조직을 키운 것에 뿌듯함을 느꼈고, 나는 평생 이 일을 하리라 다짐했지만, 내가 속한 조직의 변화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회사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뒷수습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내가 과연 이 조직에서 기여할 것이 있는지, 배울 것이 있는지, 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이런 사람들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애정했던 팀원들이었고, 사회적인 가치와 의미를 얻을 수 있기에 자부심을 느끼며 일한 조직이었지만 퇴사라는 큰 매듭을 지어야 할 때라는 걸 직감했다.


퇴사 후 첫 번째로 한 일은 여행이었다. 당시 남편의 싱가포르 출장 일정에 맞춰서, 남편과 숙소만 함께 쓰고 여행은 나 혼자 하는 방식이었다. 먼저 출국한 남편을 뒤따라 짐을 싸고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국제공항은 나에겐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한 일터였다. 20명 내외의 청소년 단원들이 공항 로비에 집결하면, 여권을 모아 단체 출국 수속을 밟고 30개가 넘는 교육물품박스를 일일이 챙기면서 단원들을 통솔해야 했던 곳. 어린 단원들의 얼굴에는 설레는 표정이 가득했지만, 나는 안전하게 사고 없이 다녀와야 한다는 긴장과 부담을 느꼈던 현장이었다. 그렇게 일로만 오던 인천국제공항을 나 홀로 자유롭게, 짐도 딱 내 캐리어 1개만 챙겨서 가볍게 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뒷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남편과 약속했다. 싱가포르 시내 구석구석을 신나게 돌아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여행을 즐겁게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가는 마지막 날. 우연히 호텔 세미나장에서 남편 회사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oo 씨 와이프예요~”하고 인사를 하는데 세련된 정장을 입은 동료분들 앞에서 다림질도 못한 구겨진 티셔츠를 입고 모자를 눌러쓴 나의 모습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졌다. 옷차림이 창피했던 게 아니었다. 그들은 잘 나가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고, 커리어우먼이었고 자신의 일과 역할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호텔 로비를 나오는 데 왠지 모를 서글픔과 공허함이 느껴졌다. 나도 내 일이 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제 뭐 하지?라는 두려움도 함께 밀려왔다.


준비되지 않은 퇴사 후의 삶은 낯설었다. 갑자기 뭉텅이채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대학원 박사 과정이라도 들어볼까? 했지만 내 길이 아닌 것 같고, 어디 해외를 길게 다녀올까? 했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남편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되었다. 새벽 늦게까지 드라마를 몰아보다가 늦잠을 자고 나면 스스로 자책하게 되고, 뭔가 바깥을 부지런히 다니지만 생산적인 하루는 보내지 못한 것 같아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9개월 후, 나는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9개월의 시간이 지금껏 가장 후회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왜 그렇게 잘 즐기지 못했을까. 훌쩍 여행을 가도 새로운 일을 저질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을 텐데 왜 그렇게 주저했을까.




회사를 떠난 자를 응원하는,『라마씨, 퇴사하고 뭐 하게?』


페루에서 마추픽추보다 더 인기 있다는 무지개산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사진을 찍어주는 주인공 ‘라마’가 있다. ‘라마’는 관광지에서 하루에 백 번도 넘게 사진을 찍히고, 웃는 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할 때쯤 어느 관광객 아저씨가 보여준 멋진 세상 풍경을 보고 퇴사를 하기로 결심한다.


세상을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인지, 그냥 현재의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라마’는 여행을 통해 지금껏 몰랐던 세상을 알아간다. 정글 속의 푸르름과 생기를, 커피 농장에서 자란 커피 열매의 향을, 난생처음 본 신비로운 바다의 풍경을 눈에 가득 담고 여행의 스토리를 아직 관광지에 남아 일을 하는 동료 라마에게 편지로 전한다.


여행 중 ‘라마’는 야생 속을 자유롭게 누비며 길들여지지 않는 존재 ‘비쿠냐’를 만난다. 비쿠냐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정해진 길이 없어도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음을, 꿈이라는 게 꼭 직업을 갖아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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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는 관광지에서 마지막으로 일을 하던 날을 회상해 본다. 아무렇지 않게 의연한 척했지만, 사실은 무섭고 혼란스러웠음을. 내가 일하던 자리가 다른 어린 라마로 채워지는 모습이 서운하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함과 불안함을 느꼈던 퇴사의 감정을 돌이켜본다. 하지만, 라마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안전했던 직장을 떠나 새로운 모험이 두렵기도 하지만 지금은 용기를 낸 자신이 정말 고맙다고. 낯선 여행길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오롯이 내 마음에 귀 기울여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그림책 속 ‘라마’가 여행을 온전히 즐기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 부러웠다. 내가 이 책을 스물아홉의 나에게 선물해 줬다면, 나는 그 시기를 좀 더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퇴사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또 다른 청춘들에게 ‘라마’의 이야기가 위안이 되었길 진심으로 바란다. 퇴사 후의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시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채워나가기를.




1cm 마음 성장 | 진흙탕을 벗어나는 힘


마흔 살의 여름, 나는 두 번째 퇴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의 직장은 기업을 대상으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였다. 기업에서는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위기 경영 모드로 전환할 때면 늘 교육 예산부터 절감을 했다. 고객사에서 교육이 줄면 우리 회사의 매출도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기도 잘 버텨냈고, 올해 신입 사원도 채용 중이었던 터라 당연히 우리 회사는 작년보다 더 바쁘게 일하고 조직도 성장할 거라 생각했다.


1분기 회사 워크숍에서 매출 리뷰를 하는데 숫자가 너무 좋지 않았다. 직원들의 표정이 모두 어두워졌다. 워크숍이 끝난 다음날 입사 3년 차 친구가 나에게 살짝 다가와서 물었다. “팀장님, 저희 회사 괜찮은 거예요? 이러다 회사 없어지는 거 아니에요?” 하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젯밤 불안해서 잠을 설쳤다는 그 친구에게 “괜찮아~ 회사가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아. 내가 11년 동안 이 회사에서 있었는데, 위기가 왔다가 또 어떻게든 극복하게 되더라고”라고 진정시켜 주었다.


며칠 후, 긴급 리더 미팅이 소집되었다. 회사 대표님은 매출과 비용 지표를 함께 보여주며, 지금 이대로라면 한 달 뒤에 회사가 망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고. 회사가 유지되게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힘겹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구조조정의 인원에는 팀장급인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회사는 최소한의 실무자만 남는 형태로 인력 다이어트가 불가피했다.


11년간 나의 30대를 모두 바친 회사였다. 워킹맘으로 일하면서 퇴사카드를 만지작 거렸던 순간은 수없이 많았지만, 어떻게든 가족과 동료들의 힘으로 버텼고, 올초에 팀원들과 다시 한번 잘해보자 의기투합했었는데, 회사와의 이별은 너무 갑작스럽게 빨리 찾아왔다.


회사에 대한 서운함, 이대로 끝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앞으로 나는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뒤엉켜 내 마음을 마구마구 흔들어댔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주인공 라일리의 성격 섬이 사라지는 것처럼,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커리어 섬 하나가 무너진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휴가를 내고 좋아하는 서점에 갔다. 그리고 나에게 큰 울림을 주는 문장을 만났다. 다이어리에 한 글자씩 꾹꾹 눌러썼다. 나의 마음에도 그대로 새겨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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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에서 허덕일 것인가 꽃처럼 활짝 피어날 것인가는 언제나 당신 손에 달려있다. 당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단 하나의 존재는 바로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온전하게 살겠다는 선택을 하자. 그렇게 당신의 여행은 시작된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오프라 윈프리


나는 지금 내가 원치 않았던 퇴사의 진창에 또 빠졌다. 이 구덩이는 들러붙는 힘이 세서 나를 자꾸 주저앉게 만들었다. 30대 청춘을 다했던 회사가 원망스럽고, 다음 스텝을 위해 내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막막했다.


하지만, 이 진흙탕에서 계속 허우적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한발 한발 걸어 나와 내 몸에 뭍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을 씻어내야 했다. 일부러 대형 서점에 가서 좋은 책을 찾아 읽고, 건강한 식단의 음식을 챙겨 먹었다. 더 자주 산책하고 남편과 대화하고,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놀았다. 회사 동료들과 차를 마시고, 서로 힘든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다. 그리고 지금 맡고 있는 프로젝트는 군더더기 없이 마무리하기 위해 업무에 집중했다.


심리학에서는 인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내면의 힘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한다. 물론 시간이라는 약이 있지만, 그냥 힘든 상황을 버티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활동을 의식적으로 찾아 하는 것은 난관을 조금 더 빨리 극복하게 해 준다.


무기력, 원망, 아쉬움, 슬픔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아,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다독이며 인정해 주는 것.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대화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좋았던 일을 생각해 보는 것. 여행, 산책, 취미 활동 등 나를 리프레시할 수 있게 하는 기분전환 활동을 찾아 하게 되면 약해진 마음에 힘이 조금씩 붙는다.


29살에 겪은 첫 번째 퇴사 후의 시간이 후회가 가득했다면, 11년 후 40살에 맞게 된 두 번째 퇴사 후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 나의 마인드셋과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내 선택이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였지만, 이 과정을 나는 슬기롭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내면의 힘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