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수히 많은 엄마가 있고, 그 무게를 견뎌나가는 방식도 각자가 다르겠지만 내 머릿속에 엄마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엄마라는 무게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간 동갑내기 친엄마와 시어머님이다.
직장인이었던 엄마는 삼 남매를 출산하며 자연스럽게 전업주부가 되었다. 어린 기억 속에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영어 과외 선생님에서 본인의 학원을 운영하여 키워가는 동안 우리 삼 남매도 어른이 되었다. 4년 터울인 막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고, 저녁마다 라면 다섯 봉지를 끓여 야무지게 먹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에서 언니와 차려먹는 밥보다는 친구 집에서 놀다가 얻어먹는 밥이 맛있었다. 엄마는 늘 바빴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대부분 믿어주고,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회장 선거, 참고서 구매, 학원 등 나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결정했고, 그걸 믿어주는 엄마가 익숙했다. 어른이 되어 독립하게 되었을 때, 집을 찾아가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스스로 벌인 일들을 감당하며 살아가기가 바빴고, 번아웃 일보 직전이 되어서야 엄마 집을 찾아가 휴식하곤 했다.
요즘 공동육아로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시어머니는 사뭇 다른 엄마다. 식사 시간에 맞추어 하루가 고단했을 텐데, 밥이라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며 맛있는 집밥을 해주신다.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수다스럽게 이야기했고, 나의 결정과 행동 중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지적과 비판도 아끼지 안는다. 다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남편의 성장 과정 속에서 어머님의 존재도 비슷하거나 혹은 더 참견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의 벌이를 할 수 있는 식당, 청소 일들을 했고, 집에서 맛있는 집밥과 간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비중이 컸던 것 같다. 5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오가며, 남편이 집안 눈치를 보며 요청하지 못하는 대회에 참가하도록 독려하고, 좋은 그룹과외 팀에 넣으려 노력하셨던 것 같다. 그런 영향인지 어머님 댁은 늘 북적북적하다. 독립한 두 아들이 수시로 밥을 먹으러 왔고, 가족들끼리 언성 높여 싸우기도 하고, 밤새 고스톱을 치며 웃기도 한다.
두 엄마의 사랑 방식은 집안의 분위기로 자리 잡은 듯하다. 우리는 친정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현재하고 있는 일들과 계획하는 것들에 대한 응원을 받는다. 시댁은 자주 오가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울고, 웃는다. 이제 5개월이 지나가는 지우는 어떤 가정 분위기에서 성장하게 될까? 그 시작이 엄마의 사랑 방식, 엄마의 삶의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워킹맘으로 하루하루 눈치 보며 살아가는 내 모습이 달라 보인다. 양쪽 끝에 있는 것 같은 친정과 시댁 사이 어딘가에서 반반씩 닮고 싶은 나는 두 어머님의 선택 어딘가에서 타협점을 찾고, 실행해야 할 것 같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 워킹맘으로 너무 바빴고, 치이는 하루를 원망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오늘 내가 비중을 두는 일들이 남편과 내가 그린 가정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고, 과정임을 칭찬해줘야겠다. 워킹맘이기 전에 한 가정의 엄마라는 사람,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사람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