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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지니 Dec 09. 2022

행복한 엄마로 살기로 했다

대기만성형 그녀에게

‘뭐가 되어도 될 아이라고?’


잠시 멍했지만 곧 여러 가지 생각들이 흙탕물처럼 마구 뒤섞였다 가라앉으며 꼬리를 물었다. 뭔가 중요한 발견이 있을 때면 으레 그랬듯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무고한 개구리에게 돌 던지듯) 아이에게 툭툭 뱉어냈던 비난의 말들이었다.

“이제 곧 학교 가야 하는데 아직 지퍼 하나 제대로 못 잠그면 어떡해!”

“젓가락질 연습해야 한댔지? 봐봐. 다른 친구들은 잘하잖아.”

“바지 입을 땐 허리 부분에 이렇게 손을 넣어 돌리면서 입으면 접히지 않는다고! 엄마가 백번쯤 말한 거 같은데?”

“숙제는 다 하고 노는 거니?”




우리 딸 개똥이는 7살이다. 이제 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언뜻 보기엔 포켓몬을 좋아하는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느린 아이라는 것이다.

육아의 시작부터 모든 것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뒤집기, 기어 다니기, 직립보행, 말하기 등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특성들을 갖추는데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회성과 그 외의 측면도 대동소이했다. 뜬금없는 뇌피셜 인지도 모르겠으나, 초보 엄마가 갖는 조바심은 막 면허를 따서 처음으로 마트 장보기에 도전하는 초보운전자의 것 못지않다. 특히 아이의 발달이 더딘 경우엔 더욱. 시시각각 밀려오는 불안감을 다스리기 위해 많은 멘토들의 도움을 찾아다녔다. 그리하여 육아서와 육아 관련 유튜브 중독자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아쉽게도 쥐꼬리만 한 인내심은 배움을 적용하기에 한없이 모자란 것이었다. 인격 수양은 하루 이틀에 이뤄지지 않는 일. 불안은 빈번하게 그냥 불(火)이 되어 활활 타올랐다. 목표로 삼았던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가 되는 길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험하고 멀었다.




“어머님~ 개똥이는 뭐가 되어도 될 아이예요! 얘가 10년, 20년 뒤엔 어떤 모습일지 너무 기대되는걸요.”

‘되긴 뭐가?’ 처음 든 생각이었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아침마다 무한 반복되는 “How are you?”란 물음에 이 녀석한테는 같은 대답을 들어보신 적이 없단다. 그래서 볼 때마다 말을 걸고 싶으시다고. 통화가 끝난 뒤 한참 동안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었다.




담임선생님과의 인연은 햇수로 3년 차다. 코로나로 움츠렸던 5살의 겨울부터(그땐 임시 담임으로) 지금까지 개똥이의 바깥 생활을 책임져주셨다. 한숨 나게 아쉬웠던 6세 수료식을 뒤로하고 7세 담임이 되셨다는 소식을 들은 날, 얼마나 기뻤던지 뻣뻣한 몸에 춤사위가 절로 나왔다. 열정 가득한 이 미녀쌤은 유비가 제갈량을 얻은 것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든든하기 그지없는 육아 동지였다. 기민한 관찰자이신 선생님 덕분에 집 밖의 작은 사회에서 보이는 우리 집 그녀의 모습을 cctv 들여다보듯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돌아보니 “개똥이에게 인사받아보는 게 소원이에요.” 하시던 때가 불과 1년 전이다. 주변인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6살의 모습에서 절친(?)도 생긴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난 2년간 보여준 그녀의 변화는 그야말로 스펙터클 했다. 문득 놓치고 있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아이에 대한 기대와 믿음, 지금까지 보여준 쉼 없는 성장에 대해 박수 쳐주는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자꾸 부족한 부분만 보였다. 보완하기 위해 뭐든지 조금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아이의 잘못이 아닌 걸 알면서도, 새어 나오는 실망감을 감추기 힘들었다. 기대보다는 저래서 뭐가 되려나 하는 걱정이 앞선 눈먼 엄마였다. 그런데 눈을 뜨고 나니 세상이 뒤바뀌어 있었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비뚤어진 시야를 바로 잡으니 딸아이의 모든 눈짓, 몸짓 하나하나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내가 더 사랑하고 배려하고 성장했다 생각했는데 실은 완전히 반대였다. 날마다 보이지 않는(pretend) 친구와 함께 구해다 주는 가짜 다이아몬드 10개에도, 웃는 모습의 포켓몬 그림 한 장에도 내 작은 그릇이 버거울 정도로 넘치는 사랑이 담겨있었다. 어떤 육아 멘토가 외쳤던 부모만 바뀌면 된다는 말은 과연 진리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개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뭐가 되어도 될 놈’이라 불렀다. 갑자기 엄마가 왜 저러나 궁금한 모양이지만 참기로 했나 보다. ‘대기만성’ 혹은 ‘크게 될 놈’이라 부르는 게 더 나을까? 아이의 머리 뒤로 가끔 멋진 연예인에게서 보인다는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조바심이 슬그머니 떠난 자리엔 거위 솜털만큼이나 가벼운 희망이 차올랐다.

일 년 열두 달 내내 이런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엔 동의하지 않는다. 옆집 엄마들은 그리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기대하는 마음’이야말로 ‘신뢰’의 다른 이름이며, 내가 그녀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돌아오는 설엔 선생님께 드릴 정성 담은 선물 하나 준비해 봐야겠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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