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선택, 퇴사가 아닌 진급.
8월 1일 이사로 진급했다. 두 번의 출산과 점차 사람으로 커가는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하고 버티며 바라왔던 그 고지에 첫발을 내딛었다. 말단 일 수록 주어진 일들에 몸과 시간을 투자하며 성과를 만들어가야 한다.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결정이지만 조직에서 시키기는 일이기도 하고, 굳이 따지자면 내 책임도 아니니 몸과 시간을 갈고 갈아서 만들어 낸다. 반대로 상위 포지션으로 갈수록 변화무쌍한 경영 환경에 내 조직의 그림을 맞추고, 조직원들의 역량을 고민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인력 관리를 통해 성과를 만들어낸다. 다른 말로 하면, 하위 포지션일수록 책임감은 작지만 몸과 시간에 대한 자유도가 낮고, 상위 포지션일수록 높은 책임감과 시간에 대한 자유도가 많아진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많은 학교 행사와 방학을 지혜롭게 보내고, 언제 아프고, 불려 갈지 모르는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시간에 대한 유연함이다. 그래서 나는 진급을 선택했다.
출산하고 어린이집 가기까지 1-2년의 출산육아휴직이 만연한 사회에서 첫째는 4개월, 둘째는 6개월의 휴직기를 가지고 복직했다. 적은 업무 공백 덕분에 하던 일, 사람들과 계속하며 자연스럽게 4-5시 퇴근, 9시 이후에 집에서 잔업하는 패턴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어디선가 저녁 패밀리 타임을 보내고 야근하는 여성 ceo의 영상을 기억하며, 내 삶에 그 패턴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9시부터 하는 잔업은 새벽이 돼서야 끝나기도 했고, 졸면서 작업했던 것들에서 수많은 실수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늘 피곤했고, 좋아하던 예능과 운동, 모임은 그림의 떡이 되었다. 머릿속은 온통 일과 육아로 꽉 차서 일반적인 사람들과 대화의 소재가 없어서 관계가 어려웠다. 그렇게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지만 9시 전에 취침하는 건강한 아이들과 성실히(?) 일하는 회사원으로 하루를 또 하루라는 챗바퀴를 달렸다.
위기도 있었다. 집안에 왕엄마로 계시는 어머님은 늘 아이들에게 기민하게 반응하고 나에게 필요한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의 좋은 컨디션 유지를 위해 매일 1-2시간 정도는 쏟아지는 잔소리 폭격과 짜증받이 역할을 해야 한다. 보통은 부장님이 말씀하시니라고 생각하며 잘 지나가는데, 명절이 다가오거나 집안에 행사가 많은 달이면, 다 두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 혹은 좀 더 구체적인 상상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 하루빨리 1-2일 휴가 내고 어머님을 열심히 서포트하고 그 열기를 내려야 한다. 반대로 회사가 참 지랄일 때도 많다. 회사의 결정과 방향이 이해되지 않고, 나가라는 건가? 이걸 어떻게 해내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주어진 일들이 목에 차오르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갈등과 정치 속에서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라는 질문을 하며 퇴사 혹은 휴직카드를 상상한다. 그렇게 나는 내가 없는 나의 삶을 살아내며, 아 이 모든 걸 알았으면 내가 엄마가 되는 결정을 하지는 않았을 거야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년이면 첫째가 초등학생이 된다. 아이들이 컸고, 육아 난이도가 바뀌어 간다. 엄마가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하고, 내가 하는 일들을 카피해서 놀이로 한다. 가계부를 쓰지 않아도 가정경제가 돌아가고, 칭찬스티커를 다 모아서 뭔가를 사달라고 할 때마다 흔쾌히 지출할 수 있다. 회사와 어머님 사이에서 오는 현타를 조절하는 노하우도 생겼다. 가끔 한 타임을 쉬는 것도 방법이라는 요령도 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걸 알았다. 혼자 아등바등하던 나의 삶은 도움을 주는 많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점점 나는 혼자 일찍 일어나서 공부하고 해결하던 모습에서 어떤 사람에게 연락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그 감사함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한다.
그렇게 나는 엄마로, 임원으로, 어른이 되어간다. 내가 없는 내 삶은 새로운 나로 채워졌다. 내 삶이 없다는 생각에 좌절했지만 그냥 이렇게 빚어진 엄마라는 모습과 채워진 사람들이 나인 걸로 결론을 지어보며,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세상에 마주하는 것도 고려해보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