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워킹맘 로그
"굉장히 심플해져 있는 나를 보게 되더라"
by Wonderfull Aug 12. 2021
결혼 3년 차인 후배 부부를 초대해 식사를 하던 어느 금요일 저녁. 후배 와이프가 워킹맘은 힘들지 않냐며 자기는 주변에 키워 줄 사람도 마땅치 않고, 회사도 배려받기 어려워 최대한 임신을 미루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사실 지금이 일하기는 더 좋아. 예전에는 이것저것 다 덤비며 달려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모든 걸 일에 쏟을 수 없는 내 모습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것, 나중에 할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며 지내니깐 오히려 성과도 잘 나고, 더 행복하더라고. 한마디로 출산 이후에 난 좀 더 심플해졌다고나 할까?"
임신 전, 그러니깐 한참 욕심도 기회도 많다고 생각한 직장인 4~5년 차쯤에 나는 늘 피곤하고 힘들었다. 실력에 비해 욕심이 많았던 나는 성과지향적으로 일하며, 운동, 영어/중국어 공부, 업무 관련 동향 파악, 회식 등으로 하루를 잘게 잘게 썰어서 살았다. 결혼 후에도 일에 집중하기 위해 식탁에 쏟는 에너지를 최소화했다. 배달과 외식은 일상이었고, 남편도 일에 집중하는 내 모습을 지지해주었다. 일이 잘 되어가고 인정받을 때 나는 기뻤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아 모든 일상이 그대로 멈췄다.
첫째 임신 10개월 동안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할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많은 실망과 고민이 있었다. 체력적으로 따라가기도 벅찼고, 출산휴가 중의 공백을 핑계로 대형 프로젝트에서 제외당하는 것도 괜히 억울했다. 일에 대한 온도와 속도를 강제로 낮춰야 겨우 따라갈 수 있는 나의 한계에 마주하며 슬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출산 후 복직해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한계, 실망, 고민 등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없었다. 그날그날 성장하는 아이와 발맞추어 나아가고, 주어진 일들만 처리하기도 벅차 오히려 대형 프로젝트를 하게 될까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점점 내 삶에서 지금 당장 해야 할 것과 시간을 두고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행하는 일들이 익숙해졌다. 예를 들어, 둘째 출산휴가를 보내는 요즘 나는 체력 회복을 위한 것들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휴가 중이니깐 책도 보고 싶고, 중국어/영어도 좀 더 집중 적으로 하고 싶고, 아이들과 시간도 보내고 싶고, 늘어지게 잠도 자고 싶다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하기에 몸뚱이 한 개로는 부족하기에, 나는 체력증진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건강하고 지금 아이와 애착형성을 잘하면, 나머지는 시간을 두고 해 나갈 수 있다는 분명한 우선순위가 보였기 때문이다.
혈기왕성했던 20대의 나는 임신, 양육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하고 싶었고, 잘할 자신이 있었다. 모든 것에 에너지를 쏟았고 기분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하며 성과 없이 분주했다. 엄마가 된 지금은 단일화된 가치관으로 하나씩 차분히 해나가며 성과를 한 개씩 쌓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20대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 모든 건 수많은 나뭇가지라면 30대 워킹맘으로 지내며 심플한 가치관으로 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