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온 줄도 모르고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 『곰씨의 의자』

by 원더풀

눈물이 또르륵.


당황스러웠다. 하반기 비즈니스 방향을 논의하는 리더 미팅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같이 회의를 하던 동료가 놀라며 괜찮냐고, 무슨 일 있냐고 휴지를 건네주었다. “아.. 모르겠어요. 왜 이러지? 죄송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한 뒤,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빠르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 한켠에서 나는 숨죽여 울었다.


머릿속은 뒤죽 박죽 했고, 그냥 다 내려놓고 싶었다. 중요한 회의 중에 리더라는 사람이 질질 짜고 있는 모습을 보인 것도 창피했다. 지금도 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인데 회사에서 새롭게 짜는 판을 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나에게 일은 큰 바위를 등에 진 것처럼 무거웠다.


교육 콘텐츠 개발자로 일한 지 11년 차.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맨땅에 헤딩하듯이 일을 해왔다. 교육 콘텐츠 개발이라는 직무는 낯선 영역이었고, 사수도 없었지만 직접 현장에서 부딪히고 공부하며 조금씩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2년 간의 쭈구리 초보 교육 기획자 시절을 견뎌내고, 실무 경험이 차츰 쌓이면서 내 일의 중심이 잡히기 시작했다. 일에도 탄력과 속도가 붙었다.


해가 지날수록 교육 운영, 프로그램 기획, 교구 개발, 콘텐츠 마케팅, 영상 기획, 모바일 콘텐츠 개발까지 내가 하는 일의 범위는 점차 넓어졌다. 팀원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는 실무자뿐만 아니라 팀원을 케어하며 팀의 목표와 성과를 관리하는 조직의 리더가 되었다.


나의 하루 스케줄은 업무 회의, 타 팀과의 회의, 조직 전체 회의, 고객사 미팅 등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실무도 직접 해야 했기에 이어지는 회의 사이에 비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어떻게든 업무를 쳐냈다. 출근길 지옥철 안에서 팀원들이 슬랙 채널에 남겨 놓은 질문과 검토 요청 사항에 회신하느라 내려야 할 지하철 역을 어이없게 지나쳐버릴 때도 있었다. 퇴근 후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다시 일으켜 노트북을 켜고 못다 한 일을 새벽까지 마무리해야 하루가 끝났다.


어떨 때는 팀원이 일에 대한 의욕이 바닥인 상태에서 어떻게든 다독여서 아웃풋을 만들어내게끔 동기부여해야 했고, 내일까지 고객사에 보낼 자료인데 팀원이 들고 온 결과물의 완성도가 떨어져서 내가 직접 수정하느라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갈 때면 오늘 나는 뭘 한 건지 무기력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점차 많아졌다. 나는 그렇게 버닝 되고 있었다.




나를 돌보는 시간도 필요해『곰씨의 의자』


이 그림책은 햇살이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평온하게 음악을 듣고 있는 곰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어느 날 커다란 배낭을 메고 세계 여행을 하던 탐험가 토끼가 곰씨의 앞을 지나간다. 땀을 뻘뻘 흘리며 기진맥진 해진 토끼가 안쓰러워 곰씨는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쉬어가라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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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차를 마시며 토끼는 지금까지 겪은 모험담을 들려주고 곰씨는 탐험가 토끼의 놀라운 이야기에 푹 빠져버린다. 이번에는 곰씨와 탐험가 토끼 앞으로 무척 슬퍼 보이는 무용가 토끼가 지나간다. 멋진 춤을 추지 못해 우울해하던 무용가 토끼를 탐험가 토끼가 위로해 주고, 두 토끼는 결혼을 한다. 그리고 곰씨는 토끼 부부를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


시간이 흘러 토끼 부부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곰씨의 의자에는 토끼 가족들이 자꾸 놀러 오게 되면서 곰씨는 좋아하는 차를 즐기기도, 음악을 감상하기도 어려워진다. 토끼들은 매일 곰씨를 찾아왔고, 이 의자에서 함께 노는 시간을 즐거워했지만, 곰씨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곰씨는 자신의 의자에 토끼들이 앉지 못하도록 의자에 누워버리거나, 페인트를 칠하는 등 온갖 수를 써보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더욱 꼬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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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곰씨는 폭발하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토끼 가족들이 곰씨를 병간호해 주고, 곰씨는 용기를 내어 고백한다.


“나는 너희들을 정말 좋아하지만, 내 의자에서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 정말 소중해”라고.


곰씨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나는 코 끝이 찡해졌다. 곰씨의 모습에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처럼 내가 NO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상처받을까 봐, 무책임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늘 “YES!”, “내가 할게”, “난 괜찮아”라고 말하며 정작 내가 타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모른 채 지내온 내가 보였다. 곰씨가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지금 힘들다고 말할 줄 아는 것도 또 다른 용기이자 자신을 지키는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cm 마음 성장 | 에너지 업 루틴 만들기


곰씨가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냈던 것처럼, 나도 나를 지킬 용기가 필요했다. 뭔가 새로운 결단, 뭔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단호한 용기여야 했다. 미팅 중에, 모니터 앞에서 일하던 중에, 사무실 주변을 걷는 와중에 쏟아지는 눈물은 내가 나에게 보내는 절박한 신호였다.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들어줘야 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남편과 상사, 동료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2개월간의 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리딩할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었고, 작은 조직에서 리더는 1인분 이상의 역할을 하기에 갑작스런 리더의 부재에 대한 부담감, 팀원들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더 멀리 갈 수 없기에, 일과 육아라는 두 개의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타이밍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육아 휴직 첫날, 나는 P.T부터 등록하고 망가진 몸과 바닥난 체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일과 육아의 균형을 잘 맞추기 위해서는 건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아침 운동을 하고 나면, 대형 서점에 가거나 전시회를 가기도 하고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챙김 명상을 하고 글쓰기를 하며 나의 감정을 추스르고 정돈했다. 나의 마음 배터리가 한 칸씩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름 긍정심리학도 공부하고 어떻게 하면 번아웃을 예방할 수 있는지를 교육 프로그램으로 설계해서 밥벌이를 하던 사람이 방전되어 버린 사실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마음의 에너지를 높이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꾸준히 운동과 마음챙김 호흡을 하고, 즐거움, 평온, 호기심과 같은 긍정정서를 자주 느끼고, 나를 아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해보면 마음 회복의 효과가 바로 체감되는 기술들이다. 다만 내가 놓쳤던 것은 번아웃을 예방하는 방법을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개월의 휴직을 마치고 나는 일상에서 나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루틴들을 세팅했다. 유료 요가 앱으로 30분 홈트 요가를 시작했고, 주말 오전 반나절은 집 앞 카페로 나가 책을 읽거나 취미 모임에 참여했다. 회사에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업무 범위를 좁히고 좀 더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논의를 마쳤다. 다시 일과 육아의 균형을 잘 맞추며 나를 챙기는 루틴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여행을 가거나 회사를 그만두거나, 나처럼 잠시 휴직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회복이 된다. 일단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바로 사라지기 때문에 해방감과 자유로움도 느낀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매번 여행을 가고 회사를 그만두고, 휴직을 반복할 수는 없기에, 일상에서의 지속적인 에너지 관리가 필요하다. 몰아서 쉬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휴식하고 기분 전환하는 나만의 에너지 루틴이 일하는 나, 육아하는 나를 단단하게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