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워킹맘 로그

"대화가 줄어드는 부부"

by Wonderfull

늦은 저녁 잠자리에 누워 누군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를 듣는다. 번호를 누르는 속도로 남편이 귀가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 남편을 맞이하고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떠들기에 바빴던 과거를 회상하며 남편이 안방으로 들어오길 기다린다. 침대에 누워 '왔어? 하루 종일 고생했네'라는 짧은 인사를 건넨다. 남편의 대답은 '어' 혹은 '응' 쯤인 것 같고, 식탁에 차려진 간단한 과일을 먹고 나름의 휴식시간을 즐기러 간다. 조용한 집안이 그의 소리로 잔잔하게 채워지는 것을 들으며 잠에 든다.


그의 하루 일과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지낸 이야기를 해주고도 싶지만 새벽 2-3시쯤 '엄마~'를 찾을 두 돌 첫째와 새벽 5시면 기상하는 5개월 둘째를 보듬으며 하루를 시작하려니 세상 다 귀찮아진다. 남편 또한 불혹의 나이에 회사생활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단답형의 대답으로 시작하는 그의 기분을 풀고 풀어야 '진짜'대화를 할 수 있으니 시작하지 않게 된다. 결혼하고 그와의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의 성향은 어떠한지, 어떤 주제를 좋아하는지를 차차 알게 되었고, 나름 남편과 대화하는 방법에 능숙하다 생각될 때쯤 나는 방전되어 버렸다.


어느 날은 모처럼 주말 일정을 맞춰야 해서 남편과의 대화가 길어졌다. 지방에 있는 친정에 가는 일정을 이야기하는데, 오고 가는 '장거리 여행'과 친정에서 펼쳐질 '독박 육아'가 떠오르니 내 말투가 곱지 않다. 결국 남편은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라고 묻는다. 사실 남편 말이 다 맞았기에 수긍하고, 고맙다며, 역시 우리 집의 기둥이라며 궁둥이 팡팡쯤되는 칭찬을 해줘야 맞는 타이밍이라는 걸 알지만 그냥 맥이 빠진다. 그래서 또 그렇게 그냥 입을 닫았다.


사회 초년생이던 20대 중반, 여사원을 가리키며 '얘는 내가 스타벅스에 무슨 음료를 마시는지 아는데, 우리 와이프는 몰라'라고 말하던 과장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그 모습이 너무 충격이어서 미래의 내 남편이 저런 모습이지 않도록 노력해야지!라고 다짐했었는데, 아마도 그 다짐은 넣어두어야 할 것 같다. 가정 밖의 많은 관계들 속에서 남편 스스로가 선을 지키고 잘 살고 있을 것이라 믿어야 할 듯하다. 그의 일상을 코치코치 물어보는 아내가 아니라, 나 또한 가정 밖에서 여전히 매력 있어서 그 남자가 궁금해 입을 열도록 해야겠다.


우리는 서로 지쳤다. 직장과 육아 사이에 서로 위로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다. 줄 수 있는 여유와 자존감을 삶의 어딘가에서 각자가 충전하고 다시 마주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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