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는 몇 살쯤 되었을까. 키는 성인인 나와 큰 차이 없어 보였지만, 빵빵한 볼이며 몸 군데군데 말랑한 살집이 있어 몸무게는 꽤 나가 보였다. 11살, 12살?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10살은 되어 보였다. 골격은 성인만큼 자랐으나, 아직 앳됨이 묻어있는 그 여자아이는 떡이 져 쩍쩍 갈라지고 쉰내 나는 머리로 산발을 한 채 우리 집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가 불편한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 길이 없었으나 아이는 때로는 큰 눈을 희번덕이며 아주 사납게 날뛰었고, 때로는 아주 처연하게 목 놓아 포효했다.
사나운 짐승 한 마리가 우리 집 거실을 점령하자, 어린 내 딸은 거실 한구석에 몸을 숨긴 채 공포에 오들오들 떨고 있다. 자세히 보니 둘이서 부둥켜안고 있다. 분명 둘이다. 그럼 저 짐승은 분명 내가 낳은 딸 둘 중 하나가 아니렷다. 오, 사랑스러운 내 딸들, 꼬공이와 아공이. 겁에 질린 아이들은 차마 울지도 못한 채 그저 동그란 토끼 눈을 하고선 행여 자신들을 공격할지 모를 짐승의 행동을 숨죽여 주시하고 있었다. 난장판인 집안 꼴과 가여운 내 새끼들을 보니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대체 저 짐승 같은 여자아이는 누군데 남의 집을 초토화시키고 귀한 내 새끼들을 위협한단 말인가?
당장 저 사나운 짐승을 내 집에서 제거해 버리고 싶었지만, 문제는 도통 이 아이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혹, 내가 아이 셋을 낳았던가? 저 아이를 낳고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건가. 아님, 막장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남편이 결혼 전 어디서 낳아온 숨겨둔 자식 같은 건가. 그것도 아님, 언젠가 내가 막연히 바라던 가정 위탁이나 입양을 한 것인가? 아이의 신분을 알 길이 없었지만, 우선 내 집에 있으니 그 아이가 저리 날뛰는 꼴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크게 한숨을 들이마시고 양팔 소매를 걷어 젖혔다. 내가 나서야만 했다. 우선 묵직한 짐승을 간신히 끌어다가 욕조에 푹 담갔다. 우리 아이들을 씻길 때 사용하는 거품 비누를 잔뜩 풀어 구석구석 묵은 때를 벗겨냈다. 덩치만 컸지, 스스로 양치질은커녕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는 커다란 몸집의 아이를 씻겨 내느라 그냥 아주 진땀을 뺐다. 온 힘을 쏟아부었더니 드러누워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으나, 굶주린 짐승 한 마리와 내 두 딸 들을 식탁에 앉히고 밥상을 차렸다. 겨우 껍데기의 때만 벗겨낸 짐승 같은 아이는 혼자 음식을 먹는 것도 불가능했다. 반듯이 앉아 제 몫의 식사하는 내 딸들과 달리 수저 사용은커녕, 떠 먹여주는 음식조차 제대로 받아먹지 못해 식탁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실랑이를 벌였다. 나는 재겹게 이 거칠고 신경질적인 짐승을 길들여야만 했다. 우리 집에 사는 내 딸이 아닌 저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어린 두 딸들을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나밖에 없었다.
평소 제아무리 호박고구마보다 밤고구마를 선호하는 나라지만, 이건 정말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밤고구마만 내리 10개 까먹는 것처럼 가슴이 꽉 막혔다. 몸이 이만큼 자라도록 아이는 어째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 규범도 익히지 못한 걸까. 아이는 처음부터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벙어리가 되어 버린 걸까. 아님, 뱉지 못한 말들이 가슴에 가득 차 응어리가 되어 점점 벙어리가 된 것일까. 저 짐승과 내 아이들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 한순간 짐승이 내 아이들을 해치면 어떡하나. 답답함과 불안함에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고, 그 순간 ‘쿵’하는 소리에 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쿵 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둘째가 침대 발치에서 떨어져 앵앵 울음을 터트렸다. 아직 잠결에 우는 아이를 달래 재우고는 휴대폰을 더듬어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50분. 참으로 기이한 꿈이었다. 한참 꿈속에서 시달리던 피로감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가슴 언저리가 여전히 뜨끈하고 먹먹했다. 그 여자아이는 도대체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