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 워킹맘 로그
나만 없으면 행복할 것 같은 가정
by Wonderfull Oct 15. 2023
가까운 지인의 이혼 결정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이혼이 만연하긴 해도 신혼 때부터 가깝게 교류하며 지내던 커플의 헤어짐 소식을 듣는 건 마음이 아팠다. 이번에 좀 더 특별히 마음이 쓰였던 건, 며칠 동안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차면서 여러모로 집안에 짜증과 분노만 표출했던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은 제 발 저림이기도 했다.
올여름은 체력적으로 부쩍 힘들어진 어머님의 잔소리와 짜증을 받아내는 게 너무 힘들었던 시기였다. 한 번은 하루가 너무 길다고 느껴질 만큼 힘들었던 몸으로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와 어머님과 육아 바통 터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어머님의 잔소리와 짜증에 꾹꾹 눌러왔던 불만이 폭발할 것 같아 조용히 방에 들어가 아이들과 블록 놀이는 시작했다. 스위트한 말 한마디 없는 나에게 기분이 상하셨던 어머님은 그대로 곧장 귀가하셨고, 한두 시간 뒤 나는 전화를 걸어 무례했던 내 모습을 사과했다. 다음 날 출근하는 일상을 살려면 어머님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기분을 맞춰드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은 그다지 미안하지 않고 아직도 불만이 가득 찼지만 최대한 그런 기색을 감추고 미안함을 연기하며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을 마주할 준비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비슷한 일들이 여러 번 있어왔는데, 그날따라 어머님은 생각이 많아지셨던 것 같다. 혹은 내가 불편함을 감추는데 실패했었을 수도 있다. 남편이 먼저 출근을 했고 어머님이 오셔서 한참 등원 준비와 집안정리를 하던 아침, 본인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며 자기는 그만해야겠다 선언하시고는 돌보미를 알아보라고 하셨다. 어머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웃어넘겼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는 '어머님이 저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니깐 제가 나갈게요. 인생의 전부가 손녀들인 어머님과 바깥일로 바쁘신 아드님(내 남편)과 예쁘게 사세요'라는 코멘트를 꾹꾹 누르고 그렇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렇게 시작한 '도망간 엄마의 삶'에 대한 상상은 더 나아가 어머님과 같은 결을 가진 아들인 남편도, 할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아이들도 모두 어머님과 닮아있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만 이방인이니깐 나가면 되겠네라며 내가 나가야 할 이유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아마 그런 상상과 계획 중에 들은 이혼소식이라서 사뭇 채찍질같이 들렸던 듯하다.
사실 어머님은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서포터스이시다. 1남 2녀 중 둘째인 나는 늘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혼자 끙끙거리며 주어진 것들을 외롭게 감당해 왔다. 결혼과 출산보다는 비혼주의로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가져가길 소망해 왔다. 어쩌다 보니 결혼을 했고 두 번의 출산과 육아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커리어 빌드업을 막는 듯한 상황에 우울증 비슷한 게 오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내 삶의 한줄기 빛처럼 나타나신 어머님은 육아 동역자를 넘어 사실상 우리 가정의 왕엄마로 자리해 주셨다. 어머님과의 소통은 회사에서 나이를 초월한 소통능력을 주기도 했다. 그만하고 싶은 이 감정은 아마도 진짜어른으로 가는 성장통이라 토닥이며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남편이 밥상에 만족해하는 모습, 내 커리어를 만들어준 일등공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눈을 딱 감는 아주 일상적인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