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워킹맘 로그

"굉장히 심플해져 있는 나를 보게 되더라"

by Wonderfull

결혼 3년 차인 후배 부부를 초대해 식사를 하던 어느 금요일 저녁. 후배 와이프가 워킹맘은 힘들지 않냐며 자기는 주변에 키워 줄 사람도 마땅치 않고, 회사도 배려받기 어려워 최대한 임신을 미루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사실 지금이 일하기는 더 좋아. 예전에는 이것저것 다 덤비며 달려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모든 걸 일에 쏟을 수 없는 내 모습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것, 나중에 할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며 지내니깐 오히려 성과도 잘 나고, 더 행복하더라고. 한마디로 출산 이후에 난 좀 더 심플해졌다고나 할까?"


임신 전, 그러니깐 한참 욕심도 기회도 많다고 생각한 직장인 4~5년 차쯤에 나는 늘 피곤하고 힘들었다. 실력에 비해 욕심이 많았던 나는 성과지향적으로 일하며, 운동, 영어/중국어 공부, 업무 관련 동향 파악, 회식 등으로 하루를 잘게 잘게 썰어서 살았다. 결혼 후에도 일에 집중하기 위해 식탁에 쏟는 에너지를 최소화했다. 배달과 외식은 일상이었고, 남편도 일에 집중하는 내 모습을 지지해주었다. 일이 잘 되어가고 인정받을 때 나는 기뻤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아 모든 일상이 그대로 멈췄다.


첫째 임신 10개월 동안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할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많은 실망과 고민이 있었다. 체력적으로 따라가기도 벅찼고, 출산휴가 중의 공백을 핑계로 대형 프로젝트에서 제외당하는 것도 괜히 억울했다. 일에 대한 온도와 속도를 강제로 낮춰야 겨우 따라갈 수 있는 나의 한계에 마주하며 슬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출산 후 복직해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한계, 실망, 고민 등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없었다. 그날그날 성장하는 아이와 발맞추어 나아가고, 주어진 일들만 처리하기도 벅차 오히려 대형 프로젝트를 하게 될까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점점 내 삶에서 지금 당장 해야 할 것과 시간을 두고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행하는 일들이 익숙해졌다. 예를 들어, 둘째 출산휴가를 보내는 요즘 나는 체력 회복을 위한 것들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휴가 중이니깐 책도 보고 싶고, 중국어/영어도 좀 더 집중 적으로 하고 싶고, 아이들과 시간도 보내고 싶고, 늘어지게 잠도 자고 싶다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하기에 몸뚱이 한 개로는 부족하기에, 나는 체력증진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건강하고 지금 아이와 애착형성을 잘하면, 나머지는 시간을 두고 해 나갈 수 있다는 분명한 우선순위가 보였기 때문이다.


혈기왕성했던 20대의 나는 임신, 양육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하고 싶었고, 잘할 자신이 있었다. 모든 것에 에너지를 쏟았고 기분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하며 성과 없이 분주했다. 엄마가 된 지금은 단일화된 가치관으로 하나씩 차분히 해나가며 성과를 한 개씩 쌓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20대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 모든 건 수많은 나뭇가지라면 30대 워킹맘으로 지내며 심플한 가치관으로 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EP12. 워킹맘 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