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관찰한 엄마에 대한 기록 『엄마 도감』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아기~”
친정 엄마의 품에서 25개월 된 아기가 쌔근쌔근 잠이 든다. 나는 그 모습을 마주 보며 누워있다. 달빛이 어스름하게 비추는 작은 방. 내가 결혼 전에 엄마 집에서 지냈던 방이다. 나지막한 자장가와 토닥토닥 등 다독거림에 아기는 고요하고 편안하게 꿈나라로 떠난다.
할머니 팔베개를 하고 잠든 아이의 뒷모습을 옆에 누워서 바라보는데, ‘아.. 엄마가 내가 어렸을 때 나를 이렇게 재웠겠구나’ 싶다.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한 듯, 아기 때의 나와 엄마의 모습을 살며시 지켜보는 것 같다.
나는 착한 딸이긴 했지만, 표현은 서툰 딸이었다. 맏이로서 해야 할 일은 착실하게 하는 모범생 같은 스타일이라 부모님 속 썩이는 일은 없었다.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재잘 재잘 수다를 떠는 것은 어색한 무뚝뚝한 딸이었다.
엄마가 걱정돼서 하는 이야기가 잔소리로만 들려서 “알겠어~ 알겠다고~” 하며 귀를 닫아 버릴 때도 있었고, 내가 사는 세상과 엄마가 사는 세상은 전혀 별개의 것이라 생각하며 내가 하는 일, 사랑, 재미, 관계, 고민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렇게 철부지 같던 딸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진통 중에, 아이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리는 새벽녘에, 손목 보호대를 하고 아이를 품에 안을 때 자꾸만 엄마 생각이 났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던 진통의 과정을 우리 엄마는 어떻게 이겨냈을까.
출산 소식을 듣고 엄마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이고 내 새끼, 고생했어~ 얼마나 힘들었어 그래~”하며 나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는다. 눈물을 글썽이는 엄마가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초보 엄마가 되었던 나의 엄마가 여기에 있다.
아기의 시점에서 초보 엄마의 1년을 연구하고 기록한 그림책 『엄마 도감』. 엄마의 생김새, 몸의 구조와 기능, 엄마의 먹이 활동, 수면 활동, 배변 활동을 사실적이고 위트 있게 그려 냈다.
“엄마가 태어났습니다. 나와 함께.”라는 첫 문장이 담백하면서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자그마한 신생아가 옆에 누워있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기진맥진 지쳐 수면 양말과 산모복을 입고 잠이 든 엄마의 모습이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엄마도 태어났다. 아기는 1살, 엄마도 1살이다. 이제 막 뱃속에서 나온 작은 존재를 사람으로 키워내기 위한 초보 엄마의 고군분투 일상이 그려진다.
퉁퉁 부은 얼굴, 잠을 못 자 피곤해 보이는 엄마의 생김새가 아이도 낯설다. 예쁜 매니큐어를 바른 고운 여자의 손에서 울그락 불그락 엄마의 굵은 손으로 엄마의 몸에는 변화가 생긴다. 어깨부터 손목, 골반까지 엄마의 관절염은 안 생기는 곳이 없다.
엄마의 수면활동에 대한 기록도 있다. 늘 잠이 부족한 엄마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잠이 든다. 분유를 주는 와중에도 꾸벅 졸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가도 잠이 들고, 이동 중인 차 안에서는 무조건 기절 모드다. 그것도 모르고 아기는 졸졸졸 기어와 엄마의 눈꺼풀을 뒤집어 깐다. 이 장면에서 쿡-하고 웃음이 터졌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깜빡 잠이 들면 내 눈꺼풀을 뒤집곤 했다. 난 정말 죽을 맛이었지만.
할머니가 왔을 때 아기의 엄마는 다른 모습이 된다. 식탁에 편안하게 앉아 천천히 밥을 먹고, 소파에서 죽은 듯이 잠만 잔다. 친정 엄마가 왔을 때야 비로소 안심하고 쉬는 엄마, 딸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친정 엄마의 모습에 만감이 교차한다.
아이의 시점으로 엄마를 연구하고 기록한 이 책은 ‘엄마로 태어난’ 권정민 작가의 경험에서 그려낸 책이다. 24시간을 아이에게 바치지만, 아무에게도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엄마’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네가 태어났을 때, 얼마나 추웠는지 몰라~”
출산 후 몸조리를 하기 위해 엄마가 끓여준 따뜻한 미역국을 호로록 먹으며, 엄마의 옛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태어난 겨울, 아빠는 외화 벌이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나가 계셨고, 엄마는 만삭의 몸으로 혼자 병원에 가서 나를 낳았다. 몸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미역국을 끓여 먹고, 부엌에서 음식을 하다가도 아기가 잘 자고 있는지 숨소리를 들어보고, 일회용 기저귀가 귀하던 시절이라 하얀 천 기저귀를 빨아 햇빛에 말리는 게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단다. 아직도 그 시절이 생생한 듯 펼쳐내는 엄마의 이야기에서 26살 젊은 새댁의 모습이 그려진다. 엄마가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짠하기도 하고, 야무지게 그 시기를 헤쳐나간 엄마가 존경스럽기도 하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가 살아온 삶의 터널과 그 당시 마주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심리학에서는 ‘공감’을 나의 선입견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존재 자체로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나도 다 안다는 듯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내밀한 감정과 욕구를 헤아려보고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예전엔 엄마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순간이 많았다. 알아서 잘할 텐데 나를 위한 한마디가 듣기 싫었고, 엄마가 가르쳐주는 삶의 방식이 답답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악착같이 살아온 엄마의 인생을 자세히 알아가고, 나 또한 부모의 입장이 되면서 나와 엄마 사이의 벽은 자연스럽게 녹아내렸다.
엄마라는 존재도 행복을 추구하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는『엄마 도감』권정민 작가의 바람처럼, 작은 생명체를 키워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엄마의 서툴었던 수고로움과 희생을 비로소 깨닫는다. 오늘도 주방에서 달그락달그락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엄마를 슬며시 안아주며 용기 내어 말한다. “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