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노인들의 유럽구경(시노유)
삐걱삐걱 갈색 나선형 나무 계단을 내려간다. 엄마가 힘겹게 오른 이 계단을 나는 사뿐히 걷다가 잠시 템포를 늦춘다. 이렇게 혼자만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다. 벽에 초록색 버튼을 누르고 삑하는 소리가 나면 3미터 녹색 나무 문을 열고, 세로로 길어서 밀어도 힘이 분산되는 듯한 문을 열고 나가서 다시 한번 금색 버튼을 누르면 초록색 현관 문이 열린다. 왼쪽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이 별처럼 하늘에서 쏟아진다. 애머랄드 푸른 색과 차가운 흰색. 오른쪽으로 돌아 솟아난 안전 기둥(최근 유럽 광장이면 거의 다 설치된) 의 깜빡이는 불을 보고 왼쪽으로 꺾어 슈퍼에 간다. 나는 감자와 무, 당근을 사러 간다. 아니 서점을 가자.
“어린 왕자 있어요?”
“그건 어린이 서점에 있어요. 이길로 나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되요.”
“프랑수아즈 사강, 책 있어요?”
얇은 책을 들었다. 내가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에르노 책을 물어보려는데 그 사이 다른 손님들이 작은 서점을 채웠다. 빈 천가방이 달랑거렸다. 입에서는 저녁에 먹은 고추가루 맛이 남아있는 것 같고, 재킷은 진한 고기 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 서점 문을 가볍게 열고 나와서 슈퍼로 달린다. 아, 시원한 공기. 자유롭다.
가이드, 기차 발매를 하고 어디를 찾아가는 일이 어렵지는 않다. 중국 유학에서 방학 때마다 운남, 신장, 계림, 항주, 소주, 남경, 상해, 베이징, 서안 홍콩, 마카오, 등등을 다닌 나로서는 어디서든 어떻게든 살아남는 방향 감각, 아니면 길을 잃고도 다시 걸어가는 체력과, 어디서든 누구를 잡고 물어보는 뻔치가 생겼다. 아줌마가 되고, 이제는 그걸 더 잘하게 되었으니 그건 걱정할 것이 없었다.
걱정은 다시 운전. 파리에서 5일 여행이 끝났다. 내일 떠나야 한다. 순환도로를 돌아 메츠로 향하는 여정. 올 때와 다르지 않다. 운전 걱정 때문에 구글 네비를 스무번도 더 봤다. 순환 도로를 최대한 짧게 하고 파리를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아침 일곱시에도 어두운 도로에서 차량이 많은 그 길에서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차선을 변경하고 순환도로에서 메츠로 잘 빠져나갈 수 있을까. 최대 고비. 이것만 끝나면 모든 게 완벽한데,,,,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혹시 내일 운전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파자마로 갈아입고, 보청기를 빼던 사돈 어른이 대답했다.
“시내 운전은 나도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내 나라도 아니고 좌회전 신호가 아직도 어색해.”
사돈 어른의 약한 모습에, 젊은 내가 해야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저녁 여덟 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긴장되고 걱정되서, 의식이 사라지고 잠이 올때까지 예상 시나리오를 짰다. 몸은 힘이 솟았지만, 걱정으로 마음이 무겁다.
그날 따라 늦게 일어난 사돈 어른을 재촉하지 않으려고 컨트롤했다. 열쇠는 원래 자리에 넣고, 정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주차비도 정산도 하고 노변에 차를 댔다. 버스 정거장 앞에 두고 짐을 실으려니숙소 앞선 장에 물건을 하적하는 트럭이 그 옆에 서 있어서 밀려서 버스 정거장에 잠시 정차했다. 눈치가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버스가 정차하자 식은 땀이 났다. 아침 일곱 시 반인데도 저녁을 먹고 한참 지난 밤 같았다.
운전석에 앉고 출발!! 시내에서 외환 도로까지는 구간이 짧았다. 잠을 많이 자서 빵처럼 탄력이 붙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당하게 그래도 어깨와 고개는 숙이고 집중해서, 컴컴한 파리를 침침한 눈을 비비며 운전했다. 40분의 운전을 끝내고 고속도로까지 빼고 서서히 안개 낀 고속도로가 밝았다. 사돈 어른에게 운전대를 넘겨주고 나니, 바란 빠진 공처럼 힘이 쫙 풀렸다.
휴게소에 들어서자 빙판길이다. 아버지는 종종 걸음으로 간이 화장실에 갔고. 엄마는 노변에 버려진 장바구니 수레를 요모조모 훑어보고 있다.
“이거 가지고 갈래.”
“어? 이걸 한국에 가져 간다고? 가지고 갈 수 있음 가져가. 얹어.”
“다른 좋은 것 다 놔두고 한국에도 튼튼하고 이쁜 거 많은데 그걸 가지고 간다고 그래요. 엄마도 참, 이상하다.”
사돈어른이 혀를 차며 말했다.
파리에서 메츠(Metz)까지는 334km. 사돈 어른이 쉼없이 달렸다. 호텔에 짐을 내려 놓고. 버스를 타고 메츠 구경을 간다.
아. 햇빛이 난다. 세상에, 초록 이파리가 빛난다.
“파리만 흐린 건가봐요. 아버지 햇빛 보세요.”
“이런 날도 있네. 간만에 보니깐 넘 좋네.”
“아, 따뜻해. 그러니깐 여기 사람들은 해만 나오면 우르르 나온다니깐요.”
걸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왕복 교통 권을 사고 버스에 앉았다.
‘아, 멀리도 간다.’ 시내에서 너무 먼 호텔을 잡은 바람에.
독일 국경에 접한 알자스 지방,(스트라스 부르와 메츠)에는 독일식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고딕 성당, 메츠 대성당 앞에서 부모님을 위한 달팽이, 햄버거, 오븐 감자를 시켰다. 달팽이를 시키니 와인이 딸려 왔다. 친구와 여행 다닐 때는 점심에 꼭 반주를 하고 오후에는 얼굴일 벌겋게 해서 기분 좋게 구경했는데, 여기서는 정신을 놓을 수가 없었다. 파리도 빠져나왔고, 체크인도 했고 버스만 타면 되니 술을 쭉 들이킨다. 블랑크…. 머리가 텅 비면서 하얗게 변하라고 블랑크이겠지(Blanc)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메츠는 파리처럼 사람이 안 많아서 좋다. 여기저기 기욱거리고, 쇼핑한다.
사돈 어른은 비오템 스킨을 사고, 엄마는 볼터치를 사고 나는 벌건 얼굴로 통역하고 아버지는 뒤에서 지켜본다.
“뭐 살게 더 있나?”
“저도 몰라요.”
그 화장품 가게가 그것 같은데, 여러 번 들어가고 가격도 확인하고, 그런 일을 오랜만에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또 독일에 있으면서 꾸밀 일이 없고, 더군다나 화장품 가게 들어가는 것보다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는 게 훨씬 많은 나에게도 너무하다 싶었다.
“엄마 이 볼터치 어때?”
“몰라.”
“아니, 이거 이렇게 발라봐. 그리고 이것도 발라보고, 내가 보기에는 약간 붉은 빛이 있는 게 피부톤이 살아나보이는데?”
“사돈 부인이 피부가 검으니깐, 그래, 그게 잘 어울리네.” 사돈 어른이 거들었다.
“엄마는 어떤 게 마음에 들어?”
“몰라.”
“모르긴 뭘 몰라. 잘 봐봐. 그럼 다시 한번 발라보자.”
엄마는 화장품 가게 가서 친구들이 손등에다 발라주고 봐주면 뭐가 괜찮다고 해서 쇼핑하는 대학시절의 나와 닮았다. 자기 취향이 없고 그냥 필요해서 사는데 미적 감각은 커녕, 그게 있어야 하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모르쇠로 일관한다. 버려진 장바구니에게는 그렇게 열심히 쳐다보더니.
“이거 넣자.”
그래도 마음에 드는지, 우리가 추천한 걸 사기로 했다. 한참 동안 화장품을 고르는 데 지친 나, 계산하는 점원 아저씨의 겨드랑이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잘 빠진 검은 조끼와 검은 바지. 날렵한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은 그. 코와 귀에 피어싱을 하고 머리는 민트색 스포츠이다. 눈에 스모키 화장을 했고, 눈썹과 구레나루는 금방 다듬은 것처럼 예뻤다. 잘 생겨서가 아니라 자신을 치장하고 다듬는 그 애씀이 예쁜. 그의 허리춤에는 여러 개의 붓과 펜슬이 꽂혀 있었다. 그래 당신은 화장도 잘 하겠군요. 카드를 쥔 그의 손매가 곱다.
여유있게 시장을 노닐고, 구경을 하다 Nuogat를 파는 늘씬한 프랑스 여인이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간혹 독일에서 프랑스 특산품을 파는 곳에서 본 적이 있었던 Nuogat.
어머, 이 여자 영어를 하네.
먹어보라며 내게 손을 내민다.
영어를 해서, 맛 보래서, 딱딱한 누가를 가녀린 여인이 해적칼을 들고 베는 게 안타까워서 멈췄다. 아니, 하루에 한번 가족 이외에 누군가와 이야기해야 하는 총합이 있는 것 같다. 누구랑 좀 말을 하면 근질하던 입이 말랑해지고, 그냥 뜨듯한 게, 여행을 좀 하는 느낌이 난다.
내가 물건을 사고 싶어서 간 것인지. 그녀가 나를 불러들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누가가 먹고 싶었다. 시끌벅적한 파리에서 있다가 오니, 어디든 조용하고 적적한 느낌이 들던차라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춥고, 피곤하고, 또 와인까지 한 잔 했다. 단 것이 맛있을까 맛없을까?
“아 맛있어요. 엄마, 이거 한번 먹어봐.”
“이거 얼마예요? 1kg에 48유로 넘 비싸다. 500g만 주세요. 그래서 24유로를 줬다. 뭐 누가 하나에 그렇게 비싸? 그래 시중에 파는 것도 있고, 해도, 그냥 관광객에게 말 거는, 게다가 영어를 좀 하는 프랑스 여인이 아니던가.
베스킨라빈스에서 일하던 때가 생각난다.
“정량은 정해져 있어. 그런데 말 한마디로 더 버는 사람한테는 그냥 주는거야. 내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말 한마디 하는 노력은 했으니깐.” 매니저의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추운 겨울에 호객을 그것도 영어로 하는 노력을 했으니, 팔아줘야지.
남편도 접대를 잘 해주는 사람에게 물건을 사라고 한다. 점점 나도 그의 말에 수긍한다. 젊을 때는 누군가 나를 건드는 게 싫더니, 이제는 뭔지 물어보고 원하는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품질이 좋은지 어쩐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점원을 선호한다. 덤으로 수다도 떨고. 한국 전자 마트에서 다이슨 청소기를 보러 갔다가 한 시간 정도 점원이랑 이야기했더니, 울 새언니 왈. “너 아줌마 다 됐네.”
그렇다. 나는 아줌마의 가면을 썼다. 아니, 얼굴도 아줌마 가면, 벗어도 아줌마. 다 아줌마, 마음도 아줌마. 아줌마가 좋다. 궁금한 거 마구 묻고, 부끄러움도 없고 그냥 앞서 가는 사람에게 그건 뭐냐고, 사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들이 보이면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 그건 실례인 것 같아 좀 참고 있지만, 염치없는 짓을 잘하게 됐다.
이걸 못했다면 여행은 어떻게 할 것인가. 허구헌날 구글 씨 팔짱만 끼고 다니다가 파리가 아니라 저기 벨기에로 갈지도 모른다. 역시 묻고 확인하고 어딘지 다시 묻는 그런 관광객이야말로 길을 잘 찾는다. 또 하나라도 얻어먹고 하나라도 더 사고, 보고 듣는 게 많다.
걷고 또 걷는다. 조용한 거리는 걸어줘야 그만. 메츠는 아름답다. 이런 곳 사랑한다. 촌 출신이라 파리나 베를린, 로마 같은 곳에서 숨을 못 쉬겠다. 너르고 텅 빈 공간과 숲을 사랑한다. 메츠는 너르고 헐비어서 좋았던 곳이다.
그러다 독일인의 문(Potes des Allemands:13세기-15세기에 지워짐)에 닿았다. 엄마는 많이 걸었더니 이제 안 간다고 했다. 그래도 억지로 끌고 거기로 들어간다. 보기보다 들어가서 세유 강을 굽어보고 아치 모양의 파사데를 구경하고 작은 탑과 문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누가를 하나 베어 물고는 그곳이 좋아졌다.
우리 아버지, 너무 멋있게 나왔다.
그는 세상 구경으로 견문을 넓히는 중이다.
버스 정류장을 제대로 못 찾아 한참 헤매다, 겨우 호텔로 돌아왔다. 잠만 자고 가는 도시라 생각하고, 도시 외곽에 예약한 싼 호텔이다. 미국 영화에서 선인장만 척박한 사막 도로를 달리다 모텔에 차를 세운다. 일본에도 자주 보이는 복도식 단층 아파트같은 느낌이지만, 여기는 프랑스다. 스트라스 부르에도 멀지 않고 독일 국경에서도 멀지 않다. 투숙하는 여행객들도 허름해 보이는 그런 곳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우리는 파리에서 떠나기 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 전기 밥솥에 따뜻한 밥은 있었고 무말랭이, 김치, 그리고 라면이 있었다. 물을 끓여서 라면을 끓이고 밥을 말아서 몸을 데웠다. 따뜻하게 데운 방에 오렌지 향을 한가득 채우고 그날 본 것이나 내일 여정을 이야기하고.
“우리 여기 어디야?”
“엄마 우리 여기 프랑스고 내일은 독일에 가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