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유럽여행
콜마르(Colmar)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스트라스부르 가는 길에 있었고 들릴 수도 있었다.
“콜마르 갈까요? 거기가 예쁘다던데…”
사돈어른의 대답이 없다. 듣는 둥 마는 등 하셨거나 해가 지기 전에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하자고 했다. 그날 집에서 검색을 해 보고 후회하셨다.
“숙아, 그런 곳이 있으면 꼭 가자고 해야지. 다음에는 꼭 이야기해.”
“우리가 갈 곳도 그곳이랑 비슷하다니, 걱정 마세요.”
스트라스 부르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그런 길이 나온다. 젊은 하울과 예쁜 소피가 지붕 위에서 서서히 걸어가는 장면이 전부 스트라스 부르 올드시티를 배경으로 한 듯. 스트라스 부르는 프랑스 알자스(Alsace) 지역으로 독일 국경에 접해있다. 이전에 독일령이기도 해서 다른 프랑스 지역에 없는 독일식이지만 프랑스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고 독일어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12월 초, 크리스마스에 가까울수록 숙박료는 비쌌다. 여러 곳을 비교하고 따지기 보다 가장 싼 숙소에서 조금은 괜찮아 보이는 걸 골랐다.운전을 하기 때문에 외곽 숙소를 구할 수 있었고 다른 조건들은 따져봐야 머리만 아프다.
도착하고 주인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받는 대신 메시지로 청소부가 30분에 도착한다고 보냈다. 사돈어른은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30분을 기다렸고 30분을 더 기다렸다. 아파트에서 나를 본 청소부 여자는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도착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고, 자기 청소 시간을 방해했다는 이유였겠지.
그래도 그녀는 영어를 좀 한다. 청소를 빨리하라고 재촉할 수는 없었다. 오래 기다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른 건 다 좋아요. 그런데 지금 당장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그럼요. 지금 청소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화장실은 쓰세요.”
“길에서 아파트까지 멀고 바로 앞에 학교 뒷문이 있는데 문 앞에 차를 잠시 대서 짐을 내려도 될까요?”
“그럼요. 그리고 방을 보여줄게요.”
이탈리아에서나 방 소개를 가끔 받았는데, 프랑스에서는 처음이다. 친절하게 커피와 차가 있는 캐비넛을 알려주고 침실과 이불 상자, 화장실을 하나씩 보여주며 안내를 받았다.
“혹시 근처에 주유소가 있나요?”
주차하면서 기름까지 간당하던 참이라 불안했다. 그것까지 다 물어보니, 마음이 놓였다.
“청소는 언제쯤 끝나세요?”
“한 시간이 필요해요. 열쇠는 줄 테니. 그때 돌아오면 돼요."
그녀를 기다린 시간만큼 부모님을 기다리게 한 게 걱정됐다. 또 기다려야 하는 게 미안했다. 그렇다고 거기서 청소하는 걸 방해하는 것도 실례가 아닌가 해서, 일단 짐을 옮기기로 했다.
인터라켄 호텔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캐리어 세 개를 올리고 내리는데 문제가 없었다. 이 아파트는 회전식으로 좁게 올라가는 계단에 도로에서 10미터 이상 떨어졌다. 일방통행이라 눈치 보며 골목길에 진입해야 했고, 주차는 무료였으나 차에 두고 온 짐을 가지러 가려면 5분 이상을 걸어야 했다.
프랑스에서 주유는 처음이다. 일단, 독일은 super를 넣었는데 거기는 super 98 super00 종류가 너무 많다. 좀 간단하게 가솔린이나 가스라고 구분하지, 나라마다 표기가 다르니 헷갈리고, 그걸 물어보고 왔는데 이번엔 정산기가 문제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앞에 지나가는 흑인에게 물어보고 그가 가르쳐 주는 대로 하고 다 넣었다. 그 사람이 지나가다가 다시 한번 더 모든 게 다 잘 됐느냐고 묻는다. 친절한 프랑스 사람들을 만나서 다행이다.
하루 여행을 계획하기도 벅차고, 임무 하나를 완수하면 다른 문제가 툭 튀어나와 버벅거렸다 . 호텔 주소만 확인하고 주인에게 열쇠를 받을 걸 미리 약속 안 해 이런 결과를 맞은 것이라고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좀 기다렸지만 열쇠를 받은 게 어디냐며 차 기름이 안 떨어지게 주유를 한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어르고 달랬다.
독일은 석회질 때문에 물을 끓이면 하얗게 가라앉는다. 사돈어른이 그 물을 못 마시겠다고 해 차에 물을 사서 싣고 다녔다. 가지고 온 물이 다 떨어져서 차에 돌아가야 했다.
밤이 깊었다. 바깥공기는 시원했다. 유럽 겨울은 저녁과 밤만 있는 것 같다. 부모님은 따뜻하게 히터를 켜고 숙소에서 쉬고 계신다. 조용한 길, 밤인데 거목 플라터너스에서 지빠귀가 노래한다. 빵집 지붕에 크리스마스 전구가 반짝였다. 운전과 주유소 찾기, 아파트 주인과 연락하고 청소부와 트러블 안 일으키고 일 처리하기 등등의 많은 일들은 지났고, 날이 저물어서 고마웠다.
아무래도 호텔 주차를 잘못한 것 같아. 주인에게 받은 메일을 연구해서 겨우 찾아서 주차를 했더니, 어떤 프랑스인이 나 보고 거기 주차하면 경찰이 딱지를 뗀다고 한다. 에어비앤비라면 주차 공간이 건너편이라며, 손짓을 해가며 혹시 어만 데 주차하는지 아닌지까지 확인하고 사라졌다. 친절과 간섭의 미묘한 지점을 오간 그. 그래도 메르치보꾸.
스트라스 부르에도 노트르담 대성당이 유명하다. 유럽 여행의 첫 성당 방문, 가톨릭 신자인 사돈어른은 고요히 들려오는 성가대의 노랫소리에 집중했다. 작은 체구의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가 종교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고,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고 찬찬히 성당을 보는 모습에 나까지 뿌듯했다.
엄마는 여기 왜 들어왔는지 영문을 모르고 마스크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버지는 천장을 쳐다보고, 사돈 부인을 따라다니며 설렁 설렁 둘러보다 엄마 옆에 가서 벤치에 앉았다.
“여기 앉아 계세요.”
“엄마는 어디 계셔?”
“사람 구경하고 저기 계세요.”
사돈 부인 말하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진짜 그런가. 의심도 하고 내가 아는 것이 있던가. 생각하다가 혹시 너무 부모님이 지루하진 않을까, 걱정하면서 어두운 성당에서 흔들리는 촛불을 보았다.
유럽에서는 성당이나 수도원 아니면 광장밖에 구경할 곳이 없지 않은가. 아시아는 절과 서원. 유럽의 음식이 고기와 감자, 아시아의 음식이 쌀과 채소라는 그런 간단한 공식으로 정할 수 있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종교가 우리 삶의 전반을 차지했던 시대가 엄연히 있었다고 해도, 나와 거리는 멀다.
종교는 역사와 정치,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고 나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하면서도 높은 고딕 천장처럼, 은은하게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처럼 쉽게 흩어지고 만다. 아쉽게도. 그늘만 가득하다. 어떤 이에게는 의미 있고 어떤 이에게는 무의미한 것들. 견문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걸까? 더 깊이 빠지게 할까. 아니면 모든 것이 자기 필터에서 숨어서 사라지는 것일까.
관광객 무리에서 종교의 엄숙한 분위기에서 부모님을 구해 나왔다. 과연 성당은 아름다웠지만 그 앞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날씨 때문에 그냥 사진만 찍고 가는 수준.
대성당을 보고 강을 따라 시청과 대성당을 바라보려고 걷고 있었다. 또 한무리의 관광객과 섞였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아버지가 사라졌다. 양옆을 두리번거리고 이동하는 무리 속에서 밝은 회색 파카가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지하 화장실에 들어가고 있었다.
“잠시만 여기 계세요.”
엄마와 사돈어른에게 그렇게 말하고 빠르게 아버지의 그림자를 쫓았다. 남자 화장실 문 앞까지 따라갔다. 남자 서넛이 소변 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출구가 없는걸 확인하고 계단을 올라 나왔다.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있는 아버지, 시원한 모습이다.
“아버지, 어디 가실 때는 말씀하시고 가셔야 해요. 그걸 알아야 우리가 아버지를 찾지요.”
언제든 사람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더욱 인지했다. 인파를 헤치고 나아갈 때는 수십 번 그들이 따라오는지 아닌지 확인했다.
여행을 자주 해서 그런지 민감함과 그들의 걸음걸이로 그들을 찾아내는 순발력이 있는 것만해도 참 다행이었다. 다만, 말도 않고 어디를 가는 건, 부모 걱정을 시키는 철없는 자식이나, 무감각한 부모나 같다.
우리 넷이 잘 다니긴 했지만 가끔씩 그런 상황이 될 때마다 나는 내가 그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약하고 나보다 공간 감각과 기억력이 떨어지며 특히 말이 안 통하는 곳에서 그들이 길 잃은 국제 노년이 된다면 끔찍하도다. 그 이후로 버스에서 내릴 때 내린다고 미리 말하고 탈 때 어디로 가는지 말하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수시로 말했다.
배를 타려고 했는데, 즉흥적으로 타려던 배는 좌석 하나를 남겨두고 만석. 어디든 닿는 곳까지 걷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그런 널널한 자유여행을 계획한지라, 아쉽지 않다. 계속 걸었다. 춥고 배고파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아담한 레스토랑에 들어가자, 프랑스인보다 동유럽에서 온 듯한 여성이 인사 없이 물끄러미 우리를 쳐다본다. 아시아인을 별로 구경하지 못한 것일까. 어찌 됐건, 거기 앉아서 화장실을 쓰고, 미리 부모님에게 이야기했다.
“유럽에서는 주문을 하는 것도 오래 걸리고 음식이 나오는 것도 한참 걸리니 이걸 모든 과정을 즐기시기로 해요.”
주문받으러 온 여성은 아닌 게 아니라 중동 여성 같다.
“영어를 할 줄 아세요?”
스위스는 독일어가 통했고, 프랑스까지 독일어가 통할까. 아니다. 프랑스어를 못하니 영어 하느냐고 가는데마다 물을 수밖에 없다. 모두 “어 리틀”이라는 겸손한 대답을 하고 딱 그 정도의 영어를 한다.
그녀는 이란 사람이고 프랑스에 와서 살고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와서 사는데 엄마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고 자기도 그것은 추억처럼 남아있다고 하고 그 사이에 여 배우 배종옥이 젊었던 드라마 사진을 보여줬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주문에만 10분이 걸렸다.
그 사이 그 여종업원이 쭈볏거리고 다가오더니, 사진 좀 같이 찍자고 한다. 여주인인지 우리를 이상하게 보던 그 여자가 사진을 찍어줬다. 엄마에게 보여주겠다고 사진을 찍어갔는데... 그래 그건 상술일 수도 있어. 혹은 팁을 더 받기 위한 수작에 불과할 수도 있어. 라고 의심할 수도 있지만 그녀가 진심이었다고 믿자.
아랍인이 서빙하고 말이 잘 안 통하는 외국인이 연 프랑스 음식점의 음식이 맛있을까 했지만, 나는 대만족이다. 프랑스 음식은 적어도 내가 경험한 많은 스트라스 부르, 파리, 프랑스 남부 어디를 가든 짜기만 한 독일 음식에 비해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겨자 베이스의 크림소스와 안심스테이크, 실론 스테이크 모두 맛있었다. 몸을 데우고 즐거운 마음으로 식당 문을 나섰는데, 나와는 달리 느끼하다고 하던 아버지의 평가는 그냥 흘러들었다.
“감자는 맛있네. 나는 감자가 좋아.”
“아, 처음에는 맛있는데, 다 먹고 나니 느끼하고만.”
“나는 맛있었어요.”
세 사람의 반응이 제각기다.
우연히 백화점에 들렀다. 사돈 어른은 샤넬 향수를 사겠다며 한국 면세점과의 가격을 비교하고, 세금 환급을 받으면 얼마나 싸지는지를 계산했다. 직원에게 작은 사이즈를 보여 달라고 했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듣고, 발음도 별로지만 백화점 화장품 매장 직원이라 화장은 진했고, 젊었다. 점원은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만지는 것조차 허락치 않았다. 그건 자신들의 상품이기 때문이라나, 한국에서는 쉽게 만져보고 살 수 있었던 것과 달라서 조금 당황했다. 그것보다 그들의 태도가 불쾌했다. 그런 불쾌감을 쇼핑 의지에 불탄 사돈어른과 성실한 통역자인 나까지는 해치지 못한다.
향수와 립스틱, 파운데이션을 사서 세금 환급을 받으려고 갔다. 어느 한 부분이 잘 안되었을까. 영어에서 독일어로 바꿨고, 그녀는 자기 부모님이 독일인이라서 독일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덕분에 그녀와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환급과정을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불쾌가 유쾌로 바뀌는 찰나.
“숙아, 그런데 선물 뭐 안 줘?”
물건을 사며 선물을 받은 적이 별로 없는 나, 게다가 그런 선물이 썩히 마음에 들지도 않아 하는 나는 그런 질문에 당황했다.
“유럽에는 그런 거 없어요.”
그때, 입 셍 로랑 흑인 점원이 선물을 줄 테니 오라고 했다. 겨우 샘플 두 개를 쥐여 줬다.
에게…..? 꼴랑 이거?라는 표정으로 사돈어른이 종이가방의 샘플을 보고 내 얼굴을 한번 쳐다봤다.
나는 여기선 그런 걸 기대해선 안됩니다.라는 얼굴로 그녀를 봤다.
“무슨 백화점에는 앉을 곳이 없노.”
아버지는 혼잣말을 크게 하셨다.
“내가 돈 나중에 줄게요.”
엄마는 돈 계산에 신경 썼다.
그래서, 우리가 스트라스부르 여행을 제대로 했느냐고?
운하를 중심으로 선 그 지역의 목조 건축과 세차게 흐르는 물길. Fachwerkhäuser를 보고 그들은 감탄했다.
제각기 다른 관점으로.
"아이고 대단하다. 우찌 이렇게 지었을꼬? 단단히도 지었네.“
"여기서 사진 찍어야 해요. 거기 서 보세요. 엄마는 서라고 해도 그냥 가네. 참말로.“
"애들이 예뻐. 여기가 후랑스라고? 어디라고 했지. 우리 언제 독일 지나왔지?"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