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유럽 여행
숙박안 하는 호텔에서 공짜로 티브이 보기,
야경을 보러 가는 중
“하고자 하는 일을 막아서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 그걸 마가 낀다고 하는 거야.”
엄마는 인생에 도가 튼 것처럼 말했다.
“파리는 대도시이고, 기름값도 비싸고, 주차하기도 어려워.”
친구 미겔의 말이 귀에 남는다.
그늘이 한 개도 없고 먹을 데도 없다고 시어머니는 해변에 오래 있기 싫어했다. 한 시간 타고 가서 한 시간 놀고 다시 돌아오는 여정보다 하루 종일 브라질 해변을 즐기고 싶었던 나는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를 대동하고 가까운 해변을 찾았다. 반나절을 놀고 나니 지쳐서 좀 근사하게 먹어야 했다. 모래사장에서 눈만 돌리면 가까운 곳에 식당 하나, 키 큰 나무가 많아서 그늘도 넓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싶은 부분, 자신이 편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타인에게 조언이라고 주는 것이라도 그렇게 값진 것이면, 돈을 받고 팔지. 그들의 조언을 꿰뚫어보면 그 사람의 한계와 저항기제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말 하고 싶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야 한다. 어떨 때는 그들의 조언을 귓등으로도 듣지 말아야 한다.
스트라스 부르에서 파리까지는 500km, 적어도 여섯 시간의 길이다. 그날은 일찍 출발했다. 중간에 화장실을 가고 커피를 마시고 해도 오후 3시에 도착했다. 도시에서 나오는 길과 고속도로에 올리는 일까지는 내가 맡았다. 400km 이상을 사돈 부인은 프랑스 130km 고속도로 제한 속도를 상기해가면서 미끄러지듯 잘 달렸다.
“날이 갰는지 아닌지 알 수도 없어. 또 자? 일어나서 좀 봐봐. 구경하러 온 사람이 만날 잠만 자.”
“안개가 껴서 무슨 작물을 심었는지도 안 보이네….”
“프랑스 길은 독일보다 더 좋아. 쭉 썰매 탄 듯 가잖아.”
“여기는 그래도 요금 내야 하잖아요.”
“아, 손끝 1cm가 모자라.”
사돈어른은 안전벨트를 끌러 정산기에 카드를 갖다 댔다.”( 프랑스 고속도로는 구간에 따라 요금을 정산해야 합니다. 신용카드를 쓰는 게 빠르고 편리합니다.)
반나절과 오후 두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고 세 시에 파리에 들어갔다. 파리를 동그랗게 둘러싼 순환 도로에 차가 너무 많아서 운전하는 사돈어른보다 내가 겁을 먹었다. 그녀는 도시 운전보다 순환도로에서 운전을 더 잘 했다.
"끼어들기를 할 때, 목표를 정해. 오른쪽 저 승합차 뒤에 들어간다고 치자. 그럼 앞으로 좀 더 나가서 내 차 뒷라이트가 그 차를 지났을 때 들어가야 해.”
“제가 운전을 안 한 건 아닌데, 늘 가던 곳만 가고 고속도로 경험이 없어서, 이런 데서는 정말 벌벌 떨어요.”
“아직 초보라서 그런 거야. 운전 감각을 키우려면 많이 해볼 수밖에 없어.”
“그런데 뒤 와이퍼는 어떤 거야?”
“글쎄요. 어떤 거더라…”
뒤 창에 눈이 쌓여도 내려서 치우지, 와이퍼 작동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 그냥 불편함을 감수했지 그걸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던 내 불찰이다. 사돈어른은 감각적으로 이것저것 건들더니 이미 알아서 아, 이거구나 하고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내가 이런 건 잘 해. 옛날에는 차 직접 수리하는 사람들도 많았잖아. 그것까지는 아니라도 엔진오일 체크하는 법, 와이퍼 갈고 그런 일은 직접 다 해. 한 번은 우리 집에 문이 고장 났어. 내가 원주 시내 자재 시장에 가서 문짝 차로 실어서 치수 재고 자르고 해서 문 해서 달아 놨잖아. 가게에 청년 직원 있는데, 이것저것 설명하고 그럴 바에는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몰래 잘 때 조용히 그걸 했지. 일어나서 보더니 ‘아이고 사장님은 이걸 어떻게 다… 아 진짜 대단하시다.’라고 하더라고.”
“아니 진짜 그건 정말 대단하세요.”
남편이 집을 수리하면서 목공 일, 페인트칠, 간단한 배선 연결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잘 안되면 짜증 내기 일쑤고,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스트레스를 그대로 흡수한 기억들이 스쳤다. 무엇보다 그걸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실제로 해내는 것도 대단하다.
“일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야. 다 머리지. 일머리가 있으면 그거 어렵지 않아.”
“이제 다 왔어요. 여기만 돌면 주차장이에요.”
우리 여행에서 가장 큰 걱정, 파리까지의 운전을 사돈어른이 해줘서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웠는지!
“정말 잘 하셨어요. 수고하셨고요. 덕분에 정말 잘 왔어요. 이제 마음 탁 풀어도 되겠어요.”
이번엔 어떻게 숙소의 키를 받고 어떤 동선으로 움직여야 할지 그 전날 밤 시뮬레이션을 다 했다. 인터라켄과 스트라
스부르의 몇 가지 실수는 나를 좀 더 능력 있는 가이드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사돈어른이 하고 싶은 일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 일이 스트라스부르의 차 충돌처럼 부딪치고 있었다. 사돈어른이 맡아준 운전, 나는 조수석에서 서포트를 하고 난 후, 무엇보다도 그녀의 공에 감사하고 칭찬하는 말로 그 충돌이 한꺼번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좁고 깊은 지하 주차장에 들어갔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이라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지하 1층, 2층에도 주차공간이 없고 빼곡하다. 3층에 겨우 주차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다. 계단으로 다시 한번 밥솥과 캐리어 세 개, 온갖 짐들을 아파트까지 옮겨야 했다.
일단 우리는 배가 고팠다. 밥을 먼저 먹어야 기분이 좋아지고 좋아지고 서로의 불편함을 전가시키지 않는다는 건 아이들과 여행하면서 배운 또 하나의 팁. 바로 앞에 있는 중국 패스트푸드에 들어갔다. 작은 가게 유리 진열관에는 각종 채소 볶음과 고기볶음이 작은 뷔페집을 축소해놓은 것 같았다. 고기와 감자보다 밥과 채소를 더 좋아하는 우리 아시아인 넷은 허술한 의자에 걸터앉았다.
나는 앉을 틈이 없다. 벌떡 일어서서 주문을 하러 갔다. 아, 무게를 재서 계산하는 시스템. 여기는 독일어가 당연히 안 통한다.
“중국어 할 줄 아세요?”
유럽에는 베트남과 태국, 중국 사람이 잘 섞여 있으므로 언제나 물어야 한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데 중국어로 물었다.
그녀는 다행히 중국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 귀에는 북방에 가까운 중국어 악센트를 가지고 있어서 교육을 받은 촌사람이거나 원래 도시 사람이다.
오랜만에 쓰는 중국어는 녹슨 것처럼 목에서 까끌까끌했다. 문법이 틀렸다. 단어도 생각이 안 났다. 흰밥과 볶음밥이란 단어를 헷갈려 하는 사이에 손님들이 한 명씩 유리 문을 들어와 내 주위를 에워쌌다. 내가 주문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아버지 오세요. 뭐 드실 거예요?”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망설이며 무엇을 먹을지 고를 때만큼 초조하다. 작은 식당을 가득 채운 다른 손님들의 열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흰밥과 고기볶음을, 엄마는 볶음밥과 브로콜리 볶음을, 사돈어른은 볶음밥과 새우튀김과 콩 볶음을, 나는 볶음밥과 버섯볶음을 시켰다. 음식을 네 번씩 식탁으로 나르고 한숨이 등 뒷덜미에 땀이 난다. 머슴밥처럼 먹을 수 있는 기운으로, 그들이 먹다 남긴 것까지 천천히 다 먹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아, 진짜 밥 먹은 것 같다.”
중국식 식사가 서양식보다 나은 게 틀림없다.
계산을 하고 일단 숙소의 키를 받으러 가야 한다. 어느 호텔 구석에 키 박스가 있고 그걸 가지러 가는데, 음료수 판매기 잔돈 구멍 같은 그 작은 공간은 텅 비었다. 물어보려고 옆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검은 유니폼을 입은 어딘가 한나라는 이름이 잘 어울릴 것 같은.(그래 내 고향 친구와 닮았다) 눈이 너무 크고, 피부는 동양인이 창백할 경우에 보이는 그런 안색이었다.
“나는 그 박스에 대해서라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한테 요금을 내는 것도 아니고요.”
“올롸잇.” oppala(독일에서 놀랐을 때 하는 말, 어마나 정도의 뜻) 아참 여기는 프랑스니깐 울랄라..를 해야 했다.
당신이 나를 도와주고 싶지 않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간 이곳에 묵고 간 수많은 숙박객들이 똑같은 질문을 했겠지요. 선한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했을 거고, 이제는 그것에 지쳤다는 의미이군요. 그렇다면 저는 다른 식으로 당신에게 접근할게요.’(이건 다만 속으로 한 말이다.)
“괜찮아요. 연락해 보면 되지요. 그런데 여기 뭐 하는 곳인가요?”
“여기요? 보시다시피 호텔이고요. 저기 로비도 있고 커피도 팔죠. 나는 여기 점원이고요. 어디서 왔어요?”
“전 한국에서 왔어요. 부모님들이 저를 방문해서 파리 여행을 하려고요.”
“여기 주차비가 엄청 비싼 거 알아요?..”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냥 killing time은 아니라.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부모님은 밖에서 시장 구경을 하고 있다. 밥을 먹여 놓으면 기분이 좋아 한참 알아서 노는 아이들처럼 풀어놓았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내 유희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저는 반은 일본 사람이고, 반은 유럽인 피가 섞였어요.”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나도 일본에서 유학한 적 있는데,,라며 우리는 공통점을 찾아냈다. 부모님은 이혼을 해서 그리스에서 일본인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그녀의 영향으로 자기는 어쩔 때 동양인의 겸손함이 저절로 나온다고, 그게 너무 싫었다고. 그리스는 IMF를 겪었고 경제적으로 직업을 구할 수 없었던 까닭에 또 그런 자신이 특이한 존재가 되는 게 싫어서 파리라는 이국에 오게 됐단다.
좀 달라서 특별하게 보는 시선이 싫었을 그 마음, 무명인이 되고 싶던 그 마음.
나와는 반대이다. 나는 좀 달라서 나를 간섭하거나 그들과 같은 잣대를 대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쨌든 다른 의도에서 우리는 같은 곳에서 만났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그녀는 차가웠던 첫 마디를 완전히 잊게 할 만큼 친절했다.
“파리 있는 동안 즐거운 추억 만들어. 필요하면 너네 부모님 여기 로비 와서 계셔도 돼.”
아니나 다를까. 열쇠를 받을 동안 우리는 그 호텔에 묵지도 않으면서 그 로비에서 어제 놓인 포르투갈과 한국 축구 경기를 보았다. 따뜻하고 아늑하고 낯선 파리의 어느 호텔에서 우리는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열쇠를 받고 문을 열고 들어간 숙소. 높은 현관문 두 개를 비밀번호와 열쇠로 열고 들어간 숙소는 안개에 가리다 나온 마법의 산처럼 계단이 선사했다. 다시 말하자면, 캐리어 세 개, 노트북, 내 옆으로 메는 스포츠 가방, 밥솥, 각자의 토드백 두 개. 음식 박스이다. 여든이지만 아버지는 짐을 들어 올리겠다고 호기 좋게 들기 시작했다.
“제가 할게요. 아버지 놔두세요.”
엄마는 멀찍이 물러났다. 사돈어른도 들었다.
계단이 너무 가파랗고 좁았다. 한발 옮기기에도 어려웠다. 일단 캐리어를 올리고 3층에 갖다 놓고 내려오는 사이, 아버지가 이미 2층까지 짐을 끌어올렸다. 내가 한두 번 더 가고 짐을 다 올리고 난 다음에.. 아버지는 소파에 누우셨다.
“아 가슴이 팍 막히네. 무거운 걸 들었다고 그런가 봐.”
짐을 각자의 방에 두고, 소파에 앉아 있는데 금방 들어오면서 켰던 전등이 나갔다.
“무슨 일이에요?”
“전기가 나갔네. 주인한테 연락해 봐.”
그러면서 사돈 부인은 어떤 일인지 한번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음성 메시지를 주인에게 보내고 기다리는 중. 그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길이 없는지. 어떤 상태인지 비디오를 찍어달라고 했다. 숙소의 무선 인터넷도 연결을 못했는데, 데이터 요금이 많이 나갈 것을 염려해 망설이던 중…
“이거 봐. 이 포터에 물이 묻었나 봐. 엄마가 물 끓이다가 일 저질렀네.”
사돈어른이 말했다. 주인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중 어디에서 진기 차단기가 있을지 집안을 다 뒤졌다.
“아 여깄네.”
사돈 부인이 흰 벽에 위장한 전기박스를 찾았다. 그녀의 눈썰미에 감탄했다. 차단기를 다시 올렸다.
“엄마는 일을 잘 저지르는구먼. 그러면 내가 처리해야 하고.”
“이것 봐. 전기 포터 안에 열 선이 그대로 드러난 이런 포터를 쓰니깐 차단기가 당연히 내려가지. 이거 앞으로 쓰지 말자.”
소파에 앉아 조금 쉬던 아버지가 리모컨을 한참 동안이나 조작하고 계시더니 말했다.
“이거 왜 안 되지? 한번 해봐. 티브이가 안 나와.”
스트라스 부르에서도 리모컨 때문에 한참 시간을 허비했다. 이번에는 좀 더 전투적으로 앉았다. 먼저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어보고, 사돈어른의 감각을 또 빌리기도 하고 혼자 하기도 하고 30분이나 시름을 했을까. 어찌어찌하다. 결국엔 해냈다.
“아버지, 이제 키고 끄기만 하세요. 알았죠?”
“근데 말도 못 알아듣는데 그걸 왜 보고 계세요?”
“그림이라도 보고 있어야지. 아니면 허전해."
“가슴은 좀 괜찮으세요?”
고기 상추쌈을 먹고 배부른 우리, 힘이 났다.
내가 사돈 부인에게 말했다. 여행 시작 부터 야경을 보러 가야한다고, 초저녁 잠을 자지 말고 조르던 그녀의 소원을 성취해줄 참에 나는 기쁘게 말했다.
“우리, 진짜 야경 보러 가요. 스트라스부르가 아니라 파리 야경이 진짜요.”
그녀의 발걸음이 신났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아니, 나는 좀 쉬어야겠어.”
“같이 가십시다. 사돈 부인.” 찡그린 엄마는 그래도 따라나섰다.
우리 셋의 파리 야경 구경이 시작됐다.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