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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엄공 Dec 29. 2021

친정엄마의 손녀딸 머리부심

조부모에게 아이 맡기는 워킹맘의 마음가짐

어릴 적 나는 줄곧 언니와 나의 눈이 여우눈인지 알았다. 엄마가 머리를 바짝 당겨 짜맨 덕분에 우리 자매의 눈은 항상 날카롭게 쭉 찢어져 중력을 거스른 채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매사에 손끝이 야물고 손놀림이 빨랐다. 자식들이 어릴 적에는 집에서 이런저런 부업을 쭉 하셨는데, 일거리를 처리하는 속도나 꼼꼼한 마감처리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부업을 그만둔 지 한참이 지나서도 '제발 일 좀 해달라'는 연락을 종종 받을 정도였다.


손끝 야물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법한 엄마는 어린 두 딸의 머리를 묶어 주는 일에도 대충인 법이 없었다. 두 딸을 순서대로 끼고 앉아 먼저 분무기에 담긴 물을 머리에 칙칙 고루 분사한 뒤, 빗살이 촘촘한 꼬리빗으로 부스스 엉킨 머리를 곱게 빗어내린다. 뾰족한 빗 꼬리를 이용 해 단정하게 빗은 머리칼에 좁다란 길을 내 반으로 척 나눈다. 눈 저울로 요리조리 중심을 가늠해가며 빗 꼬리를 이용해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머리칼을 두어 번 더 휙휙 넘겨 정교하게 가르마를 탄다. 가르마가 완성되면 일단 기초공사는 마무리된 셈이다. 다음은 원하는 스타일에 따라 구역을 정해 머리카락을 가닥가닥 나누어 쥔다. 나누어 쥔 머리카락은 불룩 튀어나오는 곳이 없도록 계속해서 곱게 빗어가며 땋거나 묶는데, 이때 관건은 머리카락이 한올도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단히 당겨 묶는 것이다. 튀어나온 잔머리나 앞머리는 큼지막한 똑딱 핀으로 고정한다. 때때로 앞머리는 둥근 드라이용 빗에 둘둘 감아 헤어 드라이로 살짝 열을 가한 뒤 살짝 까 뒤집어 준다. 그런 다음 칙칙 스프레이를 분사해 힘 있게 앞머리를 고정해 한껏 멋을 내주기도 했다. 아침마다 심혈을 기울여 두 딸의 머리를 묶다보면,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앙 다문 엄마의 입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풀렸다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엄마는 언니와 나, 남동생 이렇게 삼 남매를 낳았다. 둘째 딸인 내가 머리 묶기 독립을 선언한 것은 10살 무렵으로 가요계의 세 요정 SES가 아임 유어 걸을 외치며 새로운 돌풍을 불러일으키던 때였다. 바다 언니의 높게 하나로 묶어 마치 분수처럼 펼쳐 내린 머리와 몇 가닥 나눠 더듬이 마냥 길게 내린 앞머리가 그렇게 발랄하면서 세련되어 보였다. 내 위로 세 살 터울인 언니를 낳고부터 내가 10살이 될 때까지 엄마의 딸내미 머리 묶어주기 1차 경력은 12년쯤 된 셈이다.


두 딸은 결혼해서 각각 딸 하나 딸 둘을 낳았다. 우리 집안에 특별한 주말부부의 기운이라도 흐르는 건가 의아하게도 언니와 나는 임신과 출산 전후 모두 주말부부 생활을 경험했다. 남편은 이직해서 타지로 떠났지만 일은 계속해야 했으니, 시점은 달랐지만 나란히 세 살 터울로 태어난 세 손녀도 차례대로 친정엄마가 돌봐주셨다. 손녀딸을 돌보기 시작하며 약 십수 년간 손 놓았던 엄마의 머리 묶어주기는 다시금 시작되었다.


아이가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면 ‘등원룩’에 대한 엄마들의 관심이 커지듯, 나의 큰 딸인 둘째 손녀가 어린이집에 입소한 때부터 머리 묶기에 대한 엄마의 몰입도도 점점 커졌다. 이십 년도 더 넘게 손 놓았던 머리 묶어 주기를 다시금 재개한 엄마는 약간의 소명의식까지 느끼시는 듯했다. 예전에는 척척 잘만 하던 머리땋기 법도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손도 예전만 못하다며 이따금씩 속상해하셨지만, 틈틈이 유튜브를 보며 공부하시고 이리저리 응용도 하면서 엄마의 머리 묶기 스킬은 점점 일취월장했다. 단지 깔끔하게 묶어주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엄마의 창작욕구는 나날이 샘솟았다. 어떤 날은 머리에 꽃이 피고, 어떤 날은 나비가 내려앉았으며, 어떤 날은 하트가 뿅 나타나고 또 어떤 날은 쫑긋 솟은 고양이 귀가 나타나기도 했다. (액세서리가 아니다. 머리가 그러했다.) 장비가 시원찮다고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미용용품 자재 전문 판매업체에 가서 보도 듣도 못한 도구들을 공수해 오기도 하셨다. 손녀딸 머리 묶기에 엄마는 그야말로 진심이었다.

선생님께 지적받기 딱 좋은 등원룩의 예. 팔랑이는 긴 자수 원피스와 공들여 땋은 머리.




아이가 어린이집에 입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조심스러운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어머니~ 우리 미야 헤어스타일이 예사롭지 않은데,

외람스럽지만 혹 누가 머리를 묶어 주시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아... 네 선생님. 머리는 외할머니가 묶어주세요"


"그렇군요 어머니~~ 미야가 옷도 머리도 눈에 띄게 예쁘게 하고 오니..

반 여자아이들 중에 선망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어요. 미야도 은근히 즐기는 듯 한 눈치이고요.

원에서 오가며 마주치는 선생님들도 어린 미야가 인형처럼 꾸미고 오니 무척 귀여워하고 예뻐하고요.

그런데 저의 사견으로는 미야가 이제 4살인데,

아이의 내면보다 외적으로 타인에게 먼저 평가받는다는 것이 다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어린 미야도 그것에 지나치게 민감한 아이가 될까 봐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고요.

앞으로는 조금 편한 복장으로, 머리는 너무 튀지 않게 단정하게만 묶어서 등원시켜주시면

어떨까 조심스레 여쭤봐요."


담임 선생님은 역시 20년 경력의 배테랑 어린이집 교사다웠다. 시종일관 '솔' 톤의 밝은 목소리를 유지한 채 학부모의 기분을 전혀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조리 있게 자신의 소견을 담은 조언을 전해왔다. 선생님의 말씀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아이를 걱정하는 선생님의 진심 어린 충고가 고마웠다. 하지만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는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아... 선생님........ 옷은 제가 담당하고, 헤어는 할머니 담당이에요. 앞으로 옷은 제가 조금 더 편한 옷으로 입히도록 해보겠습니다만, 머리는.... 할머니께 말씀은 드려보는데, 솔직히 받아들여질지 장담은 못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나는 약간의 초조하고 조마조마 한 마음까지 일기 시작했다. 엄마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완곡한 표현으로 엄마에게 차분히 담임 선생님의 뜻을 전했다. 엄마의 대답은 내 예상에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짧고 단호했다.


"아이고 됐다. 마 내 알아서 한다.

 언니랑 니랑 둘 다 이래 키웠는데 뭐 어데 문제 있나?

 내 딸들 예쁘고 똑똑하게 잘만 키웠다 해라."




없는 살림에도 엄마는 아이들을 예쁘고 단정하게 꾸미는 데에 늘 신경을 많이 쓰셨다. 어느 아동복 브랜드 가게가 폐점 세일이라도 한다 치면, 어린 우리들을 엎고 걸려서 버스를 타고 일찍부터 가서 몇 장 남지 않은 예쁜 옷들만 쏙쏙 골라 사 입혔다. 둘째 딸인 나는 자연스레 언니 옷을 많이 물려 입었는데, 물려 입은 옷들도 하나같이 예쁘고 깨끗했다. 딸의 머리를 신경 써서 힘주어 묶고 예쁜 옷을 입혀 단장하는 것은 매사에 야무진 엄마의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엄마에게 그것은 단순한 외출 준비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아이가 단장하고 나가면 ‘아이고 예쁘다’ 칭찬을 듣는 것을 아이만큼이나 엄마도 좋아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뒤 엄마는 종종 내게 말했다.


"너거들 어릴 때 꽃단장해서 내보내면 아~무도 없는 집 자식으로 안 봤다.

내 꼴은 볼품없었어도 너거들 만큼은 부잣집 딸내미 부럽지 않게 항상 예쁘고 깔끔하게 해서 내 보냈다."


 딸아이를 단장하는 일은 엄마의 자존심이자 긍지였다. 어쩌면 엄마는 아이에게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과하게 단장하고 아이들을 최고로 예쁘게 꾸며주고자 했던 것은 일찍 남편을 잃고  남매를 홀로 키우신 외할머니로부터 어릴  엄마가 기대했지만 살뜰하게 돌봄을 받지 못한 어릴  엄마 자신,  내면 아이에 대한 서글프고 극진한 보살핌 이기도 했다.




요즘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맞벌이를 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만큼, 아이 양육에 대한 이견으로 자신의 (시) 부모와 갈등을 겪고 있는 워킹맘들이 꽤 많다. 나 또한 친정엄마라고 모든 게 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어서 마음이 어렵고, 나의 아집 때문에 엄마의 마음을 할퀸 순간이 수도 없이 많았다.


과연 이런 경우 워킹맘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아이를 돌보아 주시는 (시) 부모의 양육방식의 명암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시) 부모의 오랜 양육방식이 다소 고루하다고 하여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니다. 옛것 중에서도 옳은 것은 취하고, 시대가 변하여 새롭게 손보아야 할 것은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를 해주어야 한다. 조금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과 부모의 양육방식을 점검해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어릴적의 내가 정답으로 믿고 살아 온 내 친정엄마의 양육방식 속 그늘진 부분을 객관적으로 마주하고, 그제야 내 엄마도 하나의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엄마의 연약함을 알게 된 후에야 나는 내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제는 내가 엄마의 연약함을 보듬어 안아주고픈 마음도 갖게 되었다.


이제 나는 꼭 개선이 필요한 최소한의 사안에 대해서만 나의 방식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장시간 스마트폰이나 티브이 시청, 개인 수저 사용, 마스크 교체 등과 같은 꼭 필요한 사안들 말이다. 그 또한 엄마가 거절하면 그뿐이다. 더 이상 초조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한 발짝 물러나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지켜본다. 손주 양육에 대한 친정엄마의 선한 의도를 믿어보는 것이다. 나는 지당한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도 더 이상 아이 머리 묶기에 대해 간섭하거나 엄마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엄마의 양육 방식과 교육관에 의해 키워진 샘플이 여기 버젓이 살아있지 않은가. 아무렴 할머니가 손녀딸들이 잘 자라길 바라지 않을까, 더군다나 엄마의 양육방식이 아무리 최악인들 우리 세 남매처럼 되기밖에 더하겠는가.




엄마는 단지 내가 돈을 주고 고용한 베이비시터나 등원 도우미가 아니다. 내 아이도 소중하지만 내 엄마도 소중하다. 나는 육아의 정석을 따르기 위해 수고로이 아이를 봐주시는 내 엄마에게 상처 주기를 원치 않기에 오늘도 그저 예쁜 내 두 딸과 가여운 내 엄마의 내면 아이가 모두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나길 기도 할 뿐이다. 주말만큼은 아이들의 머리를 조금 느슨히 묶어 주중 내내 중력을 거스르니라 고생한 여우눈을 제자리로 돌려주는 여유로운 마음을 꼭 붙잡은 채 말이다.


영원하라. 온여사의 손녀딸 머리부심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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