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 워킹맘 로그

태도도 실력인가요?

by Wonderfull

희망퇴직, 권고사직, 조직변화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었던 지난 두 달이 지났다. 회사가 공격적으로 성장하려는 움직임을 멈추고, 있는 자산을 정리하고 합병하여 가볍고 탄탄하게 다져가는 일을 시작했다. 글로벌 회사의 한국지사인 우리는 많은 지원 부서 리더가 정리되었고 아시아 혹은 북아시아 단위로 묶이면서 더 작고, 젊은 조직이 되었다. 현장부서도 수익구조에 따라 폐지, 합병이 진행되었고, 한국의 총괄도 전략/경제 전문가에서 현장 전문가로 변화되었다. 매주 업데이트 되던 변화 속에 누군가는 뜻하지 않게 부서이동이나 사직을 권고받았고, 일부는 회사 방향과 본인의 지향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체 사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없어지고, 위아래로 포지션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우리 부서의 1명 대리가 과장으로 진급했고, 나머지 2명의 대리는 사직을 했다. 세 명 모두 해외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해서 센스 있게 일도 잘하고 똑똑했는데, 그중 가장 심플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던 친구는 진급을 했고, 부서장 몰래 다른 팀 이직을 시도했던 친구와 본인 포지션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친구가 사직서를 냈다. 가슴에 품었던 사직서를 1명의 친구 승진 소식이 발표되었던 날 제출하였고, 회사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저런 친구를 승진했다는 불만을 표출하며 그렇게 떠났다. 그렇게 떠난 자리는 금세 똑소리 나게 일하던 계약직 직원들로 채워졌고, 요즘 친구들 모두가 똑똑해서인지 떠난이들의 아쉬움보다는 조직적으로 함께하기 어려웠던 그 태도만 가십거리로 남았다.


생각해 보니 나의 직장에서 태도는 엄마가 되면서 180도 달라졌다. 아마도 나의 직장생활관은 첫째 아이 출산휴가 전편과 후편으로 완전히 분리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공사현장에서 인턴을 마치고, 중공업 설계팀에서 일을 시작했던 나는 까라면 까는 문화에 익숙했고, 다른 팀들과 싸워서 우리 것을 지켜나가기 위한 파이터 역할을 주로 했다.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했을 땐, 사람들로부터 대화가 힘든 사람, 말이 안 통하는 사람, 더 나아가 피하고 싶은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그런 피드백들을 통해 말투도 바꿔보고 말을 아끼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근본적으로 싸워서 이기자라고 생각했던 마인드, 상대방의 역량을 내려다보며 전체적인 조직의 속도가 너무 느려서 답답하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그런 나의 오만함은 첫 4개월의 출산휴가 복직 후, 사라졌다. 아니 사실 깨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직장에 내가 가진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수 없는 엄마가 되어보니 조직에서 함께 간다는 것, 나의 빈자리를 메꾸어주는 주변 사람이 있다는 것, 다 같이 움직이는 느린 속도가 모두를 위해 베스트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졌던 모든 오만함을 내려놓고, 파이터이기보다는 함께 하기 위해 상대방의 강점을 찾아내고, 이해하고, 함께하는 과정의 관계를 만드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렇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던 직장생활을 함께 발맞추어 나갈 수 있는 직장동료가 되는 과정으로 다시 시작하는 워킹맘이 되었다.


며칠 전 일 년에 한두 번 이야기하는 빅보스가 나에게 늘 생기는 변수와 어려움에 항상 내가 그 자리에서 벼텨주고 지켜줘서 고맙다는 칭찬과 앞으로 더 많은 책임과 기회를 줄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나의 커리어를 향한 그의 포부를 이야기했다. 30여 년 이 바닥에서 조직을 키우며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던 그는 아마도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관계하는 사람'을 높이 사는 듯했다. 아마도 4년 전 워킹맘이 되며 내가 절실히 깨달았던 건 나는 A to Z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중 일부인 H to J 정도만 할 수 있고 그걸 충실히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그냥 이 자리를 지키고 묵묵히 해낼 수 있도록 앞 단계에서 잘 만들어주고, 나 다음단계에서 잘 완성해서 성과로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내 자리에 충실한 그런 모습이 워킹맘으로도 살아남았던 태도라는 무기가 준 비결이었던 것 같다.


나름 마음과 열정을 줬던 두 명의 대리의 사직서 소식은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고, 뒤로 듣는 그 가십 속에서의 그들의 태도를 들으며 어쩌면 모두가 똑똑한 이 세상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태도라는 걸 마음속에 새겨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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