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유럽여행기
독일 집에서 인터라켄까지는 우리 집 차를 운전해서 갔다. (한편, 남편은 다리가 묶여 여기저기 차 동냥으로 아이 축구 경기에 보내고, 스쿠터를 타고 기타수업을 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독일에는 겨우살이가 많네. 사람들이 안 먹나..”
“그러고 보니 자작나무도 있고, 거기에 파랗게 겨우 살이 올라왔네. 수두룩하다.”
“한국에서는 저거 몸에 좋다고 남아나질 않아.”
“여기 사람덜은 그걸 모르는가배. 산에 어쩔 때 가면 있는데, 낮은 곳에 달린 데는 고라니가 뜯어먹고 그래.”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나무들에 달린 겨우 살이를 그들은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지며 지나쳤다.
독일에서 스위스로 가는 길에는 호수가 많다. 첫 번째가 보덴제(Bodensee)기차를 타고 갈 경우, 빠른 기차(ICE)가 오토바이가 곡선을 그리며 길바닥에 눕듯이 달리듯 물에 빠질 듯이 달리고, 프리드리히 샤펜(Friedrichschafen)을 지나다 보면 웅장한 폭포 광경을 마주칠 것이고, 추크(Zug)시를 지날 때는 추크제, 인터라켄에 인접해서는 푸르른 브리엔츠 호수(Brieanzsee)를 만난다.
“숙아, 나 운전 안 할래. 여기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전형적인 스위스잖아.”
“제가 운전할까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 가다가 잠시 멈춰요. 자동차 자유여행은 그래서 하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는 자너제(Sarnersee)에서 잠시 멈췄다. 단풍이 아직 남아있는 스위스, 그들이 처음으로 스위스 땅에 발을 디딘 곳. 우리 여행의 시작!!
숙소는 인터라켄 서역 후문으로 정했다. 부엌이 있고 12월 크리스마스 연휴를 피하고 최소 가격으로 부모님 입맛에 맞는 한식을 먹기에 적합한 곳. 바로 옆에는 아레 강(Aare)이 흐른다. 인터라켄을 중심으로 양쪽의 두 호수, 브리엔츠(Brieanz)와 튠(Thun)를 이어주는 강이다. 코발트 물빛이 참 아름답다. 그 위에 용도를 알 수 없는 건축물로 보아 그 주변은 전부 올드 타운이다. 유럽의 모든 올드타운이 그렇듯, 포석이 울퉁불퉁하여 운전하기 어렵고 길이 좁아 주차도 어렵다. 도착 후 주차가 어려워 호텔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임시 주차를 했다.
네 명의 여권을 들고 호텔로 향했다. 강을 굽어보며, 야무지게 조깅복을 챙겨 입고 강을 따라 호수로 뛰어가는 나를 상상한다. 내 침착한 태도와 많은 질문에 사무식으로 답하는 직원이 어떻대도, Airbnb와는 달리 호스텔이어서 체크인이 쉽고, 에르베이트가 있어 다행이었다. (에르베이트 없는 숙소에서 애먹은 적이 여러 번) 다만 호텔 앞 일방통행처럼 협소한 길에 차를 대고 짐을 내리기에 행인과 다른 차들에게 방해될까 봐 눈치 보였다.
자동차 여행의 장점 짐을 많이 가져갈 수 있다. 그 장점을 십분 활용해서, 10일 여정으로 네 명은 23kg짜리 캐리어 두 개, 기내용 하나, 내 스포츠 가방과 우체국 빅 사이즈 음식 상자에 핸드백 두 개에 노트북, 6인용 밥솥과 전기장판까지 트렁크를 가득 실었다. 호스텔 노변에 차를 세우고 호스텔 앞 작은 플라스틱 의자 위에 핑크색 전기장판을 올렸다. 가방에 안 넣어서 전기장판이 의자에서 서서히 미끄려졌다.그 위에 전기밥솥을 올리고, 짐들을 하나씩 내리는데 갑자기 뭐가 속에서 올라온다.
“다닐 때는 짐을 줄여야 해.”
아버지 말이 내 말이다. 캐리어는 자기가 들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넣을 수 있는 장점에 비해, 계단과 호텔 체크인에서 거추장스러운 게 단점이다.
“단출하게 캐리어 하나로 짐을 싸라고 말했더니만 기어이 두 개를 들고 나오대.”
여행 베테랑 사돈어른이 엄마에게 말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거쳐 올 때 차 멀미와 시차, 몸살에 잠만 잤던 엄마는 아직도 미몽사몽해서 듣는지 마는지. 그럴 줄 몰랐다는 모르는 척, 세 명의 비난을 묵묵히 받아냈다.
에르베이트를 타고(카드 키가 있는 숙소는 옛날 상하이 시절 중국 아파트에 있던 것처럼 에르베이트에 카드 키를 넣어야만 원하는 층으로 올라간다.) 짐을 들고 그걸 설명하고, 카드로 문을 열고 모든 짐을 하나씩 옮겼다. 그리고 좁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여러 번 오르내리며 부엌을 찾았다.
“공용 화장실이에요. 화장실과 샤워 실은 여기 계단 오르시면 있고요. 부엌은 한층 더 올라야 해요.”
좋은 호텔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싶지만 두 달 전에 예약하지 않아서, 물가 비싼 스위스라서, 연휴를 앞두어서, 러시아 전쟁으로 가스비가 올라서, 유럽 물가가 또 올라서, 인터라켄, 스트라스 부르, 파리, 로마까지 이미 많은 비용을 지출해서 어쩔 수 없었다. 방도 좁고 이층 침대도 흔들려도 창에서 바라본 경치는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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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stel Alplodge Interlaken에서 바라본 Aare 강변 풍경
독일에서 사 온 소고기를 부엌에 가서 썰었다. 숙소의 칼은 늘 무디다. 소고기를 찢어내듯이 잘라서 성능 나쁜 인덕션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기고, 굵은 바닷소금을 팍팍 뿌렸다. 고기는 익어가고 한 한국인 같은 동양 여자가 들어왔다.
쌀 국수를 끓이는 여인, 캐비넛을 소심스럽게 뒤진다. 행동하는 폼이 한국인은 아니다.
“뭐 찾아요?”
“그릇을 찾아요.”
“아, 그러니깐 누들을 넣어 먹을 볼을 찾는다는 거죠?”
샐러드 4인용을 섞을 만한 샐러드용 볼과, 아이스크림 1인용을 넣을 유리 볼 밖 눈에 띄였다. 고기가 맛있는 냄새를 내고 구워지는데, 인스턴트 쌀국수를 끓이는 게 그녀가 좀 안 돼 보여서 그녀를 위해서 호스텔 부엌을 팍팍 뒤졌다.
“아, 없는 것 같네요. 어쩌겠어요. 이 큰 볼에다가 넣어서 ‘멋지게’ 드셔야겠네요.”
500그램 소고기는 많았다. 프라이팬을 가득 두 번 구워 날라 호스텔 방에서 먹었다. 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차에 가서 물 한 병을 가져오고, 무선 인터넷을 연결하고, 전기 코드 어댑터를 확인하는 등 자잘한 일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몸살 난 엄마는 침대에 붙어있고, 체력 좋은 사돈어른은 일찍 자는 부모님을 불평했다.
“아니 초저녁부터 이렇게 주무시면 어떡합니까? 이제 안 잘 때도 되지 않았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와 엄마는 전기장판을 잘 가져왔다며 전기장판을 곱고 지글지글 끓는 침대 위에서 코를 골며 주무시기 시작했다.
혼자, 호스텔 라운지에 가서 다음 일정을 알아봤다. 고요한 크리스마스의 달 12월. 테라스 위로 달이 크게 떴다. 아니 별이었다. 하더 쿨룸(Harder Klum)에서 내려오는 달 같은 별빛. 네온 별을 바라보며 또 내일이 걱정됐다. 혼자였더라면 잔잔한 물처럼 산 바람을 느꼈을 텐데…
활기찬 아침, 사돈어른은 전날 남은 쇠고기로 미역국을 끓이고,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서 무말랭이, 김치, 멸치볶음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준비를 여유롭게 하고 네 명 모두 유럽 최고봉 융 프라우(Jungfrau)에 오를 준비가 완벽하게 되었다. 다운재킷과 히트텍 내복, 긴 양말, 장갑, 모자, 목도리를 챙겨 입었다. 카펫 복도가 더워 보일 지경. 나는 인터넷으로 프린트한 쿠폰을 준비하고 혹시 경로 할인을 받을까봐 여권도 챙겼다.
에르베이트를 타기 전, 사돈어른은 화장실을 간다며 우리를 기다리게 하고 다른 편 계단으로 사라졌다.
처음 식사로 간이 휴게소에서 부글부글 끓었던 장이 또 속을 썩이거니 사단이 나도 대단히 났구나. 그녀의 체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우리가 힘들다, 그래서 어째겠노. 그녀의 흉을 봐도 사람은 오지 않았다. 20분이 넘었다. 아무리 배가 아파도 돌아올 시간. 화장실로 가보았다. 사람이 없다.
혹시나 해서 우리 방문을 열어 보았다. 그녀가 간 계단을 내려가 호텔 로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밖에 있을까. 없다. 청소부 둘에게 아시안을 보았나고 물었다. 모른단다. 엘레베이트는 카드가 없으면 올라갈 수 없다. 엘레에베이트를 타려면 우리를 꼭 지나야만 한다. 계단에서 호텔 로비로까지의 문은 안에서는 열려도 카드 없이 들어갈 수는 없다. 부모님에게 기다리라고 하고, 다시 한번 방과 계단 로비를 뒤졌다. 그 일을 꼬박 네 번 반복했다. 융프라우에 가려고 겹겹이 껴입었던지라 몸에 땀이 났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런 일도 있나?
증발....
이상하다. 이상하다.’
두리번 거리다 우연히, 3층 복도 창가에서 호스텔 밖을 내다봤다.
사돈어른이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길에 서 있다. 부리나케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어디 계셨었어요?”
“엄마한테 밑에서 만나자고 하고 내려왔어.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이 와야지. 철길에 기차가 지나길래 저 기차 타고 산에 갔나 해서 거기 갔었어. 돈도 전화기도 없고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지. 아무래도 있던 자리에 있는 게 낫겠다 하고 기다리는 중이야.”
“우리는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엄마한테 밑에서 만나자고 얘기하고 화장실 갔는데, 엄마는 참말로, 남의 말을 안 듣는다니깐. 제대로 들어야지. 자기 생각만 한다니깐.”
“한참 찾았어요. 제가 내려와서 물어봤는데 청소부도 못 봤다고 하고요.”
“나도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하더라고."
“기차역에 가셨을 때 우리 어긋났나 봐요.”
올라와서 부모님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엄마는 그제야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재회의 기쁨을 미뤘다. 사돈어른을 기다리는 게 불편해서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좀 누그러뜨렸다.
새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둘 다 귀가 안 들려서 소리 질러야 할걸? 아버지는 궁시렁거리고, 너거 엄마는 엉뚱하고, 내 엄마는 별나고.”
엄마를 기다리는 중, 사돈어른이 억울한 듯이 말했다.
“장가계 갔을 때 생각나네. 엄마가 다리가 불편하잖아. 같이 가면 좀 느려지니깐, 자기 딴에는 미리 가 있겠다고 하고 우리 가만히 있을 때 다른 무리에 따라간 거야. 엄마 찾는다고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말은 안 듣고,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말이지.”
과연 그랬을까. 그녀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녀를 애타게 찾았을 사돈어른의 마음도 이해한다. 누가 옳고 그르고 보다는 그들 사이의 입장 차이와 소통 문제가 일으킨 에피소드이거니.
이번 여행이 어려울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체력 좋아 초저녁부터 잠에 든다고 투정하는 낭랑 68세 사돈어른, 귀가 먹고 다리도 아프며 사물에 무 흥미인 엄마, 어디든 적극적으로 가고 사진 찍기도 좋아하는 그러나 가끔씩 궁시렁 거리는 아버지.
나는 비용과 가격은 잘 계산하지만 언제든 기분으로 먹을 것이나 체면치레에 과소비를 하는 사돈어른과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다. ‘여행 비용을 절약해야 한다’는 합리적 이유 이면에 소비는 다 나쁘고 낭비라는 무의식 속의 내 생각과 싸워야 했다.
“제가 기차역에서 티켓 좀 끊고 올 테니 산에 올라서 먹을 빵 좀 몇 개 사 오실래요?”
생각보다 빨리 티켓을 끊었다. 100만 원만 주면 됐다. 노인 할인 따위는 없다. 인터라켄 동역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던 엄마가 사돈 부인이 간 방향을 손짓했다. 얼른 달려갔다. 무슨 빵을 사시나 하고. 계산할 때 혹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그녀의 손에는 내가 생각한 브레츨 두 개가 아닌, 햄과 치즈가 들어간 크루아상 두 개, 하나는 소고기 하나는 돼지고기, 그리고 만쥬 같은 빵 두 개, 비싼 넛 브랜드 캐슈너트, 그리고 또 초콜릿이 들려져 있었다. 꽤나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35프랑크입니다.”
“유로 받으시죠?”
40유로에서 2유로 돌려받았다.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어, 좀 그랬어.”
“이거 한국 돈으로 계산해 보세요. 엄청 비싼데.”
“물건을 들고 잠시 서 있던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뭐 이것 꼴랑 사고 6만 원?”
“이게 기차역 앞이고 편의점이고 또 스위스고 그래서 비싼 건데, 집어 들기 전에 계산 좀 해보시지.”
“이것도 좋은 브랜드 사셨네요. 아하하. 오늘은 비싼 하루가 되겠습니다. 융프라우 오르는데 백만 원 간식거리에 6만 원.”
그래도 비싼 캐슈너트는 맛있었다.
"이거 고소하네."아버지도 맛있게 드셨다.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