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 워킹맘 로그

1주일의 출장, 애들 버리고 도망간 엄마

by Wonderfull

올 해가 시작되면서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을 보내던 4년 차 워킹맘 라이프에 해외출장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3박 4일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이었다. 38개월, 20개월 아이, 플러스 남편 식사까지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주신 지친 어머님의 마음을 풀어드려야 하는 날이다. 재택근무를 하며 틈틈이 어머님의 푸념도 들어드리고, 공감하고, 미안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며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마인드로 하루를 시작했다. "환갑 넘어 이게 무슨 짓인지..."라고 시작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 새끼 잘 키워 이제 좀 살만한가 싶었는데. 정말 힘들다."에 도달하고, 점점 거세지는 언어들이 추가되며, "며느리가 자식 버리고 도망갈까 무서워서 아들 결혼을 반대했는데, 현실로 다가와서 너무 힘들다."로 정점을 찍고 조금씩 완화된 표현과 오늘을 살아가는 화제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지나간 대화들은 입 밖으로 다시 표현하지 않지만 나의 마음속에 박혀있다. 나? 애버리고 도망간 엄마? 서로가 정의하는 '엄마'가 다르기도 하고, 최근 분리불안의 출장을 기점으로 분리불안의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100% 틀린 말은 아닌 듯해서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화가 난다는 표현보다는 조금 벅차다는 기분? 정말 일이든 육아든 죽도 밥도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냥 다 그만하고 싶다는 좌절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래서 다들 결국 직장을 그만두는구나라는 생각과 어차피 그만둘 거 지금부터 그만둘까?를 고민하던 나에게 남편은 38개월 첫째에게는 처음으로 엄마의 부재를 겪으니 조금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들었다. 듣고 보니 특히 첫째가 유난히 나를 찾는 것 같기도 하고, 금세 내가 없어질까 두려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과 이 모든 상황이 어머님과 남편을 힘들게 하고 있구나라는 퍼즐이 맞춰졌다. 그렇게 복잡해하는 마음을 접고, 첫째에게 엄마가 출장에 가면 무슨 일을 하는지, 엄마가 몇 밤 자고 오는지, 엄마가 없는 동안 할머니, 아빠랑 잘 지내면서 돌아오는 토요일에 동물원에 가는 걸 약속하니 조금씩 개선되어 가는 듯했다.


1월부터 한 달에 한번 주기로 가고 있는 출장릴레이의 세 번째는 3월 둘째 주에 시작되었다. 38개월, 20개월 아이가 어렵게 적응해서 잘 다니던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3월 2일부터 새로운 기관에서 적응해야 했기에 너무나 피하고 싶었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이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전 적응의 시작이 순조롭지 않았던 3일을 보내고 나니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더불어 나의 출장 기간 동안 백업 역할을 많이 해줬던 남편은 과도한 업무량과 힘들어하는 가족구성원을 보며 출장 전날 저녁 상사에게 퇴사의사를 표명했다. 아침 7시 30분 비행기에 오르며 마음이 이상했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 집안의 모든 상황을 뒤로하고 출장지에서 벌어질 전투를 준비하며 그렇게 뒤숭숭하게 시작했다. 출장 기간 동안 역시나 아이들은 등원을 거부해 3박 4일 동안 할머니와 지냈고, 퇴사를 선언한 남편이 모처럼 칼퇴하거나 조기퇴근하며 육아를 서포트를 했다.


세 번째 출장을 마치고 와서는 조금 다른 유형의 어머님의 잔소리가 있었다. 도망간 엄마라는 표현보다는 이것저것 엄마로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리마인드가 계속되었다. 아마도 새 학기 적응에 집중, 협업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네 번째 출장을 앞둔 한 주가 시작 된다. 처음과는 달리 출장 일수를 2박 3일로 줄였고, 냉장고에 채워 넣는 것들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 첫째는 조금씩 엄마의 출장을 이해하고, 엄마를 찾던 빈도도 지극히 낮아졌다. 새로운 기관에 적응이 더욱 힘들고 오래 걸렸던 둘째는 며칠 전부터 드디어 웃으며 교실로 들어가고, 낮잠 자고 오후에 하원하는 정상 스케줄이 되었다. 퇴사를 선언했던 남편은 1달이 지나 다시 한번 면담을 했다고 한다. 남편의 퇴사를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은 상사는 이런저런 달콤한 유혹을 하는 듯하고, 남편은 지칠 대로 지쳐 세상사 모든 전쟁에 휴전을 선언한 듯한 모양새다.


수목금으로 진행될 이번 출장은 그래도 조금은 성숙한 모습으로 가족원들이 성장해 있길 바라보는 밤이다. 나의 부재가 집안에 주는 역할이 큰 건 그동안 나의 희생이 컸다는 반증이라는 생각으로 뾰로통했던 시간도 있었고, 집 나간 엄마라는 표현에 퇴사를 고민하기도 하고, 제법 큰 첫째는 좀 더 디테일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변화를 인지하기도 했다. 일만 한다고 몰아붙이던 남편도 삶의 육아 비중을 높여보고 그 간 워킹맘으로 지내왔던 나의 노고를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듯했다. 많이 지치셨던 어머님은 건전한 마사지샵의 정기권과 금요일 오후 4시부터는 가능하면 조기퇴근이 가능하도록 일을 조정하는 나의 모습에 만족감을 표현하셨다. 엄마 없는 동안 울지 않고 유치원에 가면, 다가오는 토요일에는 서울랜드를 가자고 약속한 밤. 이 모든 한주가 무사히 그리고 굉장히 일상적으로 지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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