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7. 워킹맘 로그

내게 너무 다른 두 엄마들, 내가 가는 엄마라는 길은?

by Wonderfull

나의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육아에 지쳐 아빠와 다투고, 전화기를 붙잡고 울며 싸우기도 하며, 동생이 3살이 되자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늘 바빴고,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왔고, 약간 늦은 출근시간과 늦은 퇴근으로 아침식사는 늘 아빠와 함께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침 설거지는 언니와 당번을 나누어했고, 3학년이 되어서는 쌀을 씻고 밥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간단한 계란프라이, 라면 등을 통해 끼니를 스스로 해결하였고, 숙제, 준비물, 교재 등도 엄마에게 필요한 돈만 요구했을 뿐 늘 알아서 결정하고 선택해 왔다. 사춘기이던 어느 날은 자기 전 머리맡에 '엄마 나도 힘들어요'라는 메모를 써놓고 잠에 들었는데, 그다음 날 아무런 답장도 메시지도 받지 못해 속상했던 기억도 있다. 무심한 건지 나를 믿어주는 건지 애매한 경계 속에 아빠가 반대했던 서울 사립대 등록금도 내어주고, 뉴욕 외국인 노동자로 지내다 마이너스 200만 원을 상환하기 어려워 도망 온 나를 안아주고 돈도 갚아준 경험을 통해, 내가 주워온 딸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취업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니, 엄마와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명절기념으로 연락하였고, 그렇게 혼자 삶을 살아내는 게 익숙하고 굉장히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고, 첫 째 아이 100일 쯔음부터 시어머님과의 공동육아가 시작되었다. 어머님은 아픈 몸과 마음으로도 바깥일을 하고 돌아온 가족원들에게 늘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내어주어야 하는 분이고, 남편이나 아들이나 바깥에서 모양 빠지는 게 싫어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와 내조가 일상이신 분이다. 관심과 사랑이 모두 이 가정으로 쏠리는 어머님에게 가족들이 그 노고를 인정하지 않고, 반대로 조금이라도 무시를 당하는 듯하면 그날은 그냥 집이 초상이다. 서러움의 눈물과 속상함의 비명들을 난생처음 경험하며, 이런 관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참 난감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며, 어머님의 노고는 내가 그런 엄마, 아내가 되어가길 바라는 기대와 바람으로 커져갔고,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가지 못하는 나의 엄마스킬은 늘 가랑이 찢어지는 고통을 삼키며 부디 내일 아침은 (나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속상함으로 애들 못 봐준다고 시작하는 코멘트는 피하자며 하루하루를 보내었다. 점점 의식이 자라나는 아이들은 늘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가 준비해 주시는 간식과 깨끗하게 정리된 집, 따듯하기까지 한 온기까지 워킹맘이 절대 가질 수 없는 특유의 안정감을 장착하는 것들을 바라보며, 나만 조금 더 참고 맞춰가면 그렇게 행복한 가정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까지도 아니,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


너무나 다른 두 엄마들의 모습은 나에게 어떤 엄마 일래?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면 늘 나에게 익숙한 워커홀릭의 엄마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내 모습은 딸들에게, 남편에게, 어머님에 늘 상처를 주었다. 가족원이지만 멀게 느껴진다고 했고, 마치 본인들을 무시하는 것 같아 서운하다는 표현을 했다. 그런 코멘트에 번뜩 정신을 차리며 일의 양을 줄이고 강제적으로 집안에 신경을 쓰다 보면 금세 화목해지고 화기애애하며, 자발자발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양 쪽의 줄다리기는 팽팽하다. 회사에서 늘어나는 월급에 곱으로 책임과 일의 양은 계속 늘어나고, 곧 학부형이 되는 나에게 또 다른 양육의 세계를 빠르기 습득하도록 어머님의 푸시와 기대치는 나날이 높아져 간다. 더불어 70을 바라보는 어머님의 연세에 아픈 몸과 마음까지 함께 '엄마'라는 이름의 의무로 다가오니 모계사회에 일인자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아직도 뚜렷한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 자유롭지만 그냥 혼자라는 생각이었던 외로웠던 유년절과 함께해서 힘이 되고 늘 마음이 따뜻하지만 그만큼 다른 가족원에게 해야 할 의무감과 책임감이 있는 다른 두 삶의 경험은 늘 나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엄마니?


그 답을 그 중간 어딘가라고 써 내려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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