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부모님과 유럽여행기

by 원더혜숙


아침에 드라마<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를 가려고 했다. 호텔 숙박 시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버스를 탔는데, 그곳까지 가려면 환승해야 한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호수는 3미터까지만 보이고 흐린 시야에 오리들과 갈매기만 가득했다. 춥고 서글프고, 날씨가 안 따라주는 게 좀 억울하지만 어쩌겠나. 다시 돌아와 스위스를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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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에 마신 비오는 날의 맛있는 커피. 추천합니다. The Aarburg Hotel & Café






인터라켄에서 베른까지 40km 한 시간도 안 된다. 친구와 와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베른에는 그레고리 교수가 있다. <리스본 야간열차>의 주인공 그는 다리에서 눈물을 훔치는 여자를 만난다. 그 길로 그는 수업을 빼고 학교를 나와 리스본에 가는 야간 기차에 몸을 싣는다. 베른에서 나는, 인생에서 큰 전환점을 맞은 그레고리 교수를 생각하기에 지나치게 불안했다.




베른 시내에 들어가 좁은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아버지를 위해 화장실을 찾고, 그 비싼 도시에서 사돈어른은 퐁듀를 먹어야 한다고 하고, 춥지는 않아도 따뜻하지 않는 흐린 날에 유네스코에 등록된 옛 시가지를 걸어도 마음이 그리 가볍지 않았다. 결국엔 우린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남은 밥과 국을 남은 소고기를 꾸역 꾸역 아침으로 먹은지라 배가 안 고팠다. 어차피 부모님이 서양식을 내키지 않으니 넷이 햄버거 세 개를 시켰다. 아버지는 햄버거를 젓가락으로 빵과 패트와 샐러드를 따로 드셨고, 엄마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딱 한입 드시고 감자튀김만 드셨다. 남은 것만 먹어도 배불렀다. 그래도 먹은 건 먹은 거라고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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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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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 찍고 스트라스 부르로 향했다.


“여는 날이 이상하다. 어두컴컴하고 흐리고..”


“여름이 좋다고 했잖아요. 유럽은 무조건 여름에 와야 한다고요.”


그들이 그러고 싶어서 겨울에 여행을 온 것은 아니다. 이미 겨울에 유럽 여행을 왔고, 그래 봤자 유럽 겨울 날씨가 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 원래 날씨가 이래요. 계속 이럴 거예요. 일조량이 적고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대요. 그러니 날씨는 상관 말고 할 일을 해야 해요.”라고 했지만 과연 그 말이 그들에게 얼마나 깊이 들어갈지는 모를 일이다.


“조깅 하러 나가잖아요. 햇빛 안 날 때는 모른 척하던 사람들이 햇빛만 나면 할로, 하고 흥이 나서 인사해요.”



“아버지 이제 이 국경을 넘으면 프랑스예요.”


안개가 낀 너른 푸른 벌판을 보시며 아버지는 감탄했다.


“와, 땅 너르다. 저기다 뭘 심었을꼬? 벼는 아닌데, 밀인가?”


“푸르른 건 유채꽃, 아니면 사탕무예요. 적어도 독일에는 그래요. 어디 물어볼 때도 없고, 여기는 프랑스라 농부들이 영어를 알리 없고..”


“땅이 넓으니 큰 기계로 한 번에 일 다 하고 또 많이 수확해서 그래서 잘 사는가 보다.”




아버지는 농부이다. 그는 농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땅과 그 위에 작물, 농사법, 계절과 기후,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소득은 그의 삶의 근간을 이뤘다. 차에만 타면 잠을 자는 엄마의 옆구리를 아버지가 찌르고 말한다.



“어허, 좀 일라 보라니까. 저기 들이 얼마나 좋은지 좀 봐. 어허 잠보라. 일어나라캐도 안 일어나.”



아버지는 네 엄마를 보라는 듯이 엄마 흉을 보며 눈이 없어지고 웃으신다.



한참 자고 난 엄마가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나서 들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중국처럼 너르네. 끝도 없다. 저 푸른 게 저게 뭐지?”



엄마도 농부의 아내로서 그녀가 짊어진 농부라는 지게로 보이는 세계에 응답한다. 부모님은 들과 식물들을 보면서 눈이 반짝거렸다. 적어도 이 정도는 내가 알 수도 있고 익숙한 것.이라는 자신감이 그 눈빛에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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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조차 추워보입니다.






스트라스 부르 시내에 들어섰다. 시내 운전을 꺼려 하시던 사돈어른이 운전을 하던 중이다. 호텔까지 3km 남기고 좌회전을 신호를 받았다.



“여기서 좌회전하셔야 해요. 지금 하시면 돼요."



사돈어른은 머뭇거리며 좌회전해서 들어갔다. 직진 일 차선이 좁아 보였다. 곡선에 맞춰 우리는 일 차선에 들어가는 중, 뒤에서 차 한 대가 우리 차 옆으로 바짝 붙어서 들어왔다.


“어……. 어…..”


사돈어른은 왼쪽을 보느라 못 봤다. 내 목소리를 듣고 그녀는 놀라서 멈췄다.


그 차가 우리 차 오른쪽 미러를 스치고 차 옆에 섰다. 미러가 꺾였다.


일단 조금 앞에 가서 정차했다.


일단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내렸다. 얼른 그 차 앞으로 달려갔다.


“괜찮아요?”


일단 차 손상을 확인했다. 차는 허름했다.



괜찮다고 말하는 남자는 외국인이다. 독일 국경, 언젠가 독일 지역이었기도 하고 이제는 프랑스인 이곳에서 아랍 남자는 어눌한 독일어를 했다. 보조석에는 흑인이 앉아 있었다.


“괜찮아요. 그냥 가시면 됩니다.”


“네, 정말 괜찮은가요?”



그러면서 우리 차를 봤다. 정말 살짝 긁긴 것 같다. 그전에 이미 긁혀서 어디가 새로 긁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돈어른은 차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나와도 도와줄 수 있는 건 없다. 나는 내 사고가 났을 때의 시누이처럼 온몸에 털을 쭈뼛 세우고 상황을 흡수했다. 사고 차량 주인이 일단 외국인이라 안심했다. 그의 독일어가 나보다 하등 나을 것도 없었다.


남자가 물었다.


“어디 가세요?”


“호텔 가는 중이에요.”


“주소가 어떻게 돼요?"




갑자기 주소는 왜 묻는 것일까. 추후에 문제가 생기면 거기로 찾아오겠다는가. 의중을 몰라 일단 동작을 늦췄다. 사기를 치려고 하나. 그러면서 주소를 찾으려고 차에 잠시 가서 핸드폰을 뒤졌다. 주소를 찾는 척 모르는 척 물었다.


“그런데 주소는 왜 물어보세요?”


도가 튼 사기꾼은 이런 것도 술술 넘기며 거짓말을 할 텐데… 의심되는 걸 대 놓고 묻은 내가 바보 같았다. 그러나 말은 이미 내 입을 떠났다.


“호텔 찾는 거 도와드리려고요.”


“네?”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얘네들이 사기꾼은 아니구나 하고. 마음을 놓았다.


"아니에요. 너비가 있어서 따라가면 돼요. 괜찮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5분 대화가 흘러갔을까. 그들이 사라지고 별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안심했다. 보조석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다 드디어 사돈어른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숙아, 나 놀래서 운전 네가 해야겠다.”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나는 아직도 여기 신호가 적응이 안 돼. 신호등이 위에 안 달리고 옆에 달려서 낯설어. 그리고 좌회전 신호, 한국에는 좌회전 신호가 있는데 여기는 없어. 그게 머리로는 아는데 꺾으려면 왠지 눈치를 보게 된단 말이야. 너무 어색해. “


“네? 저는 이게 너무 자연스러워. 한국 가면 이상해요.”



“아까 전에도 그거 주춤거리다가 늦게 들어간 거잖아. 시내에서는 계속 네가 운전해야겠다.”



나는 파리까지 운전이 남아 있어 겁을 먹었다. 그 사이에 숙소는 다가오고, 일방통행에 자전거 도로에 한꺼번에 자전거 세 대가 지나가는 복잡한 초등학교 길에 가까웠다.



“여기가 내 나라가 아니다 보니, 왠지 쫄게 돼. 사고가 난다고 치면 사고 처리가 곤란해지고, 너는 그래도 도와줄 남편이 있지만, 나는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저도 여기서 외국인 건 마찬가지예요. 사고가 난다면 저도 불리하고요. 남편이 있기야 있지만, 한국 국적이고 다를 게 하나도 없는걸요.”


“너 한국 국적이야? 나는 한국 이중 국적 되는 줄 알았어. 그래서 네가 복수로 가지고 있는 줄 알았지.”


“그래도 남편이 있으니 도와줄 사람이 있는 거랑은 다르지.”


“보험 처리 다 할 텐데. 다른 건 없지 않나요?”



“미국에서 소매치기를 당했었거든. 거기에 내 신용카드가 들었어. 그때 잠시 여행을 갔었는데, 하루 잃어버리고 몇 시간 만에 잃어버린 거 알고 카드 회사에 전화해서 차단을 했거든. 그런데 그 사이에 그걸로 그 도둑이 이케아에서 가구, 무슨 전자 제품 등으로 300만 원 치를 긁은 거야. 그런데 그때만 해도 결제한 후에 바로 이체가 안되고, 카드사에서 그 회사로 결제되는 시간이 걸리니깐 신고를 빨리하고 하니 90만 원만 끊기고 다른 건 내가 안 내도 됐어.”


“범인이 흑인이었는데, 이모하고 조카들은 다 거기서 살고 있어서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도와주려고 하고 경찰에 신고했는데 걔네들이 그걸 열심히 잡겠어? 그냥 하는 시늉만 하고, 잃어버린 사람만 억울한 거야. 그래서 말이야 외국에서 살 때, 경찰은 자국민 편들지 외국인 편 안 들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경찰이 과연 어느 쪽에 설까. 아무래도 법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 사람의 판단 기준에서 간다고 하겠다. 그런데 그 사람이 친절하고 좋은 동양인을 많이 알고 있고, 문화를 접한 기억이 있다면. 그래서 프렌들리 하다면. 그런 가정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좀 드물 뿐.




언어가 그나마 되니,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되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는 언어도 무용지물이다. 그것보다 단단한 심장과 냉철한 판단만이 자신을 구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나를 아끼고 보호하려는 가족과 친구, 친지일 것이다. 험한 세상, 사람 말고 더 무서운 것도 없지만 아름다운 세상, 사람 말고 더 좋은 것도 없다.




“내가 핸들을 왼쪽으로 꺾다가 뒤에 오는 차를 못 보고, 네가 어…. 하는 소리에 정신이 나서 멈췄어. 전혀 못 보고 있었고. 그런데 말이야. 그게 좌회전 신호인데 뒤에서 어떻게 그렇게 차가 바짝 붙을 수 있지?”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 우선이고 그다음이 직진 신호 받는 거 아니에요?"


“걔가 잘못한 거야. 그러니깐 도와주려고 한 거고.”



우리는 한참 그 사건을 되풀이해서 회상하고 따져 보았다. 뒤에서 박은 그 차 주인에게 과실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뒤 상황을 따지지 않고, 저자세로 나갔던 게 아쉽다. 외국인이라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불리할 것이라는 가정과 불안이 그런 태도를 취하게 했지 않나. 다행히 약간의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스크래치였다. 사고 부상이나 인명 피해 아무것도 없었다.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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