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 워킹맘 로그

15만 원 뮤지컬 티켓 vs. 집에서 탕수육 만들어 먹기

by Wonderfull

12월 마지막 주 어린이집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일주일 방학이고, 나에게는 일주일 휴가인 시간동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며 스케줄을 짰다. 세 돌이 지난 지우는 새로운 활동, 장소, 자극에 대한 욕구가 있었고, 18개월의 둘째는 스스로 뛰어서 걸어서 점프해서 누릴 수 있게 된 세상이 신기한 시점이다. 나에게는 모처럼 가지는 일주일의 휴가이지만 올 한 해 해야 할 일들 중 아직 미처 해결하지 못해 며칠은 야근이 필요하고, 자동차 정비, 은행업무 등을 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야 했다. 약간 피곤했지만 국립중앙박물관 내의 어린이박물관에서부터 시작한 월요일 하루는 잘 넘어갔다. 감기약 보충을 위한 병원방문, 내부세차를 포함 한 차 정비, 마트 장보기, 잠들기 전까지 새로 장만한 교구로 재미있게 놀았다. 다음 날 뮤지컬 공연은 어머님도 함께하고자 잠들기 전 전화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코멘트는 '지우야~ 내일 할머니랑 탕수육 만들어 먹자~'. 아, 망했다.


어머님과 나는 둘 다 대장스타일이다. 계획 한 일대로 되지 않으면 굉장한 실망감과 무시(?) 받고 있다는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런 어머님은 월요일 아침부터 방문하셔서 일주일 중에 한 번은 집에서 탕수육을 해서 먹으면서 진득하게 집에 있는 날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한 주간의 외출 계획이 있던 나는 당황하며 상대적으로 조정이 가능한 목, 금쯤으로 이야기했지만, 본인 스케줄에 의해 화요일로 정해둔 어머님 귀에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우가 뮤지컬 보러 가고 싶다고 해서 아침 대화는 뮤지컬을 볼 것처럼 마무리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아마도 어머님은 하루 종일 탕수육 재료와 어떻게 해서 먹을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보냈을 테고, 저녁 전화에서 쐐기를 밖으신 걸 거다. 지난 3년 동안 어머님께 육아를 위탁하며 많은 고비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육아에 대한 모든 정권은 어머님께 위임(?)함으로 잘 극복해 왔다. 이번에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머님이 하자는 대로 나머지를 다 재정비하면 내 마음의 위기를 제외하고 가정의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어머님이 오시면 다시 한번 어필해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 끝까지 티켓을 취소하지 않았다.


아침이 되었고 어떤 말로 이야기를 꺼낼지 굉장히 고민하다가 아주 가볍고 지나가 듯 '어머님 힘드시니깐 오늘은 뮤지컬 보러 가요'라고 했지만, 단칼에 날아오는 '탕수육 만들어 먹기로 했잖아?' 대답이었다. 내가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이 집 대장님과는 어차피 대화가 안 된다는 걸, 그녀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스케줄에 어차피 맞춰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왜 바보처럼 어젯밤에 취소버튼을 누르지 못했을까? 여기서 또 표정 안 좋아지고 집착하고 짜증내면, 뮤지컬도 못 보고, 고부갈등으로 싸움 나는 하루가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힘겹게 마음을 붙잡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마트로 향했다. 재료 쇼핑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귀가 닳도록 이야기하셨으니, 오늘도 언제나 그렇듯 늘 모든 정권을 위임하는 워킹맘모드로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하자는 대로 무조건 따르는 모드로 가자는 결론이었다.


그렇게 마치 방학/휴가가 아니라 마치 일하는 영혼 빠진 엄마처럼 하루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뮤지컬 같은 화려함과 새로움은 없었지만 하루 종일 주방에서 맛있고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차들 속에 뒤엉키고, 시간에 쫓아가는 조급함 없이, 뒹굴거리며 좋아하는 장난감과 책을 보는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참 인정하기 싫지만 어머님의 계획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노하우가 담겨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의 계획에는 워킹맘이라는 조급함, 그동안 못한 모든 걸 꾹꾹 눌러 담아 어떻게든 하고자 하는 나의 시간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오늘은 이 모든 시간표를 멈춰본다. 올 한 해를 여유롭게 되돌아본다. 신년에 계획 중인 첫째 아이의 것들을 생각하며, 혹시 내가 나의 시계와 조급함에 지우를 끼워 넣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이 정도면 15만 원은 수강료였던 걸로 넣어두고 다음에는 좀 더 여유 있는 워킹맘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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