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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엄공 Jan 09. 2022

워킹맘 아이의 머리카락 애착, 애정결핍일까?

아이와의 애착형성이 불안한 워킹맘에게 전하는 작은 위로

  최근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 및 경력단절 예방을 위한 경력단절 여성법 전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성의 일과 육아의 양립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갖가지 정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 정책들이 중소기업의 실정과 맞지 않아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소수의 인력으로 회사를 꾸려가는 중소기업에서는 임신이나 출산으로 잠시 공백이 생긴 보직을 위해 대체인력을 충원하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산후 육아휴직을 보장하기가 어렵다. '대체인력 고용 지원금'을 받는다 치더라도, 중소기업이란 자고로 이 일(주 업무)도 하고 저 일(잡무)도 해내는 멀티플레이어들의 집합소이니만큼, 투입 즉시 회사에서 필요한 이런저런 분야의 일들을 알아서 착착 해낼 깜냥 있는 '임시' 대체인력을 구해내기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나에게도 임산부 단축근무나 육아휴직 제도 같은 것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고, 임신과 출산을 통틀어 내게 주어진 휴가는 오직 3개월이 전부였다. 나는 세 살 터울의 두 아이를 출산한 후, 각각 3개월씩 두 번의 출산휴가를 지낸 뒤 두 번의 복직을 했다. 첫째 출산 후 복직을 할 때는, 채 백일도 안된 어린아이를 떼 놓아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너무도 아팠고,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그 어린것을 생판 모르는 남이 아닌 친정엄마에게 맡겼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지만, 각종 육아서에서 '영유아기 안정애착 형성의 중요성'에 대해서 읽거나, 가끔 티브이에서 '부모와 안정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아이의 부작용 사례'를 볼 때면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하나 날아든냥 마구 일렁이고 요동쳤다. 내가 충분히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아이가 엄마와의 안정애착을 형성하지 못하거나 아이의 정서가 불안해질까 봐 나는 심히 두렵고 불안했다.




  내가 어릴 적에도 주위에 '일하는 엄마'를 둔 친구들이 몇몇 있었는데, 나는 그 친구들의 엄마와 달리 우리 엄마가 집에 계신 것이 참 좋았다. 유치원이나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현관을 막 들어서는 내 표정이나 신발을 벗는 동작만 보고도 그날 나의 기분을 정확히 알아차리셨다(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무심한 듯한 눈길을 통해서도 엄마는 늘 자식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유심히 살피셨고, 부업을 하느라 시종일관 바쁜 손을 움직이면서도 귀는 늘 자식들을 향해 열려 있었다. 방과 후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조잘거리는 것은 어릴 적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하던 매주 토요일은 엄마가 점심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를 해주시는 날이었다. 토요일 4교시 수업 시간이면 내 마음은 이미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떡볶이 접시에 가 있었다. 나는 수업이 마치는 종이 울리면 얼른 그 떡볶이를 먹고 싶은 마음에 잰걸음을 총총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토요일 우리 집 현관문은 늘 활짝 열려있었다. 일주일 간 쌓여있던 현관의 먼지는 어느새 물과 함께 깨끗이 씻겨 나가 자취를 쏙 감추었고,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을 고스란히 머금어 반짝거리는 현관의 한쪽 벽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신발이 비스듬히 세워진 채 조르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내가 아직 저학년 일 때의 토요일 우리 집 소소한 일상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그 순간을 각별히 애정 했다. 맛깔스러운 엄마표 떡볶이를, 반짝반짝 빛나는 산뜻한 현관을,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엄마를.




  복직하면 아침 7시에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퇴근 직후 아무리 서둘러 아이를 데리러 가도 저녁 7시는 훌쩍 넘을 터였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내가 평일에 아이와 함께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2-3시간 남짓이었다. 나는 '내 아이와의 안정된 애착 형성은 지금 이 출산휴가 3개월에 사활이 걸려있다!'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출산휴가 3개월 간 아이에게 올인했다. '자꾸 그러면 애가 손 탄다. 산모 손목 나간다.'는 친정엄마의 만류에도 3개월간 매일같이 아이를 보듬고 토닥이고 엄마의 체취와 목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껴안고 입 맞추어 주었다. 또 복직하기 보름 전부터는 대답 없는 아이의 귀에 대고 매일같이 속삭여주었다. '아가, 엄마가 며칠 후면 다시 회사로 출근하게 될 거야.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매일 함께 갔었지? 엄마 매일 아침에 다시 거기로 가서 일하게 될 거야. 네가 할머니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는 반드시 너를 데리러 올 테니까 엄마가 안 보여도 절대로 걱정하지 마. 할머니랑 즐겁게 놀고 있으렴.'


  출산 휴가 3개월은 참으로 빨리 지나갔다. 온 우주와 같았을 엄마의 몸속에서 이제 막 낯선 세계로 분리된 아가에게 시간은 조금의 양보도 없이 참으로 야속했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 길이 아무리 바빠도 아이와 인사를 나누는 일은 절대로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백일이 되지 않았으니 도통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지 알 방법은 없었지만, 아이를 차에 싣고 친정에 아이를 맡기러 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었고, 친정집에 아이를 누이고 일어서는 순간에도 꼭 아이와 눈 맞추고 인사해주었다. "할머니랑 잘 놀고 있어. 엄마 일하고 저녁에 데리러 올게." 아이가 잠들어있을 때에는 귀에 대고 속삭여주었다.


  아이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준 나의 노력 탓일까, 큰 아이는 이제 막 '엄마, 아빠, 물, 까까, 빠빠, 코'와 같은 말을 시작하게 될 때부터 '엄마 어디 갔다 왔지?', '아빠는 어디에 있지?'라고 물으면 '회사'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을 만큼 '엄마 아빠는 아침이 되면 회사에 가고, 저녁이 되면 날 데리러 온다'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한 큰 아이는 생후 3개월부터 엄마와 떨어지기 시작한 이후 막 여섯 살이 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출근하는 엄마를 붙들고 운 적이 없다. 외려 그것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때도 없잖아 있었지만, 처음 나의 기우와 달리 큰 아이와의 애착형성은 나름 선방한 듯했다.




  문제는 둘째였다, 아니 정확히는 둘째가 문제가 아니라 둘째가 태어날 당시의 우리 집 상황이 문제였다. 아이가 둘이면 아이 한 명 한 명에 대한 부모의 관심은 으레 절반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둘째 아이에 대한 사랑이 작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아이가 한 명 더 태어났다고 해서 부모의 능력이 2배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므로 첫째 아이에게 쏟던 관심과 노력의 절반 정도를 둘째 아이에게 줄 수밖에 없는 것은 슬픈 사실이다. 아빠와 엄마가 큰 아이에게 쏟던 관심과 노력의 최대치의 총합이 100이라면, 아이가 둘이 되는 순간 반씩 나눠 둘째 아이에게는 자연스레 절반인 50 밖에 줄 수 없다. 게다가 둘째가 태어난 직후 우리 부부는 다시 주말 부부가 되었고, 주중에는 아빠가 없었으니 둘째가 받는 관심은 50에서 또다시 절반인 25로 줄어든 셈이었다.


  나 또한 둘째 딸로 태어났기에 둘째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아이가 하나 더 태어나자마자 주말부부가 되어 나 역시 정신이 없었다. 첫째는 유난히 아빠를 좋아하고 잘 따르는 아이인데,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아빠마저 타지로 발령을 받아 훌쩍 떠났기 때문에 나는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혼란스러웠을 첫째에게 더욱 마음이 쓰였다. 출산 휴가 기간에도 첫째 아이가 상실감과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데에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다(둘째야, 미안하다, 사랑한다). 태어나자마자 아빠와 멀리 떨어져 어린것이 행여나 자라면서 제 아빠도 못 알아보고 낯을 가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주말 아빠와 둘째의 애착'에는 꽤 신경을 많이 썼음에도 정작 나 자신은 둘째 아이에게 첫째 아이만큼의 충분한 애정을 주지 못했다.



 

  주말 아빠와의 애착에 각별히 신경 쓴 덕분일까 아님 핏줄이 저절로 당기는 힘 때문일까. 다행히 낯가림이 찾아온 이후에도 둘째는 아빠만 보면 신통방통하게도 벙싯거렸다. 둘째 아이가 아빠를 곧잘 따르고, 첫째도 언니가 된 상황과 아빠와 떨어져 지내는 상황에 어느 정도 잘 적응하는 듯하여 안심할 때 즈음 그제야 내 눈에 둘째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가 3-4개월이 되었을 무렵부터 내 머리카락에 애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쥐는 힘이 약해 언제부터였던가 딱히 인지하지 못했지만, 사진을 뒤적거려보니 그때 즈음부터였다. 엄마가 곁에 있을 때면 깨어있을 때나 잘 때나 어김없이 고양이 발 마냥 작고 통통한 주먹으로 내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하루하루 자라면서 엄마 머리카락에 대한 아이의 애착은 더욱 강해졌고, 아이가 쥐는 힘도 더욱 세졌다. 아이에게 잡힌 내 머리카락은 뚝뚝 끊어지며 우두둑 뽑혔다. 자고 일어나면 간밤에 아이에게 쥐어뜯긴 머리카락이 이불에 수두룩했다. 머리카락을 그냥 아이에게 내어주자니 그렇잖아도 출산 후 자연히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빠지는 중인데, 곧 대머리 되는 거 아닌가 심히 걱정이 되었다. 난생처음 겪는 반복되는 수모(?)에 나의 모근은 늘 얼얼하고 욱신거렸다. 큰맘 먹고 머리카락을 안 주고 버텨보자니, 울고 불고 보채는 아이를 이길 재간이 도저히 없었다. 머리카락이 쥐어 뜯기는 그 자체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아이가 머리카락에 애착을 보이니 아이에게 머리채를 내어주느라 나는 정말 아이에게 붙들려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무엇보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열심히 인터넷 검색창을 뒤졌다. '머리카락 애착 해결법, 머리카락 애착 언제 없어지나요 등등….' '안 없어져요. 우리 아이 초등학생인데 여전해요'라는 불길한 답은 애써 모른 체하며 해결책을 묵묵히 찾아보았다. 우선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대로 아이가 머리를 뜯을 때 엄마가 아픈 것을 알려주었다. "엄마 아파요. 아야 아야" 초반에는 아이가 흠칫, 하고 행동을 멈추는 듯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엄마가 머리카락을 못 만지게 한다'는 생각에 아이는 "아야 아야" 소리만 들어도 더욱 날카롭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다음 해결책으로는 아이에게 머리카락이 아닌 다른 애착 물건을 만들어 주라는 것이었다. 집에 있는 인형이나 큰 아이의 애착 물건인 손수건 등을 줘 보았으나 아이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큰맘 먹고 머리카락 소재와 촉감이 매우 비슷하다는 양모로 만든 애착 인형을 사 주었다. 아이는 그 인형을 좋아했지만, 인형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 엄마 머리카락은 여전히 꼭 있어야 했다. 나중에는 단발을 해볼까, 하는 고민도 잠시 해 보았지만 아이에게 너무 잔인하게 느껴져 관두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아이가 오매불망 엄마의 긴 머리카락만 붙들고 놓지 않는 모습을 보자 어른들은 입을 대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 어린것이 엄마랑 떨어져서 얼마나 엄마가 그리우면... 쯧쯧'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몇 날 며칠이고 그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누구보다 어린 내 자식들과의 안정애착 형성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였는데… 정말 내 아이가 애정결핍이면 어떡하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떼 놓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내 상황이 속상해서 자꾸만 마음이 뾰족해지고 힘들었다. 어릴 적 언제고 나를 기다리던 포근한 집과 엄마의 음식, 엄마를 누구보다 사랑하던 나였다. 내가 사랑하던 그것들을 내 아이들에게 줄 수 없다는 자책은 자꾸만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아이의 머리카락 애착이 정녕 엄마와 충분히 교감하지 못하고 엄마로부터 애정을 공급받지 못한 결과라면 해결책은 내게서 찾아야 했다. '내 아이가 애정결핍 일리가 없다'는 생각에 애써 외면하고 싶었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제야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 애착 원인, 머리카락 애정결핍, 워킹맘 애착형성….' 찾아보니 상황이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우선 우리 아이가 특별히 엄마와의 분리불안 증세를 보인다거나 심한 낯가림을 보인다던가,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던가 하는 식의 특이점은 없었다.


  또한 아이의 머리카락 애착은 워킹맘뿐 아니라 전업맘의 아이들에게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례였다. 우리 아이의 애착 대상이 엄마의 머리카락이라는 점에서 나는 오히려 아이가 느끼는 '주양육자'가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라는 것이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가 언제 내 머리카락을 찾는지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아이는 주로 엄마와 떨어져 있다가 재회할 때, 즉 반갑게 엄마를 맞이할 때나 노곤하게 졸릴 때, 혹은 쏟아지는 잠에 잠투정이 날 때면 내 품을 파고들어 머리카락을 찾았다. 머리카락을 잡고 붓처럼 세워서 빳빳한 머리카락 끝으로 제 얼굴이나 손, 발을 간지럽히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 머리카락에 대한 아이의 애착이 애정결핍이나 불안정 애착의 증상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더 이상 나 편하고자 아이에게서 애착의 대상물을 빼앗는 일은 멈추기로 했다. 만약 내 아이가 정말로 애정결핍이 맞다면 부족한 그 애정은 내가 더욱 확실히 채워주어야 할 테니까. 또한 머리카락이 애정결핍의 결과가 아닌 단순 애착의 대상물일 뿐이더라도 그것을 빼앗는 순간 아이에게는 또 다른 결핍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혹 내가 워킹맘이라서 아이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는 걸까' 나를 위축하게 만들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 거리도록 나를 옭아매었던 기우도 이제는 내려놓기로 했다. 더 이상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없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으로 내 아이에게 듬뿍 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게 주어진 한정 된 시간 안에서 한 번이라도 더 아이를 보듬어주고 사랑해주기로. 퇴근 후 아이를 마주할 때나 아이가 졸려할 때, 이제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아이를 꼬옥 품에 안아준다. 언제고 내 머리카락을 내어준다.


  먼 훗날 어른이 된 내 아이의 기억 속에도 따스한 일상의 순간들이 아스라이 남기를 바라본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고 어스름이 내려앉을 저녁, 막 졸음이 쏟아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띵동' 반가운 초인종 소리를, 가지고 놀던 장난감도 내팽개치고 현관 앞에 달려가면 환하게 웃으며 '엄마 왔다~!' 외치며 두 팔 가득 자신을 꼭 끌어안아주는 엄마를, 간질간질 피부에 와닿던 엄마의 머리칼과 가까이서 느껴지던 엄마의 숨소리와 체취를. 물론, 먼 훗날 중년이 된 내가 대머리가 된다면 아이에게 어느 정도 책임은 물을 생각이지만 말이다.


머리채만 내어주면 이리도 행복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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