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에 답하며 불편한 것들이 괜찮은 게 되는 삶
참 많은 것들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 배우자로 같이 살아가는 남편, 뱃속에서 나온 자녀, 일을 주고받는 상사와 부하직원, 시어머님까지도 참 내 생각과 많이 다르게 상황을 이해하거나 결론에 도달한다. 한 발자국 멀리 본다면 앞에 차도 없는데 계속 브레이크 등을 사이키 조명처럼 밟는 앞 차, 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특유의 퀴퀴한 향을 풍기는 대각선 파티션에서 일하는 대리님, 시간이 늘 부족한 전쟁 같은 일터에서 결론이 뒤에 있는 화법을 구사하는 옆 부서 부장님까지 세상의 거의 모든 게 내 맘과 같지 않다. 대문 밖에서 힘들었기에 조금 덜 외출하고 견뎌왔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눈만 뜨면 시작되는 불편함과 살아내기 위해 나는 '왜'를 묻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제일 나를 반기는 건 두 집 살이에 진이 빠진 시어머님이다. 다녀왔습니다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총알처럼 쌓아둔 '잔'소리가 시작된다. 식탁 차림을 위한 분주한 부름, 집에 부족한 양념과 냉장고에 필요한 것들, 아이들 옷장에 대한 코멘트, 아버님을 향한 묵혀든 짜증, 아들에게 오는 서운함, 늙고 아파져 가는 몸에 대한 서러움 등을 두어 시간 정도 풀어내시고 슬슬 채비를 하시고 퇴근하신다. 도대체 '왜? 말 못 해서 한 맺힌 사람처럼 나만 오면 말씀이 많아지실까? 힘드시니깐 나 오자마자 집에 가셔서 쉬는 게 더 나은 거 아닌가?' 그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9할이 엄마모드인 어머님에게 일이 9 할인 며느리가 엄마로도 잘 서길 바라는 안타까움과 애정으로 주어진 시간에 속성과외를 하시는 것일 거고, 하루 종일 라디오를 벗 삼아 집안일을 하시고 아이들과 역할 놀이도 하며 계시다가 모처럼 어른 성인을 만나니 눌려있던 대화 욕구가 표출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왜왜왜를 탐구하며 불편하지만 그녀를 이해해 간다.
작년에 프로젝트팀으로 발령받아 움직이면서 기존 자리에 대한 채용이 1.5년째 진행 중이다. 어렵게 채용했던 대기업 8-9년 경력의 유능한 인재는 3개월의 수습기간을 통과하지 못했다. 뭐 하나 하려 해도 회사 내에 시스템과 매뉴얼이 없어서 힘들다고 했다, 이슈가 있어 스스로 답을 정해야 할 때마다 상대방을 비방하고 분노하기에 급급했기에 일들이 해결되지 못했다. 얼마 전에 면접 봤던 또 다른 대기업 출신의 경력자는 이딴 면접이 다 있냐며 인사팀으로 메일을 보내왔다. 프로젝트 경험, 과거에 팀원들을 평가하고 관리했던 경험 등 과거 경력을 묻는 면접에서 시종일관 기밀사항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하여 결국 평가불가로 면접을 중단했던 것에 대한 불만인 듯하다. 회사=기밀사항으로 10여 년을 살았으니 질문의 요지가 '너라는 사람이 일하는 방식, 사고를 말해주세요.'라고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왜? 대기업 경력자와는 미스매칭이 될까?'아마도 대기업에서는 거대한 일 중 특정 업무를 하는 것이 비해 내가 일하는 외국계 기업은 작은 규모이지만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를 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인 듯하다. 많은 조직원들 사이에서 주어진 일만 잘해도 성과가 잘 나오는 대기업과 업무 범위가 넓고 얇아 정해진 큰 가이드 안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 성과를 내야 하는 외국계 기업에 왜라는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며 또 한 번 그렇게 살아낸다.
얼마 전 둘째 어린이집 부모 상담 일지를 작성하며 아이에 대한 부모의 생각을 적어내려 갔다. '낯선 환경과 사람, 새로운 경험에 낯을 많이 가려 안 하려는 성향입니다. 다양한 시도를 자연스럽게 하고, 성취하는 기쁨을 경험하며 용기 낼 수 있도록 지도해 주세요. 사용하는 언어가 굉장히 직설적이고 노골 적라서 그때 그때 예쁘게 표현하도록 지도해 주세요. 언니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언니가 아니라 스스로의 세상을 잘 만들어갈 수 있도록 북돋아주세요.' 세 가지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왜 그럴까에 대한 질문들 해본다. 아마도 둘째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편함으로 대부분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니, 그걸 달래는 양육자들의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따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첫째에게는 나근나근하여도 긍정적인 피드백이 가는 것들을 지켜보며 상대적으로 나약해진 스스로를 마주하는 중인 것 같다. 그렇구나, 둘째에게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는 걸 인지하고 느리지만 조금씩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물어본 '왜'라는 질문에 답해본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게 삶의 9할이라는 현실 속에서 왜?라고 물으며 하나씩 하나씩 그것들을 이해해 본다. 그렇게 나는 어른으로 여물어 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