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삥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by wonderfulharu

학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중학생 때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고, 그날은 학원비 결제일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신용카드를 건네며 학원비를 결제해 오라고 말했다. 카드를 손에 쥔 순간,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잃어버리면 어쩌지, 누가 뺏어가면 어쩌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 불안을 말로 꺼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집을 나섰다.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학원비를 결제하고, 카드를 가방 깊숙이 넣었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혹시나 싶어 가방을 열어 카드를 다시 확인했다. 그대로 있는 걸 보고 안심하며, 평소보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귀갓길에 올랐다. 무사히 전달만 하면 모든 걱정이 사라질 것 같았다.


조급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나는 평소 다니던 큰길 대신 아파트 사이 좁은 지름길을 택했다. 성인 허리 높이의 나무 담이 이어진, 두 사람이 겨우 나란히 걸을 수 있을 만큼 좁고 조용한 길.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길 중간쯤, 반대편에서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두 명의 언니가 다가왔다. 비켜야 하나,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는 순간, 그들은 내 양팔을 거칠게 잡아챘다.


"조용히 해. 따라와."


숨도 쉴 수 없었다. 그대로 오래된 아파트 상가 화장실로 끌려갔다. 그들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더니, 나를 빈 칸 안에 밀어 넣고 같이 들어와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커터칼을 꺼내 드르륵 소리 내며 위협했고, 나는 말문을 잃었다. 울음 대신 눈물이 조용히 흘렀다.


그 언니들은 가방 안에서 신용카드를 발견하고 물었다.


"야, 비밀번호 대. 비밀번호 뭐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아빠가 힘들게 번 돈인데, 그냥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한 언니는 자신의 얼굴의 흉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된다. 말 안 하면."


칼끝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숨소리조차 삼킨 채, 나는 그저 눈물만 흘렸다. 나는 끝까지 비밀번호를 모른다 버텼고, 언니들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 운 좋은 줄 알아."


그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한참을 화장실 변기 앞에 쪼그려 앉아 울었다. 다리가 떨려 일어설 수 없었다. 겨우 몸을 가누고 집에 도착한 뒤, 엄마에게 모든 일을 털어놨다.

하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말뿐이었다.


"그러게 왜 다니던 길로 안 다니고 이상한 길로 가서 그런 일을 당해?"


나는 다시 울었다. 억울했다. 어떻게 지킨 돈인데. 겁에 질렸던 내 마음을 알아주는 대신, 꾸중만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스스로를 탓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되풀이하며, 혼자 무서움을 견뎌야 했다.


눈을 감으면, 아파트 상가 화장실, 그 칼끝, 두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틀 동안 침대에서 거의 나오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기대지 못한 채,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변했다. 누군가가 큰소리로 몰아붙이면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고, 몸이 얼어붙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순간에 갇혀 있었다.


그 일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충분히 무서워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스스로를 겁쟁이라 불렀다.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를 부끄러워했다. 그렇게, 나는 또 흔들렸다. 내 안에 남은 건, 자책과 불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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