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문화예술 뉴스레터 <Beyond L> 연재
이들의 결심이 궁금했다. 그들은 초연했고 유연하고 맑은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 서로가 솔직해진 자리에서 나의 불안을 꺼내보였을 때에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 말해주었다. 누군가는 내가 자신에게 제주에 왜 왔느냐고 질문하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 내가 공식적으로 질문하면 답해줄 거야?”
“공식적으로? 어떻게?”
“너를 인터뷰하는 거지. 네가 제주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서.”
﹅ 전문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음 上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제주에 내려와 사는 게(이하 '제주살이') 어떤지 물어봤던 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불안해하지 않아 보였다. 은지 언니가 특히 그랬다. 돌아갈 날을 기약하지 않고 살고 있었고, 생활 범위도 동네의 반경이 전부여서 제주는 제주일 뿐, 이곳에서 살게 된 일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 했다. 그럼 왜 제주까지 내려와 살고 있는 거야?
"어길 가나 똑같은 거 같아. 어느 도시에서 사나 비슷해왔어. 떠날 이유가 없으면 그냥 어디에든 머무는 것 같아. 이미 내가 여기에 왔잖아? 발을 들여놨고. 떠날 이유가 분명치 않은 이상 제주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도 많으니 당분간은 더 머물겠지."
은지 언니와 정반대로 오직 한 달만을 생각하고 온 연아는 스무 살 대학생이었다. 그는 여름방학을 재밌게 보내고 싶어서 내려왔다고 했다. 마주 앉아 카레를 먹었던 그 시간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수줍어하며 금발의 머리칼을 귀 뒤로 자꾸 넘겼다.
"머리 색이 예쁘네요."
"아... 감사합니다. 탈색 처음 해봤어요. 스무 살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거든요."
"그럼 제주살이도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을까요?"
네! 맞아요! 이어서 신이 난 듯 제주에서의 에피소드를 숨김없이 꺼냈다. 새까맣게 탄 팔을 보여주면서 선크림이 소용없었다고 했다. 선크림 덧바를 시간에 바다에 한 번 더 들어가는 게 좋았다고. 그렇게 바다는 원 없이 보았고, 친구도 방학 중에 여행을 가고 싶어 했는데 자신이 있는 제주로 내려왔단다. 친구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 그는 그제야 자신이 진짜 제주에서 살고 있다고 느꼈다.
여름방학이 얼마 안 남았다.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돌아가면 개강 후 바빠지겠지만 언젠가 부모님과 다시 제주에 오고 싶다면서 남은 카레를 한입에 넣었다. 빈 그릇 한쪽엔 숭덩숭덩 썰린 당근 몇 개가 남아 있었다. 당근 안 좋아해요? 네... 그럼 다른 카레 먹지 왜 당근 카레를 먹었어요? 당근 카레라는 걸 처음 봐서요.
내가 연아의 나이였을 때, 대학에 가면서 자연스레 섬을 떠났다. 운 좋게 합격한 대학은 부산에 있었다. 섬에도 물론 학교가 있었지만 스무 살이 되어 육지로 가는 건 내게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 입시에 맞먹게 고교 입시 경쟁도 심한 제주,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면 낙오자처럼 낙인찍히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다. 중학교 3년 내내 엄마의 눈치를 봤다. 월등히 잘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 성적은 학교에서 딸랑이(합격 점수 근처에 있는 학생들을 부르는 은어)로도 안 쳐줬다. 그래도 엄마는 훨씬 안전하게 입학하길 원했다. 개중 어느 곳을 1지망으로 쓸지만을 고민하길 바라셨다. 점수 1점 차이로 왕복 서너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시외 고등학교로 배정받을 수도 있었으니까.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엄마는 제주시가 그야말로 우물 밖 세상이었다고 했다. 동네에서 공부를 잘했기에 제주시 소재 고등학교로 입학할 수 있었는데, 중학교 교복을 벗으면서 올려다본 엄마의 하늘은 드넓었다. 내 키가 엄마의 허리춤이었을 때부터 엄마는 그때 그 시절 막막하면서 동시에 벅찼던 심정을 전했다. 너도 시에 강 공부허라, 대학은 육지로 갈 수 이시믄 가라. 돌림노래처럼 자주 듣던 엄마의 응원은 나를 비행기에 실었다.
그러나 이십 대의 나는 한 도시만을 생각하면 고개를 세차게 젓고 만다. 부산에는 제주처럼 바다가 있었고,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낙동강 하구가 있어 새로웠지만 그 또한 잠깐이었다. 방학이 되면 제주로 내려가기 바빴다. 부산 바깥의 세상만을 바라봤다. 그렇다고 제주에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조기 졸업할 수 있는 방법까지 찾아냈던 스무 살은 어두운 낯빛을 하며 나를 외롭게 했다.
대학 생활에 적응되었을 때도 여전히 부산과 제주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부산에는 연고도 이유도 없었고, 제주는... 내 고향 제주에는...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성공이 어떤 모양을 하고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모양 빠지는 모습일 게 분명했다. 지금 이대로 말고, 좀 더 나은 모습으로 가고 싶었다. 이십 대의 나는 그 모습 또한 나인 걸 몰랐다.
삼달: (억울한 듯 울면서) 나 집에 가고 싶어. 나 제주도 가고 싶어. 나 너무 힘들어.
용필: 울지마울지마울지마 (안아준다)
삼달: 나 삼일 동안 잠도 못 잤는데... 밥도 못 먹고... (카메라 가방 가리키며) 나 이것도 다 깨졌어 어떡해... 용필아, 나 집에 갈래. 나 집에 갈래...
용필: 그래, 알았어. 울지 말어. 집에 가자. 야, 이거 다 때려치워. 하지마, 때려치워. 뭐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냐? 왜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 거야? 왜 엄마 아빠 있는 고향 놔두고 왜 서울까지 와서 생고생이야? (삼달과 나란히 앉으며) 삼달아, 나는 있잖아. 너를 위해서 언제든 제주 내려갈 준비가 다 됐어. 야, 이거 하지 마. 사진작가 나부랭이 개똥 같은 거 이거 해서 뭐 해? 하지 말어, 때려 치워버려!
삼달: (훌쩍이며) 아니거든, 나부랭이?
용필: 그럼 할 거야? 사진작가 나부랭이 할 거야?
삼달: 할 거야. 내가 진짜, 내가 진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진짜 보란 듯이 되고 만다, 사진작가! 나부랭이!
용필: (웃으며) 아이고, 나는 또 이참에 너 덕분에 또 제주 내려갈 수 있나 했지?
삼달: 야, 내가 제주도 안 간다고 했지? (뒤돌아 제주사랑은행 간판을 가리키며) 야, 두고 봐! 안 가, 제주!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에서 삼달이(신혜선 분)가 나 대신 울며 말한다. "두고 봐! 안 가, 제주!" 삼달이에게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보낸 시간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국내 톱 사진작가 조은혜가 된 것도 잠시, 구설수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제주로 내려가게 되었을 땐 다시 조삼달이 되었다. 지척인 사람들 모두가 조삼달 이름 석 자로 부른다. 삼달이는 조은혜이기도 하지만 제주에선 당연히 조삼달, 처음으로 내가 나인 게 불편하지 않았다.
제주에서 삼달이가 내가 나인 채로 사는 연습을 했다면 나 또한 그해 여름 위태로운 마음을 제주 바다 곳곳에 새겨두며 살아보려고 애썼다. "뭐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냐? 왜 엄마 아빠 있는 고향 놔두고 왜 서울까지 와서 생고생이야?" 삼달이를 달랠 줄 알았던 용필이(지창욱 분)의 농담을 가슴에 새겨본다. 제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이유도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함이었고, 제주를 선택해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던 그 해에도 나는 나아지기만을 바랐다. 이보다 더 구렁텅이는 아니어야 한다고.
"당근 안 좋아해요?"
"네..."
"그럼 다른 거 먹지 왜 당근 카레를 먹었어요?"
"당근 카레라는 걸 처음 봐서요."
스무 살 연아와 함께 카레를 먹었던 식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는 어느덧 이십 대 중후반을 지나고 있겠다. 이후의 여름은 어떻게 보냈을까? 여전히 당근은 못 먹나? 버킷리스트들을 하나씩 해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처음인 것들이 가득했던 스무 살 여름을 잊히려야 잊을 수도 없겠지. 은지 언니는 지금 어디에 있지? 제주에서 마침표를 찍고 육지로 올라와 짐을 푼 걸로 알고 있는데... 남쪽 어느 도시에서 공방을 차렸다는 소식에 언니답다고 생각했었다. 실크 스크린 공예로 하얀 천에 매일 아로새기는 것들이 마치 어디에서든 잘 살고 있다는 안부 같았다.
나 또한 그해 여름을 끝으로 부산으로 돌아가 학교 생활을 마쳤다. 제주살이를 해봤던 사람들의 대화는 거의 모두 책에 실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제주 바다에서 만나 기록했다 하여, <바다 레코드>라 이름 붙였다. 가끔은 1인분도 못 해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일 때가 많지만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고 싶은 마음만은 여전하다. 제주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성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과 이별했고, 제주를 가까이할수록 나다운 걸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전부일 수도 있단 생각도 할 줄 안다.
이게 다, 그해 여름 덕분이다.
지긋지긋한 여름이 나를 살게 한 적도 있었다.
오늘도 우리는 욕심내지 않고 딱 우리의 숨만큼만 버텨 가고 있다. 그리고 언제든 이곳에서 숨이 가쁠 때 그곳을 찾을 것이다. 우리의 개천 삼달리.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우릴 얼마나 안심하게 만드는지.
✧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 16화 중에서
﹅ 글에서 언급한 씬은 극 중 이렇게 표현됩니다.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는 국내 톱 사진작가 조은혜가 하루아침에 명성을 잃고 고향 제주로 내려가 본명 '조삼달'로 살게 되면서 잃어버린 '나'를 찾고 '사랑'도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글에서 작성한 대사는 제 방식으로 작성되었으며, 실제 극본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