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야경,모나리자 방

부모님과 유럽 여행

by 원더혜숙


독일 도착 후 몸살을 앓았던 엄마가 서서히 기운을 차렸다. 쌀 포대처럼 누워있다가 밥을 짓기 시작했고, 고기를 굽고 국을 끓였다. 급기야 오이를 소금에 찍어 먹으면서 맛있다고 한다. 일주일 간 저녁 일곱시부터 자더니 그날은 못 이기는 척 파리 구경을 가겠다고 따라나섰다. 그날을 하루 종일 차에서 구경하고 잘 잤던 덕분이리라. 엄마의 적극적인 행보에 기분이 좋았다.



파리 순환 도로에서 차선을 바꾸던 사돈어른 옆에서 마음을 얼마나 조렸던가. 파리 입성,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자마자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같았다. 유럽 자동차 여행을 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시작된 걱정과 불안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덕분에 잘 도착했어요.”


사돈어른은 그런 칭찬을 부끄러워했다.


아버지는 히터를 최강으로 켜고 거실 소파에서 쉬기로 했다.


여자 셋이 파리 야경을 나섰다.


“아, 이른 저녁부터 잠들면 어떻게요. 저는 눈이 말똥말똥하고 심심해요. ”


사돈어른은 인터라켄부터 야경 노래를 불렀다


“야경을 봐야지 놀러 와서 이렇게 집에만 있으면 아깝지 않아요?”


그런 그녀를 만족시켜 줄 야경, 그것도 파리의 상제리제이다.


버스를 타야 했다. 개선문까지 가는 버스. 나도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모른다. 밥은 든든하게 먹었고, 짐도 없고 차도 없고, 버스만 타는 게 무슨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식은 죽 먹기다. 구글 씨는 화도 안 내고 잘 가르쳐 준다. 버스를 타고 샹젤리제 거리로 간다.



“엄마, 여기가 미국 사람들도 오고 싶어 하는 파리야. 그리고 샹젤리제. 엄청 유명해. 잘 봐 봐.”


어디를 가든 좀 버거워하는 엄마가, 여행에서 가장 신경 쓰였다. 그런 엄마가 따라와 준 게 좋았다.


“엄마, 우리 어디 있는 줄 알아?”


“빠리라며.”


“그래, 그래도 파리 아니고 빠리라고 제대로 발음하네.”


야경을 보는 게 신이 난 사돈어른이 끼어들었다.


“엄마, 여기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좋다고 구경하러 가는 곳이야. 우리는 빠리에서, 야경을 구경하는 거고.”


“야경이 매일 있어?”


엄마가 이 말을 모르던가.


“어, 매일 있어. 밤에 보는 경치, 야경.”


엄마가 잘 들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엄마 잘 기억해. 우리는 지금 빠리야.”


엄마가 잊지 않고 이 순간을 기억해 주길 바라서 경쾌하게 되풀이했다.


“나는 다, 잊어버려.”


“그러니깐 제가 사진 찍고 거기다 이름 다 적어드릴게요. 빠!리. 하고요. 그럼 나중에 보면 될 거예요.” 사돈 부인은 그 말대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요.”


사돈어른의 사진은 하나씩 늘어갔다. 그녀는 이동 시간에 보고 갔던 곳을 적었다. 부모님과 공금을 모아 필요한 것을 사고 지출을 기입했다. 안 적어두면 잊어버린다고. 사진 찍고 메모한 것은 숙소에서 블로그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공부했다.


“숙아, 내가 어제 알아봤는데…” 그 말이 무섭다. 거기에는 꼭 가야 한다는 말이고, 또 하나의 일정이 추가됐다는 말이니깐. 가이드는 그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구경할 겨를이 없다.


“우리 몇 정거장 가야 해?”


“이제 거의 다 왔어요.” 구글은 데이터를 꺼도 원래 설정해 둔 루트 안내에서 버스가 어디에 있는지도 보여준다. 그래도 반응이 느리고 잘못될 수도 있으니 버스 스크린 정보를 잘 확인하고 방송도 잘 들어야 한다.


개선문에 내렸다.


“엄마, 저기 보이는 문이 개선문이야. 엄마, 여기는 빠리야. 빠리.”


“엄마 빠리 좋아?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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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은 조명으로 밤이지만 선명하게 보였다. 사돈어른의 요구로 사진을 여러 번 둘러 가며 찍었다.


엄마와 포즈를 취해서 신나게 한번 찰칵.


여느 모녀처럼 이런 거 진짜 해보고 싶었다. 웃으면서 어깨동무하고 사진 찍기.



나는 소원 성취했다. 그토록 바랐던 엄마와의 애정 확인.


엄마도 환하게 웃었다. 내가 가진 그 웃음. 광대뼈가 드러나고 눈이 작아지고 또 이는 환한 그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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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로 향했다. 붐빈다. 샹젤리제 남편과 왔던 그곳. 아이들이 생각났다. 잘 있겠지.



디올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에 감탄하고, 플라타너스 가로수에 늘어진 크리스마스 장식에 마음도 환해졌다. 많은 관광객들 속에서 우리는 환하게 웃고 즐거웠다.


에펠탑을 보고 개선문을 보고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 추웠다. 엄마가 잘 걷고 있는지도 걱정됐다. 그리고 또 숙소에 돌아갈 길도 걱정됐다.



에펠탑과 센 강과 엄마와 사돈어른, 추운 겨울바람.


엄마와 나, 너무 좋은 순간. 오래 기다려서 더 좋은. 이걸 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장소도 장소지만, 모녀가 건강하게 지금 이 순간 함께 해서 행복했다.



돌아가는 파리 지하철, 어떤 남자가 나를 쳐다본다. 그와 30센티도 안 될 만큼 가까이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그가 힐끔힐끔 쳐다보던 게 기분 나빴던 참이라 시선을 피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고 어쩌다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프랑스어를 못해요.”라고 프랑스어로 말했다. 그가 뭐라고 한다. 영어로 바꿔 마스크 아래에 침을 튀기며 이야기했다.



그는 검은 머리의 검은 수염에 키가 180미터는 되겠다. 여자 둘이 그의 무리였고 유쾌하게 수다를 떨고 웃었다. 파리 사람들의 활기가 그들에게 보여서 흐뭇했던.



벨기에에서 다이빙 강사를 한다는 남자. 그의 눈, 내 뒤에 중국인들 그리고 그 앞의 한국인 여자가 있어도 개의치 않고 자신만만해서 이야기를 했다. 내가 프랑스 축구 선수를 좋아한다고 했고, 그리고 그는 lile에서 왔고 알자스 지방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파리를 구경했다고.



“그 옆에 같이 있던 여자가 너네 이야기할 때 고개 끄덕이며 반응하던데…”


나중에 사돈어른이 말해줬다. 그들은 그냥 호기심에서 우리를 쳐다본 것.



다음 정거장이었다. 드물게 한산한 열차 안, 부모님과 사돈어른은 자리에 앉았고 나는 중간 지지대에 기대 지하철 노선도를 이리저리 보고 있었다. 방송 음성과 글을 읽고 따라 하면서, 프랑스어를 조금 익힌다고 했을까. 내 앞에 보라색 모직 모자를 쓴 할머니가 보였다. 좀처럼 구매하기 어려운 보라색 끌개를 끌고 재킷에서는 보라색 스웨터가 삐죽 나왔다. 보라색 가죽 장갑은 매끈했다. 할머니를 힐끔힐끔 훔쳐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보라색 좋아하시나 봐요?”


그녀의 안경을 가리키며 영어로 말했다. 심지어 보라색 안경테, 그녀의 취향은 티가 나도 너무 났다. 그녀는 좀 어색하게 웃었다. 할머니는 영어를 못하시나 보다. 알아는 들었겠지.


“혹시 속옷까지 보라색이 아니길 바랍니다."라고 농담을 했는데, 알아들으셨을까.


그녀는 내 시선을 의식하며 다음 정거장에 미소를 띠고 인사하고 내렸다.







“아버지 가슴은 괜찮아요?” 심장이 안 좋은 아버지가 가파른 계단에서 짐을 들어 올린다고 힘을 주다 호흡이 곤란해졌다. 아버지는 얼굴에 반질반질하게 연고를 바르면서 가뿐히 대답했다.


“어, 오늘은 좀 낫네.”


“혈압약 챙겨 드셨죠?”


“사돈 부인, 무릎 진통제는 먹었어요?”




우리는 오랜만에 여유를 부렸다. 나는 아침에 조깅도 갔다 오고, 사돈어른은 꼼꼼히 화장을 하고, 엄마는 진통제까지 복용했고, 아버지는 밥 한 공기 반을 드셨다.




루브르 박물관은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러웠다. 10년 전은 티켓 예매 없이도 금방 들어갔었다. 무엇보다 길 잃은 관광객, 영문도 모르고 도착한 관람객들에게 예매 시간대에 따라 줄을 세우고 고함지르는 경비원 혹은 안내원은 없었다. 어디가 입구인지 알 수가 없다. 앞에 가니 예약을 해야 하는 것 같다. 부랴부랴 와이 파이에 연결하고 티켓을 예매하는데 잘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때 화장실을 가야 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매표소 밖에는 화장실이 어디에도 없었다. 유럽 카페가 화장실을 쓰게 해줄 리 만무했다.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총 세 명의 안내원들은 한 가지를 묻기에도 짜증 나게 얼굴을 구겼으며, 말투는 거칠었다. 당신은 몇천 번을 똑같은 말을 했겠지만 우리는 이곳이 처음이라고요. 그들의 영어는 너무 짧았다. 귀찮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관광객들에게 길게 설명해 봤자 에너지 소모. 개나 소를 대하는 듯한 태도에 기분이 나빴다.




한참을 그러는 사이에 예매 없이 들어가는 줄에 섰다가 다시 예약 시간대에 섰다가 난리도 아니고, 예매도 되지 않는 상황을 언 손, 죽어가는 핸드폰을 이동용 충전기에 넣고 여러 번 시도했다. 겨우 예약하고 루브르에는 12시에 겨우 들어갔다.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고, 모나리자를 찾으러 가는 길, 루브르 박물관은 미로다. 나는 미로 속에 갇힌 미노스. 그냥 남편을 따라만 다니던 10년 전과 달리, 전시관이 너무 많아 헷갈리기 시작했다. 유명한 그림과 조각을 찾는다. 내가 원하는 현대 그림은 볼 수도 없고 있는지도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잘 따라오는지, 사돈어른이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을 찾기 위해서 내 머리 위에 레이더를 100퍼센트 가동했다. 에슐리관 그리고 방 문 위에 붙인 이름, 몇 층과 몇 층 사이의 그림들까지, 찾는 동안 진이 다 빠졌다.




사람들의 모습과 그림이 걸려 있는 모습과 방마다 다른 벽 색깔과 많은 경비원들의 무뚝뚝한 모습, 그들은 이런 관람객 중에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은 매일 같은 작품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시선이 마주치면 마네킹 얼굴이 된다. 나는 사람이 아니오. 나는 살아있지 않아요. 단지 여기를 지킬뿐이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돈어른이 모니 리자와 사진을 찍었다. 뒤로 멀찍이 물러나 부모님과 그 사태, 즉 그녀가 작품을 감상하거나 어떻게 하거나 그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 루브르는 부모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것을 알아볼 시간도 여유도 없을 만큼 수많은 군중이 사방을 스쳐갔다. 앉을 곳을 찾아서 부모님을 앉혔다. 모나리자 앞에는 모나리자와 사진을 찍기 위한 관람객들이 빨간 줄 사이에 방 가득히 채웠다. 그 뒤로는 그 방을 퇴장할 수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사돈어른이 나오지 않는다. 방을 나가기 전에 기념품 가게가 있고 그 주위로 혹시 있나 확인한다. 잠시 부모님은 앉아 계시라 하고 찾기 시작했다. 모나리자가 걸린 벽 앞으로 줄을 선 군중을 훑었다. 시야가 넓고 관찰력이 넓어도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녀를 찾기는 어렵다. 부모님을 데리고 모나리자 방을 나갔다. 기념품 가게를 중심으로 방이 양쪽으로 나눠졌다. 여기서 움직이면 그녀도 우리를 못 찾으리라. 전화가 걸려왔다.



“나 방을 나왔어.”


“그럼 거기 계세요. 제가 나갈게요”


그러나 그녀는 오지 않는다. 방 두 개를 각각 끝까지 가봤다가 다시 돌아왔다.


기념품 가게와 모나리자 방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보는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모나리자가 걸린 벽 뒤로 출구가 있는 데로 나오시면 기념품 가게가 보일 거예요. 가게 보이세요? 바닥이 어떤 색인 방에 계세요? 나무 바닥 아니면 카펫?"


“나, 기념품 가게 안 보여, 나 모나리자 보고 반대로 나왔는데…”


“그러면 모나리자 방에 들어가서 그 방 뒤로 출구로 나오세요.”


인파 속에서 작은 체구가 걸어왔다.


국제전화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거기 뒤로 나가실 줄은 몰랐지요. 그럼 가요.”


누군가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누구를 탓할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은 종종 있었다.


그때까지 우리에게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그만한 게 다행이었다.




“아버지 이런 데 와 봤어요?”


“뭐, 어디?”


“박물관이요.”


“지금 와 보네.”


“아, 그렇네” 아버지는 재밌는 사람이었고, 여행 중에서 그의 유머 감각은 더 도드라졌다.


아버지는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고도 높은 옛날 건물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는지 자꾸 들어가 보자고 한다.


“아이고 높다. 저기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박물관처럼 그림이 걸려 있고, 조각상이 서 있지요.”


아버지는 하나씩 지나가는 관공서처럼 보이는 큰 건물들을 보면 그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대학, 법원, 정부 부처, 교회, 학교, 호텔 등등의 각각 다른 용도로 쓰였고, 그 쓰임에는 변화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프랑스에 더 오래 살면 좀 나을까나.


“숙아, 우리가 어디 가면 그게 어떤 역사적 배경에 어떤 곳인지 네가 엄마한테 설명을 해줘.”


“글쎄요. 저도 모르는데요.


“그건 돈 좀 더 내셔서, 일류 가이드를 고용하셔야겠다. 진짜 공부는 스스로 궁금해서 찾아보고 알아가는 거지요. 어제처럼 집에 가서 알아보세요. 잘 하고 계세요. 알아보고 저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그건 내 영역이 아니며, 어쩔 때는 그런 정보가 정신을 혼란하게도 한다. 나는 내 깜냥만큼 볼 수 있는 것만 본다. 다만 내 관점으로 궁금한 것은 언제든 기억하고 알아보니.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누군가가 조사해서 알려주면 그것으로 내 견문이 조금이라도 넓어지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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