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연, 『카운터 일기』(시간의흐름, 2019)
"아르바이트를 출근이나 퇴근이란 말로 설명하기 싫어."
어리석었다. 그런 말을 뱉고 한 달만에 '짤'렸으니 말이다. 2년 만에 다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오전 7시에서 11시까지 서초역 역사내 프랜차이즈 카페에서였다. 시급은 10,000원이 넘었고, 수습기간 두 달은 9천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카페는 오전 7시에 여는데, 7시부터 손님들이 차례로 오는 곳이다. 늘 주먹밥 하나를 손에 쥐고 아메리카노를 사가는 사람, 어학책을 한 손에 끼고 "홀에서 아메리카노 연하게"를 고수하며 들어오자마자 자리부터 찾아 앉는 사람. 그러다 8시에 가까워지면 한차례 물밀듯이 오다가 9시에 가까워지면 정말 미친듯이 밀려온다.
줄이 길어질 때마다 실수가 늘었다. 기계처럼 빠르게 아메리카노를 내리고, 와중에 '얼음 많이', '우유 많이' 등 주문이 추가되면 과부하에 걸려 실수가 보태어졌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나는 다시 카운터에 서서 손님들의 계산이나 겨우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아, 이게 아닌데… 오전 11시에 귀가하면서 늘 하던 생각이었다.
금요일 오전 11시면 다음주엔 조금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자기 위로로 돌아갔고, 월요일 오전 6시 15분이 되면 온몸에 바짝 긴장하고 집을 나섰다. 하필 개천절과 한글날 휴일이 겹쳐 일을 배우는 바람에 하루 지나 다시 새로운 업무가 주어지는 인수인계 형태였다. 아, 이게 아닌데… 그러다 진짜로 2주차가 지났을 무렵 몇 달 전에 본 사주가 떠올랐다.
"몸으로 하는 거 절대 하지 마세요. 돈 못 벌어요. 무용이나 춤, 안돼. 돈이 아무리 궁해도 공장 가지 마세요. 기계 멈추니까."
그래, 커피머신. 하루 4시간 기계를 돌리고 있었지. 한 번은 매니저가 내게 "몸을 기계라고 생각해요."라 말했었다. 어떻게 몸이 기계가 될 수 있지? 반문하기엔 업무가 정말 기계적이긴 했다. 시급이 높았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나. 아, 이게 아닌데…
월급일 기준 마지막 근무일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던 사장이 별안간 출근해 내가 일하는 걸 지켜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날 전화로 해고 통보했다. 두 달 수습기간을 채우지 않는 사장과 한 달을 일해도 일이 늘지 않았던 나의 사이에 통장 계좌번호가 적혔다. 덕분에 월급은 다른 사람들보다 이틀 먼저 받았다.
한 달 일한 월급으로 두어 달을 버텼다. 그동안 책을 출간해 북페어에 참가하게 되었고, 페어에서 번 돈으로 다시 한 달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정신없이 삼개월이 지나가고, 이제 진짜 알바를 구해야할 때가 되었을 때에는 수능이 끝난지 한참에다가 대학생들이 너도 나도 종강을 해버려서 일자리가 해도해도 없었다. 열 군데 넣으면 한 군데 연락 오는 게 전부였다. 차라리 취업 준비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알바 하나 구하지 못하고 지쳐있을 즈음 이 책을 만났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머리를 비우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단순노동 하는 것으로 희열을 느끼는 사람. 앉은 자리에서 만두 오백 개 빚으라고 해도 군말없이 잘 빚고, 전을 부치라고 하면 온종일이라도 부치고, 종이봉투를 풀로 붙이라 해도 엉덩이 무겁게 앉아서 봉투 천 개쯤 즐거이 완성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다. (36)
이런 사람이어야 (바쁘게 돌아가는) 카페에서 일할 수 있는 건가. 누군가의 '카운터 일기'를 읽다가 내 지난 아르바이트 이력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한 번도, 바쁘게, 정말 바쁘게 손님들이 오가는 사업장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다. (있다 해도 며칠 안 되어 스스로 관두었다.) 서초역 그곳은 버티는 게 답이었다. 버텨야 사주를 깨부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내 생활이 괜찮아지니까. 그런데 언제까지고 버틸 수 있겠는가의 문제도 컸다.
어쩌면 '구원'이나 '상환'이라는 뜻의 리뎀션이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질척하고 추운 날들을 견디며 꿋꿋하게 도장을 찍다 보면 어떤 날에는 지금의 고민과 회의, 고통에 대한 상환으로 선물처럼 무료 음료가 짜잔 하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 망쳐 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옳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다다르는 순간이 있을 것이고, 그때 가서 돌아보면 지그재그로 걸어온 지난 길이 그 순간을 만드는 데 필요했던 요소임을 수긍하게 될 테니까. 옳다고 생각되는 그 지점에서 눈 깜짝할 새에 다시 내려와 또 회의와 고민으로 점철된 길을 걸으며 '이렇게 살아도 되나'를 묻더라도 하나하나 도장을 찍다보면 언젠가는 선물처럼 '리뎀션'의 순간이 다시 온다는 것을 아니까 조금 덜 두려워할 수 있을 것 같다. (45)
한 번은 이런 적 있었지 아마. 쿠폰 10칸을 다 채우면 '레귤러' 사이즈에 해당하는 음료가 제공되는 게 룰이었고, 사이즈 업이 된다면 차액 결제를 해야했다. 그래서 했다. 했는데, 지난 번엔 그냥 해주었다며 당황해하는 손님과 쿠폰을 다 채운 손님을 처음 받는 나 사이에 어떤 기류가 흐르고… 같이 일하는 매니저급 알바생이 나를 다그쳤다. "그게 룰이긴 한데, 단골이잖아요. 센스있게 줬어야지."
바쁜 출퇴근 길에, "회의와 고민으로 점철된 길을 걸으며" 커피를 시키진 않을 것 같고 그냥 싸니까, 단돈 2000원이면 아이스라떼 킹 사이즈를 마실 수 있으니까 시킨 거 같은데, 하필 일한 지 한 달도 안 된 알바생이 센스가 부족해서 손님의 '리뎀션' 순간을 가로챘다. 500원을 추가 결제하면서 말이다.
결혼 직후 한동안 나는 사람마다 생활방식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그 디테일에 빠져들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집 화장실에는 휴지통이 있나 없나. 도마는 한 개 인가 아니면 두 개 또는 세 개 인가. 수건은 한 번 쓰고 세탁하나 재활용하나. 천 걸레를 물에 빨아 사용하나 물티슈로 바닥을 닦고 그대로 버리나. 싱크대에서 양치하는 것을 용납하나 하지 않나. 반찬통에서 접시로 한 번 나온 반찬은 무조건 버리나 아니면 다시 반찬통에 넣나. 와이셔츠 세탁은 세탁소에 맡기나 집에서 직접 하나. 티셔츠는 다려 입나 그냥 입나. 청소할 때마다 창틀의 먼지를 닦는가 닦지 않는가. (111)
명동에서 빙수를 팔던 시절, 딸기 빙수에 올라가는 토핑 생딸기를 매니저 언니는 네 조각으로, 같이 일하는 언니는 세 조각으로 잘랐다. 그래서 매니저 언니와 일할 때는 네 조각으로, 다른 날에는 세 조각으로 잘라야 했다. (다섯 조각으로 자르면 그건 나만의 딸기빙수였을텐데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지?) 비슷하게, 서초역 그곳에서도 치즈머핀에 치즈를 접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카스테라 위 크림 토핑을 올리고 포장해야 하는지 포장하고 올려야 하는지, 커피 템퍼를 두 번 쳐야 하는지 한 번 쳐야 하는지, 바쁜 와중에 고민을 해야 했고 고민하다 보면 실수가 늘었다.
다시는 카페 알바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카페 알바 경력을 모조리 다 지우고 싶을 만큼 이 책을 꽤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한참 일이 잘 구해지지 않다가 (사기에 가까운 일도 당해봤다가) 이 책을 다 읽을 무렵 겨우 토요일 하루 6시간을 일하게 되었다.
그곳은 카페다. 그냥 카페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토스트를 팔고, 내가 좋아하는 동네 연희동에 있고, 내가 좋아하는 책방 옆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그곳에서 확인받고 싶어졌다. 내가 공장(커피머신)에 가도 괜찮은지, 내가 커피를 내려도 되는지, 내가 카페라는 공간에서 일해도 되는지를.
내가 한 것은 커피를 만들어 건넨 것밖에 없는데, 이토록 매력적인 사람들이 내 삶에 들어와 일부가 되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호의까지 입고 있으니 과분함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166-167)
한 달이 지나 나도 위와 같은 문장으로 나를 설명하고 싶다. 토요일 6시간만을 일하기 위하여 연희동으로 가는 이가 있고, 그는 그것을 '출근'이라 부르기로 했다고.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