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 워킹맘 로그

박차장 vs.지우엄마

by Wonderfull

누구나 그렇듯 우리는 다양한 역할을 가지고 살아간다. 30 중반인 나는 누군가의 딸, 아내, 며느리, 엄마, 친구, 언니, 동생, 손녀, 직장인, 시민으로 살아간다. 각 역할들의 소소한 책임과 성취가 어우러지면서 내가 빚어지는 성찰과 성장의 과정이 반복되는 게 삶인 것 같다. 요즘의 나는 유독 두 개의 역할을 저울질하고, 마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잃어버리는 다른 하나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다. 그건 바로 지우엄마로 지내는 것과 박차장의 직장인 모드다.


하루가 너무 분주하다. 아침식사 준비를 시작하며 흘낏 본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첫째 지우의 손을 붙잡고 등원을 완료하니 9시가 넘어간다. 잠시 재택근무를 하다 보면 아침 낮잠에서 부스스 깬 9개월 된 주안이가 일어나고 그렇게 다시 한번 등원하면 10시 반이 된다. 그리고 박차장의 하루가 시작된다. 후딱후딱 한다고 힘을 써보지만 미팅 2~3개와 겨우 10+개의 메일을 핸들링하면 4시, 하원 시간이 된다. 하루 종일 실내에 있었을 아이들과 동네 놀이터, 마트를 누비며 세상 놀이를 하고 목욕, 저년 식사, 막바지 저녁 육아를 진행하며 틈틈이 박차장모드 전화를 받으니 어느덧 8-9시. 그 쯔음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아이들을 맞기고 그날의 박차장 업무를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노트북은 새벽 1-2시가 돼서야 꺼지고, 남은 설거지, 빨래 널기, 아침식사 준비물을 꺼내 놓고서야 잠에 든다.


이렇게 보낸 하루 뒤에 찾아오는 엄마로서의 부족함과 늘 늦은 답장과 미안함이 전제되는 박차장 모드에 피로와 위축감이 쌓인다. 그리고 그렇게 가정을 꾸린 것에 대한 후회와 차라리 이대로 쓰러져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반복하며 점점 더 화가 많은 엄마, 예민한 박 차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이들이 좀 크면 괜찮아진다는 말들이 위로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의 삶에 관심과 사랑을 주고 싶은 엄마이고, 회사에서도 월급충이고 싶지는 않으니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불안함 때문일 것 같다.


그렇게 욕심쟁이 워킹맘으로 끙끙거리던 중 마음에 남는 글귀가 있다. 'Driving without direction is no where (방향성 없는 발걸음은 아무 곳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우연하 방문한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을 걸으며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혹은 머리가 선택한 방향(엄마)을 등지고 몸을 반대방향(박차장)으로 움직이려 해서 탈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엄마라는 사실을 다시 새겨본다. 어느 순간 나의 행동이 화가 많은 엄마로 전락하고 있다면 10~20년 안에 끝날 직장인 모드를 조금 더 일찍 정리할 수 있다는 분명한 우선순위를 두고 다시 일어서는 한 주가 되어야겠다.


때마침 회사일은 혼자 잘해도 되는 막내시절은 다 갔다. 엄마로서 길러지는 인내심과 육아/집안일이 도움을 주시는 선생님들을 써보며 길러지는 management skills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엄마로서 한 발짝 다가가고 박차장은 한 발짝 물러서서 지나가야 하는 시기라고 토닥이며, 한 주도 파이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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