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법률서비스의 현황과 국내외 향후 전망
안녕하세요. 변변찮은 최변입니다.
[스타트업 × 법]으로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중간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재를 잠시 중단했는데, 다시 시작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
이번에 주제는 "인공지능 × 법률서비스" 입니다. 주제가 거창하면서도 우리 매거진 제목과도 잘 부합하는 것 같죠?
4차 산업혁명 키워드 중 하나인 인공지능, 빅데이터는 '법률서비스' 분야에서도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법률시장이 '보수적, 폐쇄적'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렇지만 역시나 다른 분야보다는 인공지능의 진입에 대해 기술적, 윤리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어려움이 떠오르시나요?
우리나라 변호사법에 따르면 '변호사가 아닌 사람'은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또한, 변호사일지라도 돈을 받고 다른 변호사를 소개해주는 행위도 금지되죠.
변호사법 제34조(변호사가 아닌 자와의 동업 금지 등) 중에서,
"사전에 금품·향응 또는 그 밖의 이익을 받거나 받기로 약속하고 당사자 또는 그 밖의 관계인을 특정한 변호사나 그 사무직원에게 소개·알선 또는 유인하는 행위"
"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를 통하여 보수나 그 밖의 이익을 분배받아서는 아니 된다."
즉, 유상으로 "변호사 알선 금지", "비변호사의 법률사무 제공 금지" 이렇게 두 가지를 변호사법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외 개발되고 있는 대부분 인공지능 법률서비스는 이 두 가지 유형에 해당됩니다. 현재 국내 리걸 테크 업체 여러 곳이 위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발되기도 했죠. 결국 현행 변호사법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어떠한 형태의 리걸 테크도 결국 불법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 비해 기술도 발달하고 규제도 적은 미국에 인공지능 법률서비스 사례가 더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을 이용한 'ROSS'라는 법률서비스가 있습니다. ROSS는 인공지능의 필수 자질(?)이라고 볼 수 있는 자연어 처리능력과 머신러닝, 딥러닝 능력을 앞세워 맞춤형 답변, 법률 의견서 작성, 법률 쟁점 개관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렉스 마키나'라는 서비스도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으로 방대한 판결문을 딥러닝하여 소송당사자와 변호사에게 소송전략수립을 돕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도 '홈스(Holmes)'라는 계약서 작성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월 약 980엔, 한화 1만원 정도)으로 제공하는 스타트업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도 비록 규제가 강한 편이지만 IT 강국답게 인공지능을 이용한 법률서비스가 있습니다. 국내 인공지능 법률서비스의 선구자격인 '인텔리콘 메타연구소(대표 임영익)'가 대표적이죠. 인텔리콘은 누구나 사건 키워드를 입력하면 관련 법령과 판례를 찾아 제공하는 지능형 법률 추론 엔진인 '아이리스'와 '유렉스'를 개발하였습니다. 최근엔 '자연어 처리기능'과 '법률 네트워크의 시각화 기능'을 강화한 법률지도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많이 들어본 법률서비스는 아마 '지급명령 헬프미(대표 박효연)'일 겁니다. 헬프미는 국내 변호사가 직접 창업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만으로도 지급명령 문서 작성 및 제출까지 해주는 서비스라고 합니다.
제109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경우 벌금과 징역은 병과(倂科)할 수 있다.
1.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향응 또는 그 밖의 이익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하고 또는 제3자에게 이를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하게 할 것을 약속하고 다음 각 목의 사건에 관하여 감정·대리·중재·화해·청탁·법률상담 또는 법률 관계 문서 작성, 그 밖의 법률사무를 취급하거나 이러한 행위를 알선한 자
가. 소송 사건, 비송 사건, 가사 조정 또는 심판 사건
나. 행정심판 또는 심사의 청구나 이의신청, 그 밖에 행정기관에 대한 불복신청 사건
다. 수사기관에서 취급 중인 수사 사건
라. 법령에 따라 설치된 조사기관에서 취급 중인 조사 사건
마. 그 밖에 일반의 법률사건
2. 제33조 또는 제34조(제57조, 제58조의16 또는 제58조의30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를 위반한 자
변호사법 제109조는 앞서 언급했던 변호사법 제34조와 더불어 비변호사의 법률사무를 금지하는 규정입니다. 변호사가 아닌 자의 유상 법률서비스를 금지하는 조항은 상당히 포괄적입니다. '변호사가 아닌 자', '유상으로'라는 부분은 명확하죠. 하지만 제109조 제1항의 "그 밖의 법률사무" 부분이 그 범위가 넓어 해석이 필요합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조문에서 규정한 ‘그 밖의 법률사무’는 법률상의 효과를 발생·변경·소멸시키는 사항의 처리와 법률상의 효과를 보전하거나 명확하게 하는 사항의 처리를 의미하는데, 직접적으로 법률상의 효과를 발생·변경·소멸·보전·명확화 하는 행위는 물론이고, 위 행위와 관련된 행위도 ‘그 밖의 법률사무’에 해당한다."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와 닿지 않죠? 공인중개와 관련해서 예를 들면, 공인중개사가 등기부를 보면서 기재되어있는 상황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저당권, 전세권 등 각 물권 간의 권리관계를 해석하고 분석하여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금품을 받는 것은 불법인 것이죠. 최근에는 SK주식회사 C&C와 법무법인 한결, 스테이션3이 부동산 O2O 플랫폼 다방에서 "인공지능(AI) 부동산 권리분석 시범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인공지능 법률서비스를 합법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변호사 또는 로펌이 이를 사용해야 합니다. 비변호사가 인공지능 법률서비스를 가지고 유상으로 영업을 한다면 현행법상 변호사법에 위반됩니다. 현재 IT 업계와 법조계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국회에서도 변호사법에 대한 개정안이 많이 나오고 있는 상태입니다. 고도의 공익성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변호사 자격의 특성상 현행법의 입법취지를 잘 살리면서 변화하는 기술과 인식의 변화에 어울리는 개정안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이처럼 국내 기업에서도 위와 같은 리컬 테크 업체가 속속 나타나고 있어 매우 반갑습니다만 이들이 어려움을 이유가 법 규제 말고도 또 있습니다. 바로 '판결문 원문 부족'입니다. 법률 자문, 소장 작성 등 모든 법률서비스는 조문과 판례의 분석 및 해석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대법원 판례는 어느 정도 외부에 공개되고 있지만, 1심이나 2심인 하급심 판례는 극히 일부만 공개되고 있습니다. 전체 데이터의 약 0.2% 수준. 아시다시피 머닝러닝, 딥러닝을 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빅데이터가 필수입니다. 전체 판결문의 0.2% 정도로는 신뢰 있는 결과물을 뽑아내기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국내 리걸 테크 업체의 관계자들도 머신러닝, 딥러닝 할 판결문이 부족한 현 상황이 리걸 테크 발전의 큰 걸림돌이라고 하고 있죠.
그런데 말이죠. 조금만 생각해보면 판결문에는 법리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개인의 지극히 내밀하고 민감한 정보들이 빼곡히 담겨 있습니다. 이름, 주소와 같은 직접적인 개인정보 뿐 아니라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도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결문을 공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개인정보들을 가리는 작업 즉, 비식별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그럼 비식별화 작업을 누가 해야 할까요? 방대한 법률 데이터 원문을 보유한 사법부? 아니면 이를 직접 이용하는 리걸 테크업체?
개인정보들을 비식별화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현재 사법부가 보유한 전자데이터 보유량은 데이터베이스화 된 것만 집계해도 100TB라고 합니다. 이는 A4 용지 350억 장, 신문으로 하면 23만 5000년 분량이라고 합니다. 비식별화 작업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만큼 이를 국민의 세금으로 하기보단 자본이 풍부한 기업이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럴 경우 개인정보가 그대로 해당 기업에 남을 수 있고 해당 기업들이 이를 토대로 프로파일링의 목적 등으로 얼마든지 악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비용 문제만으로 이를 기업에 넘길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만약 AI가 앞으로 계속 발전해 나간다면 '정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볼 수 있는 판결까지 가능할까요? 이 말을 딱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실제로 미국에서는 인공지능이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형사재판 피고인에게 중형을 선고한 지방법원의 판결을 대법원이 받아들인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AI가 최종 판단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판결의 주요 근거를 AI가 찾아낸 것이죠.
아주 간단한 지급명령사건(민사)이나 경범죄 사건(형사)의 경우에는 AI로도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사사건이나 소년 사건의 경우에는 기계적인 법리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객관적인 기록인 전과, 사실관계, 피해금액 등만으로는 제대로 된 판결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이혼 사건의 경우 양육권 문제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판사는 자녀의 복리와 미래를 위해 '후견적 입장'을 동시에 가지면서 판단을 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미국의 AI법률서비스로 유명한 "렉스 마키나"의 공동설립자인 조슈아 워커 역시 AI가 판사를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해서도 안된다고 하면서, 오히려 AI는 법률가들이 보다 더 나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은 만큼 리걸테크 추이를 늘 지켜보고 있는데요, 앞으로 변호사법 개정이나 AI기술 발전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