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8. 워킹맘 로그

미안하고 죄송하고 황송한 일상

by Wonderfull

가끔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며 내일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매일매일 해도 할 일이 항상 많은 집안과 회사에서의 하루 일 테고, 일과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다들 나에게 서운하고 서러운 마음을 표할 테고, 그럼 나는 또다시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는 그런 내일을 그려보니 이대로 잠들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투정 한 보따리를 풀며 잠에 든다. 그렇게 엄마로 사는 게 미숙한 워킹맘 쳇바퀴는 다시 돌아간다.


어느 날은 감기에 걸린 건지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다. 직장에서 이번 주에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얼마 전에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에 관련한 서류들과 하루를 꽉 채운 미팅 스케줄을 보니 재택근무 카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퇴근하는 시간 대신 중간에 병원에도 다녀오고, 컨디션 난조이신 어머님을 대신해 모처럼 아이들 등원도 할 수 있을 듯했다. 하루, 이 틀이 지나면서 집에서 일하는 내가 눈에 자주 보이니 어머님은 많은 조언을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시는 대로) 하기 시작하신다. 그동안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많이 참으셨는지 일하고 있는 나를 향한 여러 가지 조언의 소리가 들려온다. 읽어 내려가던 서류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방문을 살짝 닫고 일의 진도를 빼 본다. 드디어 겨우 따라잡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감기도 어느 정도 회복 된 듯하다. 모처럼 출근준비를 하는 아침,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마치 일하러 온 아줌마 취급하는 너와는 함께하기 어렵다. 네가 나를 무시하니깐 애들도 나를 보는 눈빛과 말투가 이상하고, 나는 이런 대우받아가며 오고 싶지 않다. 앞으로는 네가 재택 하며 아이들도 보면 될 것 같고, 굳이 내가 올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날 점심시간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그동안 회사 일이 많아서 신경 못써서 죄송하다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며 어머님의 마음을 다독이고 일단락이 되었다.


인생에서 뭐 하나 쉽게 얻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남편이 그중 한 명이다. 커리어를 빌드업하는 매 순간, 한 걸음 한걸음이 험난하고 많은 노력과 고민을 수반한다. 그렇게 쌓아가는 커리어는 소폭 상승일지라고 꾸준히 상향곡선을 그린다. 그런 그에게 정말 힘든 시간이 찾아왔나 보다. 집에 돌아와 힘들다고 한다. 상사와의 마찰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정신과 진료를 받아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다고 한다. "남편, 회사 그만두고 좀 놀다가 다른 데서 일해. 어차피 같이 버는데 자기 잠깐 쉰다고 우리 굶어 죽지 않아. 걱정 마"라고 말하며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상사인데 그냥 좀 져주고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 좀 아니라고 하면서 회사 다니면 되지 않나? 그 회사가 자기 것도 아닌데 왜 저래? 결과적으로 본인이 선택해서 힘든 걸 내 삶도 벅찬 나에게 이렇게 다 토로하지 말아 줘.' 그렇게 입을 닫아버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편함만 주는 나에게 남편 또한 불만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엔딩은 "그렇게 힘들지 않게 사는 사람이 어딨어? 왜 자꾸 집으로 짜증을 가지고 와서 그래?"라는 이야기를 내가 뱉었고, 상처받은 남편의 마지막 답변 "가족한테 그런 말 하지 그럼 어디 가서 숨 쉬고 살아? 우리 가족 아니야? 다음에는 그런 말 하지 마."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그렇게 그날 저녁 나는 다시 싹싹 빌었다. 가족인데, 남편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 일과에 지쳐 미처 살피지 못해서 미안해.


일하는 게 제일 쉬운 워킹맘은 늘 미안하고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일들이 많다. 일에 몰입도가 올라갈수록 아이들 준비물을 일정에 맞게 챙기지 못해서 선생님께 죄송하다 전화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사과한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잘 알아서, 내가 일모드 일 때 더 때를 많이 쓰고 보챈다. 남편과 어머님의 시그널로 얼른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과 교감하며 일부러 노력해서 시간을 보낸다. 갑작스럽게 열이 나고 아픈 아이들 병원행으로, 회사 미팅 시간도 종종 바꾼다.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개인사유로 오전 반차라서 일정을 변경합니다. 늘 함께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사과하고 받아지는 배려와 존중으로 오늘도 나는 엄마가 미숙한 워킹맘으로 하루 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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