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불여일견

부모님과 유럽여행

by 원더혜숙


“어제 영하로 내려갔대.”


“어디 말하는 거야?”


식탁에 앉아 핸드폰으로 다음날 어디 갈지, 어떻게 가야 할지 알아보는 중이었다.


“우리 동네 말이지. 어디 말하기는.”


“엄마 여기 파리에 있으면서 왜 촌에 날씨는 알아봐?”


“너거 엄마가 원래 그렇게 이상해.”


사돈어른이 옆에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대꾸했다.


“그리고 엄마, 유튜브 뉴스 같은 것 좀 보지 마. ‘하희라와 최수종이….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 사람들 궁금하라고 짜깁기한 거고, 반복만 하잖아. 남의 일인데 그거 봐서 뭐해?”


“심심할 때 보면 재밌어.”


아버지는 소파에서 암벽 등반 프로그램을 보는 중이었다.


“아버지 티브이로 프랑스어 배우시는 거예요?”


“사람이 저까지 올라갈지 아닐까 보는 거야.”


한식을 배부르게 먹은 신데렐라들은 숙소에서 각자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집에 있는 남편과 아이가 걱정됐다. 생산 라인 기계가 고장 나면 즉시 가야 하고, 홈 오피스가 불가능해 남편은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가 첫째 하교 시간을 맞춰 귀가해 점심을 차려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 나가기 바쁜데 샌드위치도 싸야 했고, 방과 후 두 번의 축구와 보이스카우트, 기타 수업을 챙겨 보내야 했다. 문제는 그에게 차가 없다. 임무 사이에서 다망한 남편의 모습이 그려졌다. 더 큰 문제는 이게 겨우 부모님과의 여행 시작이었으며, 아직 이탈리아 6일 여행이 남아있었다. 남편과 상의를 하려고 전화했다.




“그거 알아? 내가 다 해야 해. 화장실 찾기. 그게 얼마나 힘들 줄 알아. 나는 그 조급함과 초조함을 못 견디겠어. 그게 큰 숙제 같고 그걸 해결하면, 그게 잊을 만하면 한 시간 후에 다시 해야 해. 남자와 여자 화장실을 아버지가 잘 구분을 못 하셔. 내게 정말 익숙한 그런 일을 그들은 모르니깐 하나씩 가르쳐줘 줘야 하고, 그걸 모르신다고 화를 낼 수 없잖아. 지하철 표 끊기, 한 명 한 명씩 들여다 보내기, 표 잘 간수하기 그리고 사람들이 어른들에게 뭐라 그러면 대변인처럼 나서야 하고, 다리 아픈 엄마를 위해 의자를 찾아야 하고. 아…당신이랑 여행할 때가 수월했어. 우리는 진짜 잘 맞는 콤비지. 호텔 체크인은 당신이 하니 내가 긴장할 필요도 없고. 당신이 운전하고 나는 호텔 예약에 길 찾기, 내가 지치면 당신이 해주면 되니깐. 좋았는데.. 집에는 어때? 당신 괜찮아?”




“당신이 집에서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지 알겠어. 일을 안 하면 할 수 있겠는데, 일도 많고, 점심도 안 먹고 집에 와서 애들 밥 챙겨주고 오후에는 방과 후 활동도 챙겨야 하고, 빨래에 샌드위치 싸기, 청소는 아예 못 했어. 힘들어.”


“어떡하지?”




‘내가 그래서 물어봤잖아. 내가 부모님 모시고 여행 다녀도 되겠냐고.’라는 말이 나왔지만 꾹 눌렀다.


“왜, 내가 출장 갈 때 당신도 나한테 전화해서 하루 종일 시달린 이야기하잖아. 그런 거야. 오버하고 극적으로 만드는 거. 어떻게든 되겠지. 오늘은 바네사한테 애들 맡겼어.”




“내가 이탈리아 갈 때는 캐시네에 맡기면 될 것 같아. 내가 물어볼게.”


“거봐, 당신은 내 서포트로 그렇게 쉽게 일한 거야. 내가 아무것도 안 시키고, 신경 안 쓰고 뒤에서 부지런히 움직인 거야. 내 공을 이제야 알겠지?”


그의 공과 내 공의 합, 부부의 협공으로 일상이라는 과제를 잘 견뎠다.


‘당신의 노동 덕분에 내가 편하게 먹고사는 거지. 다 당신 덕이야.’ 그 말을 했던가 안 했던가.






암 것도 안 보이는 파리 하늘






다음날 개선문에 갔다. 파리에서 마지막 날. 에펠탑도 못 본 아버지에게 빠진 거 없이 다 보여드려야 했다. 남산타워, 도쿄 타워 심지어 작은 우리 동네에서도 높은 성에 오르면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파리에서는 몽파르나스 타워, 에펠탑, 개선문에 오르면 파리를 굽어볼 수 있다.




개선문 에투알 광장을 가로질러 개선문에 갈 수 없다. 지하 도로로 내려가서 중앙의 개선문 아래로 올라가야 한다. 처음으로 유럽에서 경로 우대를 받았다. 승강기가 있어 편하게 개선문 위까지 올랐다.




엘리베이터에 잘 생긴 청년 안내원. 그는 관광객들을 매일 볼 것이다. 우리끼리 이야기할 때 그의 귀가 쫑긋했다. “한국어 하세요?” 물었다. 그는 어이없어 웃는다. 딱 맞춰 문이 열리고, 안녕, 키 작은 시몽. 해브 어 굿 데이.


개선문 위에서 보는 샹젤리제가 이렇게 좋구나. 쭉 뻗었다.


한 바퀴 돌고, 사진도 찍는다.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아무것도 안 보인다.


“와, 우리가 언제 안개 낀 파리를 보겠어요.”


“너는 진짜 무한 긍정녀다.”


“사돈 부인, 지금 개선문 지나는 길이 몇 개인지 한번 세 볼까요?”


“내가 금방 셌는데, 스무 개예요.”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14개인데. 중간에 겹치는 걸 두 번 세었구먼요."


최종적으로 누가 이겼는지 모른다. 확실히 둘 다 틀렸다.




지식백과로는 12개 도로가 별 모양을 이룬다고 한다. 그래서 Etoile(별) 에투알 광장이라고 불린다고.


개선문이 전쟁에서 승리한 걸 기리기 위한 것으로만 알았지, 벽 내무에 새겨진 수많은 이름이 누구의 것인지, 혹은 그 아래 프랑스 국기 옆에 횃불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몰랐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유홍준 전문화부 장관은 말했다. 그것 때문에 건축물이나 성당 구경을 그냥 눈으로 볼 때 얼마나 양심에 찔렸는지.


“숙아, 엄마한테 이런 걸 설명해 줘.”


“저도 잘 모르는데요. 이게 뭘까요? 일단 사진 찍어놓으세요. 제가 나중에 찾아볼게요. 뒤늦게 하는 게 진짜 공부라고 생각해요.”




백문이 불여일견. 일견 후 백문이 생긴다. 찾는 과정에서 습득한다.


개선문은 나폴레옹 1세의 명령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1836년에 완공되었고,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고 사망하였으므로 실제로 본 적은 없다고 하나, 그의 사후 개선문을 지났고 하니. 그리 운이 나쁘지는 않았던 듯. 벽면의 수많은(정확히 558명)의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프랑스 혁명에서 나폴레옹 1세까지 128번의 국가 전쟁에 참전한 장군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또 개선문 아래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전사한 무명용사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이 횃불의 주인인 듯하다.


높이 50m, 폭 45m 거대한 건축물은 웅장하다.


평지로 펼쳐진 도시 중심에 우뚝 솟는 돌 건축물의 위용은 어마하다.




에투알 개선문은 로마 티투스 황제 개선문을 그대로 본떴다. 로마에 가서 티투스 개선문을 못 보고 왔다. 모르면 보아도 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도 대충 어디에 있는 줄을 아니깐. 다행.


에투알 광장은 샤를 드 골 광장이라고 한다.


샤를 드 골은 파리 공항 이름이기도 한데, 알고 보니 프랑스 초대 대통령이자 장군이다. 세계 2차 대전에서 파리를 해방시킨 장군으로 개선문을 행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맥아더 장군, 뭐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있으려나.




“샹젤리제 거리는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 치세 하에 비로소 사회·상업적인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나폴레옹 3세는 에트왈 광장의 공사를 완공하였다. 에르메스(Hermès), 루이뷔통(Louis Vuitton), 샤넬(Chanel), 디오르 등 고급 의상실과 부티크 등이 즐비한 그랑 불바르(대로)의 눈부신 화려함은 관광객들의 눈과 마음을 들뜨게 한다.”<네이버>




개선문에서 보는 샹젤리제 거리, 에펠탑, 그리고 멀리 다른 것까지 보일 줄 알았더니.


안개, 안개, 악천후. 우리는 파리 여행에서 악천후를 선물로 받았다.


개선문은 높아서 춥기도 춥다. 그야말로 대~~충 보고 대~충 사진 찍고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출발.




지하철 Hotel de Ville에서 내려, 파리 시청을 구경하면서 Pont d'Arcole를 지나며 센 강의 삼각주를 본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삼각주 위에 세워졌다. 360로 뱅글뱅글 돌아가면 옛 유적이 아닌 곳이 없다. 거기서 루브르 박물관도 가깝고, 세인트 샤펠레(Saint Chappelle), 국립 중세 미술관….. 돌아와서 지도로 보니 못 가본 것이 수두룩하다.







작게 시계 밑에 보인다. 자유, 평등, 박애






파리 시청이 의외다. 네오 르네상스 식 건축물이라고 하고 1357년에 지어졌고, 화재로 손상되었던 걸 1882년에 복구해서 지금의 모습이라고 한다. 건물 중앙 시계 밑에, 프랑스 혁명의 3대 정신,”자유, 평등, 박애”가 새겨져있다고 한다. 아, 또 놓쳤다!! 글을 쓰면서 안 게 어디냐며 또 안심.



파리 시청에서 우리 전체 사진을 찍고 싶어서, 지나가는 흑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알았다며, 그는 내 부모님과 포즈를 취했다.


“어? 이게 뭐예요?”


웃긴 놈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우리 사진을 찍어줬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흑인을 보면 나는 내 케냐 친구처럼 가깝게 느낀다. 그랬더니 미국에서 왔단다. 미국… 그리고 할 말이 없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오지, 그럼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 텐데.







노트르담 성당. 2019년 화재 당시를 보여주고 보수 과정을 설명하는 천막이 설치되어 있다.






노트르담 가는 길, 10년 전 그때 남자친구였던 남편의 팔짱을 끼고 이 길을 걸었다. 소설에서 유럽의 강과 다리는 중요한 배경인 경우가 많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에서 토니는 세 번 보어(Severn Bore)(영국 글로스터셔)를 베로니카와 보러 간다. 죽기 전에 봐야 할 자연경관에 속한 바다에서 강까지 밀려오는 파도. 장관은 토니가 무심코 지나친 인생의 사건들이 나중에 큰 의미 내지 충격을 줄 거라는 상징을 담았다. <리스본야간열차>에서 그레고리우스 교수는 비 오는 베른 어느 다리를 지나다, 다리 위에서 젊은 여자가 편지를 읽고 뭉쳐서 던져버리는 것을 본다. 젖은 머리카락, 삑삑 소리 내는 구두,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완고하고 민접한, 그런 분노를 읽는다. 그는 우산을 던지고 그녀를 붙잡았다. 자기 투영의 순간이다. 그레고리우스 그의 삶, 지나친 기회에 꿈이라고까지 하기엔 너무 싱거운 열망, 을 감추었던 그 자신에 대한 분노를 그녀의 얼굴에서 보았다.




헤어지기 딱 좋은, Pont d'Arcole 삼각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관광객들이 지나가며 여자의 흐르는 눈물을 훔쳐본다. 남자는 당황한 그의 어깨를 바람으로 맞으며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한다. 이런 프랑스 소설이 있으려나, 파리가 배경이어야 하는데…








트로카토로 가든에서 에펠탑까지 걸었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 길에 야바위 꾼을 발견했다.


외국인인 거 금세 표가 나는데, 영어로 말하면서 여럿이 둘러서서 그릇을 바닥에 놓았다.


50유로를 걸었다. 10유로를 걸었으면 좀 믿었을까.


우아,,, 과장되게 추임새를 넣었고, 3류 연기자처럼 놀라면서 주위에 사람들이 지나가는지 지켜보았다. 요즘도 야바위꾼에게 걸리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세계 어느 관광지나 비슷하다.


또 역시 파리는 에펠탑 열쇠고리를 파는 흑인들이 많다.


“나 샀어요.”라고 말하면 그냥 쉽게 물러선다. 그 정도면 예의 있는 편.


이탈리아에서는 더한 일을 경험했다. 나라마다 문화와 사기 수법도 다르다. 그 나라 사람의 성향에 따라 진화한 게 아닐까. 모든 걸 다 줄 듯 친절하지만 그 뒤에는 사기는 이탈리아 수법. 간단히 물어보고 아니면 그냥 사라지는 젠틀한 것이 프랑스 수법.




아버지가 화장실을 가야 한다고 한다. 독일에는 공중화장실이 작동을 전혀 안 하거나, 유료인 반면에 프랑스는 무료가 많다.


갑자기, 프랑스 공중화장실 이용법.


(프랑스 남부와 파리에서 다 사용해 봤으니, 대체적으로 같은 방식인 것 같다.)



공중화장실 문 쪽에 등이 있다. 사람이 들어있으면 문이 안 열릴 것이요. 초록색, 주황색, 빨간색으로 해서, 한 사람이 나오면 자동 청소가 된다. 초록색 전등으로 바뀌면 들어가면 된다. 자동청소가 좋고 공중화장실 특유의 지린내가 덜 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무료이니 무한한 똘레랑스 하자. 인내하는 자가 화장실을 쓸 수 있다.







다리에서 에펠탑을 올려다본다.


봉주르? 에펠탑 끝이 안 보인다.


상하이 동방명주, 상하이 세계 금융 타워(492m)도 날이 흐리면 안 보였다.




1889년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 탑이 만든 거대한 철탑. 300m 높이에 이른다. 당시 국력을 과시할 요량으로 파리 엑스포에 전시하려고 세워졌다. 미국 독립 전쟁 승리 1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 목재 뼈대를 이 사람이 만들었다고 한다.



베르사유 궁전도 못 들어가. 에펠탑도 제대로 못 보고, 대성당도 화재로 공사 중이었고…


파리에서 운이 참말로 좋았다.



사돈어른이 크레페와 따뜻한 추로스를 사자고 했다. 비쌌다.


먹기 싫었지만 기름에 튀긴 설탕 묻힌 추로스를 먹고 나니 또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은 그 맛이다.


제대로 본 것 없이 춥고 힘들 때 먹는 추러스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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