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잠자리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 거려 본다. 네이버 기사 타이틀을 훑어보며 서핑하던 중, 눈길을 끈 기사가 있다. 비혼, 딩크 하세요라고 한 초등교사의 글이 화제라고 한다. 초등교사의 눈으로 목격한 워킹맘들의 사연이 너무 딱해서 차라리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표현이었다. 육아휴직, 어린이집, 유치원으로 워킹맘을 연명하던 엄마들이 점심 전에 하교하는 초등학교를 입학하며 리얼 좌절에 부딪혀 희생의 아이콘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방과 후 돌봄 수업의 낮은 퀄리티, 태권도 학원의 픽업에 기대어 연명하는 이야기, 너무 친절한(?) 조부모님의 양육법에 결국 무너진다는 학부모 워킹맘. 약 4년 정도 후에 일어날 나의 모습이려나? 하며 씁쓸함으로 핸드폰을 끄고 잠이 들었다.
허둥지둥 첫째를 등원시키고 백일을 바라보는 둘째를 데리고 산책을 하며 생각에 잠겨 본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밤 기사에서 처럼 희생의 아이콘이 되어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고 있을까? 돌봄 수업이 지루한데 왜 자꾸 보내냐고 묻는 아이를 달래며 뒤로 눈물을 훔치고 있을까? 두 모습 모두 따라가고 싶지 않은데 나의 선택지는 그것뿐일까? 생각의 꼬리를 물며 '초등학교 하교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른 걸까, 나는 어릴 때 하교하고 뭐했더라?, 피아노 학원 갔다가 동네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엄마, 아빠가 왔었건 것도 같고..'
생각의 종결은 엄마의 역할이 너무 많다는 것에 머물렀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의 하루 일과표를 짜서 그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고, 흉흉해진 사회로부터 아이도 지켜야 하고,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가 창궐하는 푸드 산업으로부터 건강식도 챙겨주어야 한다. 최소한 사춘기가 도래하여 엄마의 의지로 컨트롤이 되지 않을 때까지 엄마는 그렇게 아이와 엄마의 인생을 저울질하다 보니 힘들고 지치고 무너지고 결과적으로 아이와의 관계도 건강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조금 슬퍼졌다. 아이가 스스로 시간을 쓸 수 있도록 엄마가 기다려 주는 것은 안 될까? 스스로 멍 때리기도 하고, 다양한 성향과 취미를 가진 친구들을 보며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 줄 수는 없을까? 그 기다림 속에서 사회적으로 안전하지 못할 수 도 있다는 불안감, 바른 가치관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는 없을까? 독립적인 아이, 자녀에게 집착 혹은 무관심하지 않은 엄마로 각자의 위치에서 함께 성장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엄마라는 짐을 사회와 가족원에게 나눌 수 있다면, 희생이 아닌 의무와 책임 울타리 안에서 가정을 지켜나 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주는 행복함은 무척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혼과 딩크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모든 짐들은 버거우니깐. 부쩍 늘어난 임신, 출산 장려 지원책들만큼 엄마의 무게를 함께 해줄 사회를 상상하며 오늘의 생각을 (기분이라도 좋게)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